가끔 영화가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어김없이 광화문에 있는, 씨네큐브를 찾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웬만하면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화두를 던지는 작품성 짙은 영화들을 올리기 때문에 어떤 영화를 선택하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언젠가부터 시중 CGV나 롯데 시네마 등 상업영화를 상영하는 곳에 영화를 보러 가는 건 꺼리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언론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라고 호들갑을 떠는 영화들을 보고 난 후, 그 뒷 느낌이 찝찝했던 기억이 여러번 반복되다보니 생겨 난, 저만의 개인적인 결론 탓일 것입니다. 아마도 그 중에서도 정확한 싯점은 우리 배씨 문중과 법적인 소송이 있었던 <명량>이라는 영화 이후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도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하고 늦은 시간 아내와 함께 광화문을 찾았습니다.약간은 생소한 제목의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영화인데, 우리말로 직역하면 '야행성 동물들'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제목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상처없는 인생은 없을 수 없지만 그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은 제각기 다르고, 또 그로 인해 삶의 모양도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들었던 대사 한 마디가 아직도 귓 전에 맴도네요.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의 원작은 오스틴 라이트의 소설 [토니와 수잔]입니다. 신시내티 대학의 영문학과 교수로 40년간 재직하며 사망하기 전까지도 활발한 집필 활동을 펼친 오스틴 라이트가 72세 때 탄생시킨 작품으로 출간 당시에는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1993년 초판 출간 이후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는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 진 것이지요. 감독은 톰 포드.
영화의 첫 장면은 야간 춤 추는 업소에서 비대해질대로 비대해 진 볼품 없는 전나의 육체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여자들이 가득 화면을 메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마치 동물을 연상하게 하는 듯 한 육체를 가졌지만, 춤을 추는 그들의 표정은 즐거운듯이 웃고 있습니다. 무대 위이기 때문에 웃어야 하는 당위성 때문이지요. 어찌 보면 영화의 제목인 '야행성 동물들'이라는 표현과 영화의 전체적인 상징성에 부합되는 장면일 것입니다.
영화는 이혼한 전 남편 애드워드로부터 ‘자신이 쓴 소설을 읽고 거기에 빠진 게 뭔지 알려달라’는 부탁이 담긴 짧은 편지와 함께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의 긴 원고를 받는 수잔의 이야기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두개의 구조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현실 속에서 원고를 읽고 있는 수잔의 이야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원고 소설속에 펼쳐지는 주인공 토니의 이야기가 그것 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뜬금없이 미국의 교육심리학자인 B.S. Bloom이 주창했던 <완전학습모형>이 생각난 건 왜 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릴적에 접했던 완전학습 모형에서 만들어 진 문제 풀기집에는 모든 문제 뒤에 이런 문장이 항상 뒤따랐습니다. "맞았으면 다음 문제, 틀렸으면 몇 번으로 돌아가시오"라는 표현입니다. 학생이 틀린 이유는 그가 지능이 낮아서가 아니라, 아직까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지식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므로, 그 선행 학습을 위해서는 앞의 어느 문제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근데 왜 하필 이게 영화를 보고 난 후 갑자기 생각났을까? 묘한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란 게 따지고 보면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가는 '인간 관계'입니다. 그리고 우리 삶 속의 인간 관계를 가만히 분석해 보면,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상처받고 또 다른 만남이 이어지고 또 사랑하고 이별하고 상처받는 일정한 패턴의 반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 단계에서 일어나는 경우의 수도, 크게 대별해 보면 인연이 있는가 하면 악연이 있고, 또 낭만적인 순수한 사랑이 있는가 하면 목적적인 수단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별을 하면서도 상처에 반응하는 방법이 오래 오래 간직하는 복수가 있는가 하면, 즉각적인 복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체적인 안목을 가지고, 이 영화를 다시 가만히 들여다 보면 어떤 공식의 틀 안에서 설명이 가능하다는 생각, 그리고 그 설명을 통해서 결국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작가 지망생 애드워드와 화가 지망생이었던 부잣집 딸 수잔. 어느 날 명문 대학을 졸업한 후 최고의 대학원 과정에서 만나서 낭만적인 사랑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수잔의 어머니가 수잔에게 애드워드는 네 수준이 아니라면서 결혼을 반대했듯이, 둘의 관계는 3년이 가지 못하고 깨지고 맙니다. 그리고 이별과 상처만 남기고 25년이라는 세월은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때 받았던 상처들은 이야기의 소재가 되어, 이야기 속에서 고비 고비마다 명 대사로 다시 태어나 오늘을 사는 우리(독자)에게 잊고 살았던 삶의 의미와 새로운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잘못되었는지, 그 곳으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촉구하는 것 같습니다. 삶의 완전 학습 모형에 따라 말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을 소중히 지켜야 돼"
"그런 사랑 다시는 안 올지 모르니까"
"우리 이제 어쩌죠?"
"그건 당신이 얼마나 정의로운 인간이냐에 달렸지"
"평생 후회하며 살겠지"
"그런 짓을 하고 무사할 순 없어"
주인공(수잔)의 직업이 갤러리를 운영하는 미술사학 전공자인 만큼 다양한 현대 미술 작품을 통해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건, 이 영화를 감상하고 난 후 보너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프 쿤스의 작품을 위시해서, 답답하고 어두운 억압의 정서를 보여주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등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림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면 더 많은 게 보였을텐데 아쉬웠습니다. 그 뿐인가요. 숨이 막힐 듯한 효과음을 통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느꼈을 공포와 죄책감, 그리고 막막함을 경험하게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pDa3x6RLnA&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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