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저녁, 오랜만에 씨네 큐브에서 영화 한 편을 감상했습니다.
친구가 출장 기간을 끝내고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기 전 영화라도 같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지금 우리 나이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라면 금상첨화겠다는 판단에서 선택을 했는데, 보고 난 후에는 역시 잘 골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함께 모교 교정 벤치로 와서 늦은 밤까지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시면서 영화 이야기와 옛 추억을 들취내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감상하고, 이 영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 전체에서 몇 차례 등장하는 각기 다른 '장례식 장면'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교양 수업에서 만났던 교수의 별세 소식을 듣고 며칠 전 빈소를 다녀 오면서 느꼈던, '쓸쓸함과 허무함의 소회'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감상했기 때문에 더 선명하게 각인되어 오는,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장례식장에 손님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고 그(녀)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인증의 척도'로 가정(假定)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한국의 문화와는 달리, 서양의 장례식은 더욱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영화는 전형적인 플래시백(flashback) 형식을 따릅니다. 즉, 오베라는 한 남자를 소개하기 위해서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 비춰주며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감독은 반복되는 이런 형식에 자칫 식상함을 느낄 관객을 위해서 과거 이야기 속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주인공인 오베가 마치 지금 이곳(Here and now)에서 그 현장에 다시 참여하는 듯 하게 함으로써, 관객들이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자연스럽게 빨려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뻔한 전개 방식이지만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고 감상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까칠하다 못해 고집불통이요, 또 매사에 삶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불만과 원망에 가득차서 살아가는 초로(初老: 영화에선 59세로 설정되어 있음)의 오베가 주인공입니다. 현재의 오베를 맡은 배우는 롤프 아스가드, 그리고 젊은 시절의 오베 역은 필립 버그입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결국 영화는 '오베'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왜 이런 고집 불통이고 불만 투성이며 또 시도 때도 없이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이었는지를, 그리고 그런 사람이 종국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전개됩니다.
일찍 상처(傷妻)한 오베의 아버지, 그리고 아내 없는 아픔을 지닌 아버지의 사랑과 애정을 듬뿍 받으며 오베는 자랐지만, 너무도 갑작스러운 그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그 아버지와 살던, 유일하게 안정적 공간이었던 집마저도 개발을 위해 밀어부치는 권위적인 공무원들 때문에 빼앗기고 세상을 비관하며 살 때, 혜성같이 나타난 아내 소냐. 그러나 그녀와 삶의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정점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처참하게 죽은 뱃속의 아기와 그 후 장애자로 살아야 했던 아내. 그리고 그 처리 과정에서 겪은 가진 자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애정없는 일처리에서 느꼈던 배신감...결국 '오베라는 남자'는 이런 수많은 삶의 상처를 안고 살아 온, 그 안에 상처 입은 '성인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아니 영화는 어쩌면 '오베'는 다른 사람이 아닌, 이런 삶의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모든 '우리 이웃'이라고 말해 주는 듯 합니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우리 모두'가 아니라, 담장 허물기를 오래전에 하고 난 후부터, 내가 살고 있는 골목에 혹시라도 불법 주차를 하는 차량이 있으면 즉시 전화를 걸어 차를 빼게 하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구청에 전화를 하는 바람에, 이제는 다른 곳엔 불법 주정차 차량이 넘쳐나고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골목 만큼은 말끔히 정리된 걸 보고 흐뭇하게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이 영락없는 '연남동의 오베'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베스트 셀러 1위로 선정이 된 <오베라는 남자> 소설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인데 이 소설이 세계인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베라는 남자가 다름 아닌, 우리 자신 한 사람 한 사람을 말하며, 그런 상처입은 '내'가 그저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게 아니라, 이웃과의 자연스런 매일의 관계를 통해서, 치유될 수 있으며 또 그 치유로 인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삶을 살다가 의미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몇 해 전, 스웨덴 영화제를 통해 스웨덴 영화를 몇 편 접해 보고 그 이야기 전개 과정과 영화의 완성도에서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앙티브행 편도>,<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그들 영화였는데, <오베라는 남자>를 보고 난 후 이 영화도 스웨덴 영화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배우 캐스팅에서 59세의 남성으로 롤프 아스가드는 너무 늙은 노인으로 캐스팅 된 게 아닌가 하는 점,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에서 비록 미수로 그치기는 했지만, 자살 장면을 너무 상세하게, 그리고 너무 자주 등장시켰다는 점 이외에는 나무랄데 없는 수작(秀作)의 영화였습니다.
나이듦에 대해, 삶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의심되면서 가끔씩 흔들린다고 생각될 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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