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하는 날을 기다려 첫 시간에 본 영화 <유스>..
영화를 본 후 솔직하게 말하면 ‘뭔가 잘 정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정리되지 않는 느낌은, 영화가 전체적으로 초점을 잃은 듯 산만하게 흘러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은퇴할 나이에 접어 든 두 노인, 그리고 헐리웃에서 막 뜨는 젊은 배우 등 이야기의 흐름이 복선적으로 진행되어 자칫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나이의 많고 적음’이 <늙음>과 <젊음>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러면 무엇이 그 구분 기준이 될까 하는 화두에 답하는 것 말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스위스의 고급 휴양지입니다.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물리적인 나이가 들어 마사지와 사우나 그리고 건강 검진 등 잘 짜여 진 하루 하루를 무감각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지휘봉을 놓은 노 지휘자, 자신의 연기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헐리웃 스타, 이제는 숨 쉬기도 힘든 비만 축구 스타, 대화를 상실한 노 부부 등. 그들에게 육체는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영화 감독 믹만이 자신의 새로운 영화에 열정을 쏟고 스태프들과 끊임없이 작업하고 있습니다.
먼저, 노 지휘자 프레드 벨린저(마이클 케인). 영국 왕실에서 온 비서관이 끈질기게 다시 한번 왕궁에서 여왕을 위해서 본인이 작곡한 ‘심플 송(Simple song)’을 지휘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끝내 거부합니다. 그에게 심플 송과 관련하여 어떤 삶의 뒷 이야기가 있는지에 대해선 영화가 진행되면서 하나 하나 베일이 벗겨집니다. 오직 아내만이 부를 수 있는 곡을, 아내가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 연주한다는 것은, 아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해서 아내를 극진히도 사랑하는 듯 하지만, 실은 그 보다는 평생동안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음악과 불륜 등) 만을 위해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철저한 부인임을 영화는 낱낱이 드러냅니다.
반면에, 노 영화 감독 믹(하미 키이텔)은 같은 나이이지만 아직까지도 열정적으로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최후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출연진들과 대본을 만들고 연습하면서 젊은이 못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수많은 영화 작품 속에서 자신이 만들어 낸 다양한 캐릭터들의 감독자로서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면서, 최후의 영화 작품에 등장할 주연으로는 자신이 아직도 최고의 배우라고 생각하는 톱 스타 브렌다(제인 폰다)를 일찌감치 점찍어 둡니다. 그를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은 바로 브렌다를 향한 사랑이며 또 그녀을 향한 열정이란 듯이.
친구 사이인 프레드와 믹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늙음과 젊음의 구분은 물리적인 나이가 아니라, 어떤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분해야 된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아무 의욕도 없고, 무기력에 빠져 있는 프레드가 자신이 작곡한 심플 송이 왜 그리도 아름답느냐는 작은 소녀의 질문에 “사랑하고 있을 때 작곡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대사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는, 영화 전반부에 열정과 사랑에 대한 동력으로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노 영화감독 믹이 여자 톱 스타 브렌다가 악담을 퍼 부으면서 영화에 절대로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떠나는 그 날 밤,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도 열정적으로 사랑을 불태웠던 사람이 결정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말입니다. 이쯤되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많이 혼란스러워지고 답답해집니다. 어~이게 뭐지 하는 놀라움이 일어나는 대목입니다.
이에 반해, 프레드는 딸 레나(레이철 와이즈)와의 대화를 통해서 하나 둘 삶 속에서 자신이 몰랐던 부분들을 알아가면서 서서히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조수미 아니라 그 어떤 소프라노가 불러도 자신은 절대로 더 이상 심플송을 연주할 수 없다고 고집부리던 태도가 눈 녹듯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극적인 게 아니라, 물리적인 나이답게 아주 느리지만 조용한 가운데 일어납니다. 이제는 말이나 설명이 아니라, ‘마사지나 터치와 같은 ’감각‘으로, 또 육감적인 열정은 없지만 우아한 나신(裸身)의 아름다움을 관조하는 ‘느낌’을 알아가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경험합니다. 말하자면, 늙었지만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느낄 줄 아는 젊음’의 경지에 도달합니다. 고집을 꺾고, 영국 여왕 앞에서 자신이 직접 작곡한 '심플 송'을 지휘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이미 늙어버린 왕년의 톱스타들이 늙은이가 되어 출연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제인폰다가 열연한 브렌다역이 그랬고, 프레드 역을 열연한 마이클 케인이 그렇습니다.
늙어가는 것, 그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인생의 순리이지만, 이제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말이 아닌 느낌으로, 설명이 아닌 감정으로 체감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제대로 늙어가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잔잔하게 이야기 하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보너스라면, 심플송을 부르는 가수로 조수미가 캐스팅되어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와 6분여 동안 열창을 하는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pZCdE1yI94&feature=player_embed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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