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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이 현주 목사의 글

석전碩田,제임스 2015. 12. 29. 10:56

<풍경소리>에 실린 이현주(이 아무개 목사로 알려져 있고 그 이름으로 책을 여러 권 내신 분) 목사의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 중에, 글 두 꼭지만 이곳으로 옮겨 봅니다.  
 
[44] 
 
십여 년 하지 않던 교회 담임자 노릇을 하게 되었다. 고인이 된 친구 목사 최조영이 자기 지방에 담임자 없는 교회가 났으니 와서 목회를 하라는데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교회법에 의하여, 과연 이 사람이 목사직을 감당할 수 있는지, 그 자격을 심사받게 되었다. 여러 선후배들이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있고 나는 그들 앞에 섰다. 
 
이런저런 문답이 오가는 중에 한 목사가 물었다. 
 
“주초(酒草)를 하십니까?” 
 
술 담배를 하느냐는 물음이다. 전혀 예상 못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랬던가? 대답도 망설일 사이 없이 튀어나왔다. 
 
“예, 합니다.” 
 
답해놓고 스스로 놀랐다. 그런데 나보다 심사위원들이 더 놀라는 것 같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가, 질문한 목사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안 되지요.” 
 
목사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당연하다. 교회법에 엄연히 금지된 주초다. 실제로 그것을 하는 목사들이 있느냐 없느냐, 지금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있는 목사들 가운데 담배를 피우는 목사가 있느냐 없느냐, 뭐 그런 건 관계없이, 주초를 하는 목사는 교회 담임자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게 명백한 법인데, 어쩔 것인가? 
 
“예, 알겠습니다.”
깨끗이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한 선배 목사가 급히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했다는 말이지?”
“예.”
맞다. 지난 수십 년 술은 잘 못해도 담배는 즐겨 피웠으니, 지금까지 주초를 한 건 사실이다.
“앞으로 안 하면 되겠군. 약속할 수 있소?”
“예.”
“좋아요. 그럼 이제부터 하지 않는다는 약속으로 이 건은 넘어갑시다.” 
 
몇 가지 사소한 질문 끝에 위원장이 결론을 내렸다.
“됐습니다. 목회 열심히 하십시오.” 
 
심사실 밖으로 나왔다. 몇 발짝 걷는데 누가 속에서 묻는다.
“시방 뭐 하자는 건가?”
걸음을 멈추었다.
앞으로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 그걸 과연 내가 지킬 수 있을까? 지킬 수 있느냐는 관두고 지킬 마음은 있는가? 아니다. 그럴 자신도 없지만 그럴 마음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방금 누구 앞에서 무슨 짓을 한 건가? 지킬 자신도 없고 지킬 마음도 없는 약속을 했으니, 하느님 앞에서 자신과 하느님을 속인 것이다.
이건 아니지!
발길을 돌려, 심사실로 다시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자격 승인을 취소해주십시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습니다.”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한 선배가 무슨 개뿔 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내 팔을 힘껏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그렇게 해프닝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날 철원지방 반석교회 담임자 서리로 임명을 받았다. 
 
그랬다. 그런 비리(非理)를 내가 저질렀다. 
 
[48] 
 
철원 반석교회, 낡은 주택에 방이 셋 있지만 둘은 바닥이 무너져 쓸 수 없고 부엌으로 이어진 방 하나에서 아내와 둘이 지내야 했다. 
 
늦은 가을, 늦은 밤.
옷 벗고 자리에 누웠는데 마당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문 열고 나가보니 봉당에 웬 늙은이가 서 있다.
한 손에 가방을 들었다. 술 냄새를 풍기며 그가 내게 물었다. 
 
“이 집에 벙어리 살지요?”
“아닙니다. 잘못 찾아오셨네요.”
“그래요?”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이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하기를,
“당신, 사람 좋게 보이는군.”
인상이 좋다는 말일 텐데 속에서는 오히려 짜증이 난다. 이 밤중에 엉뚱한 집에 와서 사람 좋게 보인다니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내 쪽에서 그렇거나 말거나 그가 말을 잇는다. 
 
“벙어리한테 잘해주시오.” 
 
갈수록 태산이다. 있지도 않은 벙어리한테 잘해주라니?
“글쎄, 이 집에 벙어리 없다고요.”
“그래요? 그런데, 당신 어디 살다 오셨소?”
제대로 말하려면 충주에서 왔다고 해야겠지만 내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이 나왔다.
“서울에서 왔어요.”
늙은이가 눈을 번들거리며 묻는다.
“서울 어디요?”
무슨 말을 더 할 것인가? 내 입이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알았으니, 그만 가시오.”
그가 깜짝 놀란 얼굴로 한 발 물러서며 급히 말했다.
“아, 이거 실례 많았소이다. 미안하오. 갑니다.”
가볍게 돌아서서 마당으로 내려간다.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아무리 엉뚱한 나그네라 하여도, 이 깊은 밤중에, 가까운 여관까지 가려면 서면까지 밤길 시오리를 착실히 걸어야 하는데, 어떻게 사람 입에서 “그만 가보시오.”라는 말이 나온단 말인가? 
 
