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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기적의 배 12척> - 정만진(도서출판 신우 刊)

석전碩田,제임스 2015. 9. 1. 10:41

<기적의 배 12척>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수사 배설 장군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 소설입니다. 작가는 정만진. 9월 4일 드디어 출판기념회를 갖고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그간 이 소설을 위해서 역사적인 사실(史實)들을 고증하고 연구한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소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소설이 집필되고 있는 중에 배설 할아버지의 묘소 주변에서 나라로부터 하사받은 땅이 주변 20리에 이른다는 돌 비석을 발견한 것은, 우리 후손들이 새롭게 선조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얻었던 귀중한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을 간략하게 소개해드립니다.

 

☞ 이 소설의 특징

 

1. 이 장편 소설은 <액자소설>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다룬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2. <기적의 배 12척>은 대부분의 사건에 발생 년도와 날짜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관련 기록이 남아 있지 아니한 소설 속 사건에는 역사적 상상력의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이성적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또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사건의 당사자는 역사적 실존 인물도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이는 <기적의 배 12척>을 통해 역사소설, 실록소설의 바람직한 전형을 세워보려는 작가로서의 양심의 결과입니다.

 

☞ 소설의 줄거리

 

중년의 두 남자가 영화 <명량>을 보고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수사(남해안 중 경상도 서쪽 지역 사령관) 배설이 3도수군통제사(해군 참모총장) 이순신을 암살하려 드는 등 민족 반역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합니다.

 

선조와 조정은 임진왜란 발발에 제대로 대비를 못 합니다. 전쟁 직전 그들은 정여립의 난을 둘러싸고 진행된 정치적 음모에 온통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막상 전쟁이 일어나자 선조는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와 “일본의 침략은 없다”고 단언했던 김성일 한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김성일은 서울로 압송됩니다.

 

그러나 이산해, 류성룡 등 같은 동인(東人)들의 도움으로 압송 중에 풀려난 김성일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풀려난 이후 경상감사 김수와 의병장 곽재우의 목숨을 건 다툼을 해소하고, 경상도 각지에서 활발하게 의병이 일어나도록 초유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지만 진주성에서 병사하게 됩니다.

 

경북 성주에서는 관직에서 은퇴한 배덕문이 69세의 고령에 의병을 일으키게 됩니다. 경상우도 방어사 조경 휘하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워 추풍령 전투를 치렀던 배설은 패전 후 성주로 와서 아버지 배덕문의 의병에 가담, 왜장 흑전구침(구로다 구싱)을 죽입니다. 하지만 그의 동생 배건 부부는 상주 여남현 고개에서 왜적들의 매복에 걸려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순신과 원균은 갈등도 겪지만 서로 협조하여 남해를 장악합니다. 하지만 “가등청정(가토 키요마사) 때문에 평화 협정을 맺을 수 없다”면서 “그가 바다를 건너오는 때를 알려줄 테니 제거해 달라.”는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의 은밀한 제보가 조선 조정에 당도한 이후, 이순신은 수군통제사에서 밀려나고, 한양으로 끌려와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부산 앞바다에서 기다리다가 가등청정을 죽이라는 조정의 명령에 불응한 결과였습니다.

 

이순신이 잡혀가기 직전, 충청병사로 있던 원균은 “수군을 부산 앞바다에 주둔시키는 것이 옳다.”고 조정에 장계를 띄웠습니다. 조정의 방침에 딱 들어맞는 전술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본인이 수군통제사가 되고 보니 그런 작전을 펼치다가는 우리 수군이 전멸당할 것이라는 뒤늦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순신이 그랬듯이 원균도 결국 출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당시 조선군의 총대장이었던 도원수 권율은 원균을 불러들여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곤장을 때렸습니다. “계속 출정을 거부하면 군법에 따라 처결하겠다.”는 위협도 했습니다. 치욕과 두려움에 못 견딘 원균은 마침내 140척의 전함을 이끌고 부산 앞바다로 진출하지만 때마침 불어닥친 태풍에 휩쓸려 싸워보지도 못한 채 20척의 배만 잃고 후퇴하고 맙니다. 권율은 또 다시 원균에게 곤장을 때립니다.

 

원균은 칠천량에 정박합니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칠천량은 바다가 얕아 크고 무거운 조선 판옥선에 불리하고 가볍고 날랜 일본 안택선에 유리한 지형인데다, 육지를 왜군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곳에 진을 치고 있다가는 사방으로 포위되어 기습을 당하게 된다”면서 “권율의 지시를 묵살하고, 일단 한산도로 철수하여 전열을 가다듬은 후 다시 싸우러 나오자”고 건의하지만 묵살당합니다. 그날 밤, 왜의 육군과 수군에 포위 기습을 받은 조선 수군은 거의 궤멸당하고 맙니다.

