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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스틸 앨리스(Still Alice)

석전碩田,제임스 2015. 5. 8. 11:10

영화를 보고 난 후, 간단하게나마 <리뷰>를 써야 하는 습관 때문에 쓰긴 써야 하는 데 딱히 뭘 써야 할 지 느낌이 없어 참 많이도 망설였습니다.

 

처음, 이 영화가 치매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해서 정말 기대를 하고 봤던 것이 사실입니다. 평생을 함께 살았던 어머니께서 돌아 가시기 전, 영화 속 주인공이 앓았던 알츠하이머(치매) 판정을 받았고, 그 이후 약 2년 반 정도 점점 악화되어 가는 과정을 정말 처절하게 목격하고 겪은 터이기도 하고, 그 덕분에 주변 사람들 중 치매 때문에 힘들어 하는 다른 가족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치매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영화가 될까 내가 영화 감독이 되어 영화 구상을 하기도 할 정도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그동안 TV 드라마를 비롯해서 많은 영화에서 치매를 다룬 작품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스틸 앨리스를 본 후, 콕 집어서 얘기하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동'이 없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또 감동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언론에서 쓴 리뷰들을 검색해 보니, "신파조로 치매를 다룬 종래의 치매 영화와는 다르다"는 표현을 써 가면서 긍정적으로 썼더군요. 이런 평을 읽고 저 자신에게 반문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이 영화를 보기 전 기대했던 것이,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흘리게 하는 신파조 감동을 기대한 것일까?'

 

미국 명문대의 존경 받는 언어학 교수이자, 세 아이의 엄마, 그리고 사랑 받는 최고의 아내로 행복한 삶을 살던 앨리스 하울랜드(쥴리언 무어 役). 그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강의 도중 익숙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고, 조깅을 하던 중 정신이 멍해져서 길을 잃어 버리기도 하고, 매일 매일 해 왔던 평범한 음식 조리하는 일도 애써 기억해 내야만 그 레시피가 생각이 날 정도입니다. 지성인 답게 당장 전문의를 찾아 상담을 합니다. 의사로 부터 받은 그녀의 진단은 조발성 알츠하이머. 나이 50에 걸리는 병으로는 희귀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완강하게 부정합니다. 그러나 증상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진행되어 가게 되고, 상담 의사는 다음에 올 때에는 남편과 반드시 같이 올 것을 권합니다. 집 안의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도 잊어 버리고, 아주 짧은 주소조차 기억해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영화를 본 후, 내가 기대했던 소위 '신파조 감동'이 없는 이유를 여러 날 고민하다가 나름대로 그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개의 치매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치매를 앓고 있는 가족이 있는 다른 가족 구성원의 고통과 현실을 다루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동병상련을 자극하는데 비해, 이 영화는 철저히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갔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은 절대로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고, 설혹 치매에 걸리더라도, 그 이후의 삶은 생각하기도 싫기 때문에 '부정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스틸 앨리스>는 이런 면에서, '만일 내가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생각하기도, 상상하기도 싫은 사실을 번뜩이는 지성미와 예쁜 여배우가 역할을 하면서 관객에게 거듭해서 답변을 강요하는 형식으로 영화가 진행되다 보니 질문을 받은 관객은 감동보다는 뭔가 부담스러운 뒤틀린 감정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 것'이라는 대사가 말하듯이, 알츠하이머(치매)라는 거역할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을 직면했을 때,  '나'라는 개인의 존재와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으며, 또 그 정체성을 지켜나간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화두를 우리들에게 던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심오한 화두를 던지고 싶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아쉬운 여운이 남는 것은 영화의 화면들이 섬세하고 심도있게 그런 장면들을 다루지 못하고 건성으로 다루고 지나갔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알츠하이머의 증상들은 대부분, 초기에 해당하는 케이스들이 대부분이고, 정작 힘들고 어려운 증상으로 우리 존재의 뿌리마저 송두리채 흔들어버리는 장면들은 모두 절제된건지 누락되어 있었습니다. 이 리뷰를 쓰기 위해서 이곳 저곳 이 영화에 대한 메타 정보들을 검색하다가 나중에 안 사실은 루게릭 병 선고를 받고 투병을 하고 있는 감독이 매가폰을 잡고 찍은 영화라서 그런 부분을 챙기는데는 시간과 에너지가 역부족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 데, 계속해서 '나'일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기억에만 남아 있는 내가 진정한 '나'일까?   만약 전자의 내가 나라고 주장한다면, 치매 환자는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기억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지만 죽은 거나 다름 없는 삶을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참으로 비감스런 질문이요,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으며, 또 그것을 지지해 주는 힘은 바로 '사랑'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말합니다.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이에요,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서 말에요.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자고 스스로 말하고 있어요."

 

 

 

 

*Jose Feliciano의 once there was a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