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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장>, 임권택 감독과의 대화 시간

석전碩田,제임스 2015. 4. 4. 18:04

금요일 저녁,  영화 <화장>을 감상한 후, 임권택 감독과 정성일  영화평론가와 함께 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참석했습니다. 예상 외로 관심을 가지고 찾아 준 관객들이 씨네큐브 제 1관을 가득 채웠습니다.

 

임 감독은 이 영화를 '여든이 다 된 늙은 사람의 삶 바라보기'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겸손하게 얘기했지만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에서 겪어내야만 하는 병듦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현실을 사실감 있게, 그러나 임권택 다운 절제된 시선과 영상으로 너무도 잘 표현해 낸 작품이었습니다.

 

2004년 제 28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김훈의 <화장>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이지만,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 자신이 밝혔듯이 쟝르가 전혀 다른 매체를 가지고 원작을 완전히 표현해 내기란 쉽지 않았고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지금까지 만든 여러 영화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로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본 수작(秀作)의 영화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거장 감독의 나이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작품이라는 말입니다.

 

아내가 죽어 아내가 기르던 진돗개를 더 이상 기를 수 없다는 판단에 오 상무(안성기 역)는 개를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안락사 시킵니다. 자신이 잠시 후 죽을 운명인 줄도 모르고 즐겁게 밖으로 따라 나가는 진돗개는 내일 닥칠 일을 모르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현실에서 해결해야 하는 회사의 큰 프로젝트를 완수해야 하는 일이 코 앞에 있는데, 아내가 사랑했던 진돗개라고 내가 힘겨워하면서도 키워내야 한다는 건, 어쩌면 직접 삶을 살아내야 하는 주인공의 입장이 아니라,  제 삼자의 시선으로 삶을 논하고 사랑을 논하는 타자의 입장이요, 그들의 시선일 뿐입니다.

 

아내가 2년 간 암 투병을 하면서 힘겨운 삶의 구간을 달려가고 있는 중에도, 젊은 여 사원에게 마음이 가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 그리고 한 때 못 보면 죽을 만큼 아내를 사랑했지만, 긴 병 수발로 이젠 '차라리 죽어 주었으면...'하는 인내의 한계에 부닥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누가 감히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소설에서 표현하고 있는 주인공의 이런 부분을 잘 소화해낼 만한 배우로, <안성기 만한 배우>가 없다고 판단해서 캐스팅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안성기만이 갖고 있는 캐릭터, 즉 '성실한 국민 배우 이미지'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감독의 마음을 국민 배우 안성기는 최고의 연기력으로 훌륭하게 소화해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노장 감독, 임권택이 바라 본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현실에서 몸을 부대끼면서 살아 내야 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것을 그는 '사실감'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혹자는 사랑은 열정과 감성이 넘쳐나는 애로틱한 것이야 하고, 혹은 죽고 나면 꽃 상여 꾸며 거창한 장례식을 차려줘야만 제대로 된 사랑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적어도 나이든 임 감독에게는 사랑은 '병상에서 아내가 시도 때도 없이 냄새 나는 똥을 쌀 때 그저 묵묵히 치부를 드러내 놓고 닦아 주는 일상의 작은 행동' 하나일 뿐입니다.  또 화려했던 과거가 있지만, 누구나 나이들고 병들면 삶의 마지막 구간을 힘겹게 달려가야 하는데, 그 때 '그저 옆에서 함께 해 줄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며 삶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작가나 감독에게 있어서 사랑과 삶, 죽음과 본능은 어쩌면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이 날 대화의 시간에서, 임권택 감독은 나이 든 사람의 시선으로 삶과 죽음, 사랑과 본능을 바라보고 흡족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지만, 젊은 사람들(일반관객들)은 어떻게 이해할 지 무척 궁금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 만큼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삶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과 연륜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흥행을 할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이 '나이듦' '연륜'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수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영화를 본 후, 데쟈뷰처럼 자꾸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난 2007년에 돌아 가신 어머니의 임종 직전의 모습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결혼하지 않은 처형이 투병 중인 주인공(아내, 김호정 역)과 비슷한 나이에 돌아가실 때의 모습이 그것입니다. 

 

18년 동안 시부모를 모셨던 아내가 어머니의 아랫도리를 벌거벗겨 놓고 비누칠을 하며 대변을 씻어내면서 했던 말이 영화를 보면서 특히 생각났습니다. '여보, 내가 나중에 치매 때문에 이 지경이 되면 그냥 보내줘요.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면 인생이 너무 슬프고 비감스러워요"하면서 울먹였던 표정이 말입니다. 이런 아내에게 저는 사랑이 없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아니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아니었다면 '함께 살' 수 없었을테니까요.  그리고, 그렇게도 곱고 이뻤던 처형이 암 투병을 하던 마지막 1년 간, 우리 부부가 했던 일이 바로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과 너무도 흡사한 장면들이었습니다.  임권택 감독이, 이 장면을 찍은 후 여자 주인공(아내)에게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찍혔어요."라면서 즉석에서 모니터를 이용해서 보여줬다는 그 화장실에서의 장면 말입니다. 그러나 이 때에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가와서 자신들의 언어로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얼마나 많이들 판단하면서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영화에서 그려진 것과 같이,  '화려한 꽃상여 차려 근사한 장례를 치뤄줘야 한다'는 식으로, 제 3자의 가식적이고 공허한 사랑 방식을 강요했지요. 결국, 처형을 화장해서 아내와 함께 의미있는 장소에 가서 재를 뿌려줬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때, 슬픔이 극에 달하면 울음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첨 알았습니다. 당황스럽고 고통스럽기 보다는 오히려 이성이 어쩌면 그리도 명징하게 작동하던지요. 통곡을 하면서 우는 건 사치나 가식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바로 그 때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에서 남편 오 상무의 모습이, 저는 충분히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오버하지 않고 또 가식하지도 않지만, 진짜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있는 모습 말입니다. 그저 한 사람 생활인이 살아내야 하는 삶과 죽음을 대하는 모습 말입니다.

 

영화가 개봉이 되면 열일 제쳐두고 달려가서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