 

원균은 뭍으로 올라갔다가 일본 육군에게 죽습니다. 충청수사 최호와 전라수사 이억기도 전사합니다. 배설은 간신히 여덟 척의 전함을 이끌고 한산도로 물러나 그곳 백성들을 배에 태워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그곳에 남아 있는 식량 등 왜군들이 왔을 때 사용할 만한 것들은 모두 불태워 버리는 청야작전을 실행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군사들을 죽게 만든 죄책감으로 배설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한 참 후 깨어난 배설은 노량으로 물러나 전선을 정비하는 한편, 버려져 있던 배 네 척을 수리하여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상태로 가다듬게 됩니다. 이제 조선 수군에게 남은 전함은 12척 밖에는 없는 셈입니다.

 

이순신이 풀려나 다시 수군통제사가 됩니다. 권율이 이순신을 찾아와 “공을 세우지 않으면 당신은 목숨이 위험하다” 는 투로 말을 합니다. 본래 조선 수군 편제는 통제사가 전체 수군을 거느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수사들이 독립적으로 군대와 전함을 거느리도록 되어 있었지만(통제사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선조가 그렇게 해두었음) 이순신은 임의로 배설이 거느리고 있던 전함 12척과 장졸들을 통제영 직속으로 바꿉니다. 본의 아니게 직위해제 상태가 된 배설은 칠천량 패전 이후 병색이 완연해졌던 몸 상태가 더욱 나빠지고, 마음도 견딜 수 없이 황량해집니다.

 

<난중일기>에는, 배설이 1597년 8월 30일 이순신에게 병 휴가를 신청하고 이순신이 그를 허가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 배설은 남해안에 머물면서 병을 치료하는 한편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등 영외 활동으로 이순신을 돕게 됩니다. 10월 14일자 <난중일기>에도 ‘배의 종이 경상도에서 와서 적의 동태를 말해주었다.’고 표현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조정은 10월 11일 배설이 ‘탈영했다’면서 체포령을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11월 3일 선전관 이길원이 통제영으로 찾아가 이순신을 만난 일을 제외하면 노량해전으로 전쟁이 사실상 끝나는 1598년 11월 19일까지 13개월 동안 배설을 체포하러 뛰어다닌 관원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이순신은 전사하였습니다. 조선 조정은 전란의 피해를 입은 백성들이 임금과 대신들에게 극렬하게 저항할까 그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미 전쟁 중에 의병장 김덕령에게 모반 혐의를 씌워 죽였던 선조와 동인 조정은 서인의 지원을 받던 원균의 후임자 배설에게 반역 혐의를 덧씌우게 됩니다.

 

이미 이순신, 김성일, 김덕령, 신립 등 전쟁에 참여했던 장수들이 죽은 마당에 죽어버린 사람들에게 전쟁 책임을 덮어씌울 수는 없었습니다. 배설은 진주목사로 있던 중 백성들의 민심을 크게 얻어 경상우수사 발령을 났을 때에도 진주 백성들이 가지 못하게 붙잡는 바람에 두 달이나 늦게 부임한 전력이 있고, 경상우수사 재임 때에도 조정을 향해 당파싸움이나 한다며 공개적으로 힐난하다가 한양으로 끌려와 고문을 받은 후 밀양부사로 좌천된 바 있었습니다.  게다가 서인으로 분류할 수도 있는 인물이니 반역자로 몰기에는 아주 적격이었습니다. 권율이 군사를 보내어 배설을 체포한 뒤 처형하게 됩니다. 하지만 반역죄라면서도 그의 아버지 배덕문과 아들 배상룡은 그냥 풀어 줍니다.

 

경상감사 한준겸이 조정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배설의 장례를 돕습니다. 조정의 시퍼런 감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배설을 문상을 합니다. 선비들은 배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성토합니다. 선조와 조정은 압록강까지 함께 도망간 사람들 위주의 임란 공신 명단을 발표했다가 민심의 역풍이 강력하자 서둘러 2차 공신 명단을 발표합니다. 배설은 선조와 조정 대신들에게 죽임을 당한 지 불과 6년만에 1등공신으로 다시 책봉됩니다.

 

영화 <명량>를 본 후,  이 소설도 읽은 두 남자가 다시 대화를 나눕니다. 두 사람은 해군 참모총장인 이순신을 참모차장 격인 배설이, 그것도 한창 전쟁 중에, 암살하려다 실패하는 내용을 담은 이런 영화를 외국인들이 보고 그것을 사실로 믿고 우리를 “형편없는 민족”이라고 비난할 것을 염려합니다.

 

작가의 예술적 상상력은 인정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의 근간을 왜곡하거나 특정인을 정치적 또는 상업적 이유로 근거 없이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처음 그들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두 사람은 1등만 우러러보고 그 외는 전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명량>과 같은 영화를 낳았다고 진단하면서 소설은 대단원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Carpenters의 Top of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