그러나 이미 쏟아진 말. 다시 주워 담을 순 없지만 그래도 속으로 민망함을 수습한답시고 괜한 물음을 던져본다. 
 
“어디로 가십니까?”
그가 돌아서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나, 사람들한테 신세지기 싫어서 이걸 들고 다니지.”
그가 내밀어 보이는 검은 색 가방, ‘코오롱’ 마크가 찍힌 일인용 텐트다.
더 무슨 할 말이 없어 방으로 들어왔지만 마당의 개가 계속 짖고 있다. 가까운 어디에 그가 있다는 얘기다.
이건 아니다, 아내한테 양해를 구하고 방 한 구석을 내주어 이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이런 뒷생각에 떠밀려 다시 옷을 입고 나가는데, 개 짖는 소리가 멎었다. 
 
아무도 없다. 찻길로 나가보지만 가로등 불빛이 멀리까지 비추는 신작로 위에 움직이는 것이라곤 보이지를 않는다. 말 그대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방금 전까지 부근에 있던 사람이 그 사이에 어디로 잠적했단 말인가? 텐트를 친다 해도 교회 주택 마당 말고는 반반한 자리가 없는 산골동네인데.
별 수 없이 자리에 들었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불쾌한 이물질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아무리 뱉으려 해도 엿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웅덩이 물을 손에 담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뱉어도 소용이 없다. 게다가 웅덩이 바닥에는 지렁이처럼 생긴 더러운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그렇게, 입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불쾌한 것(아교로 다져진 톱밥 같은)을 뱉어내지 못하고 헛구역질만 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오전 4시, 새벽기도회 시간이다. 
 
예배당에 들어가 무릎을 꿇는데, 입 안이 이물질로 가득 차 있으니 그 입으로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내가 바로 벙어리구나, 하는 생각이 뒤통수를 친다. 이어서 떠오르는 한 마디 말씀,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면 곧 나를 대접한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를 내치면 곧 나를 내친 것이다.”가 되지 않는가?  
 
아, 내가 벙어리였고 내가 소경이었구나!
엎드려 눈물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
“주님, 저를 찾아오신 당신을 몰라보았습니다. 제가 벙어리고 제가 소경이었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주님을 내쳤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다음날이 주일이었고, 교인들에게 사실을 말했다.  
 
“내가 이런 사람인데, 여러분 앞에서 목사 노릇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한 보름, 마음고생이 자못 컸다.
“알았으니 그만 가시오!”
이 한 마디가 시도 때도 없이 고장 난 레코드처럼 거듭거듭 들려왔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오 기도를 드리고 싶어서 홀로 예배당에 들어섰다.
늘 그랬듯이, 그날도 강대상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데 음성이 들려왔다. 
 
“그만하자. 지겹지도 않냐?”
“……?”
“그날 새벽, 자네가 눈물로 용서를 빌었을 때 나는 자네를 용서했다. 이미 용서한 사람한테 몇날 며칠을 용서해달라고 빌다니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러는 거냐? 세상에 이런 무례가 어디 있단 말이냐?” 
 
아, 그랬구나! 용서를 빌면서 용서받은 줄로 믿지를 않았구나. 그러니 내가 벙어리에 소경에 불신자였구나. 그동안 나는 자기가 용납되었음을 용납하는 것이 구원이라는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을 얼마나 자주 사람들에게 옮겼던가? 
 
몸이 아니라 말로 살아온 나의 정체가 여실히 드러났다.
그런데도 마음은 가볍고 날아갈 듯이 기뻤다.
엄마한테 잘못을 들키고 나서 용서받은 아이의 심정이 되어 한 말씀 드렸다. 
 
“그날 제가 그만 가시라고 했을 때, 섭섭하셨지요?”
“아니다.”
“예? 섭섭하지 않으셨어요?”
“자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으니까.”
“저는 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아니, 그게 자네의 제 정신이었다. 그날 밤에 내가 잘 곳이 없어서 자네를 찾았겠느냐? 자네의 ‘나’가 어떤 물건인지, 그것이 얼마나 자기중심으로 단단하게 굳어져 있는지, 그것을 보여주려고 갔던 것이다. 이 진실을 알아차리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우리의 길이 비롯된다. 더 이상 지난 일로 머뭇거리지 말고, 자, 다시 출발이다. 함께 가자!” 
 
저로 하여금 잘못을 저지르게 하시고 그것으로 깨우쳐주시는 참으로 이상한 스승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