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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배설 장군 후손들은 분기탱천

석전碩田,제임스 2015. 4. 20. 14:48

[구미일보에 실린 칼럼]

                        배설장군 후손들은 분기탱천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영화 ‘명량’이 한국사상 1,700만명 최고의 관람 기록을 세우면서 흥행에 성공을 했다고 하지만 그동안 임진왜란과 관련된 작품이 많이 나온터라 필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경북 성주에 사신다는 배윤호 문중 대표께서 팔자에게 전화로 영화 ‘명량’에서 배설장군이 역적으로 몰려 있어 배설장군의 후손으로서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소송에 들어간 사실도 알려주기에 배설장군의 사록(史錄)를 살펴보았다.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 등은 허구로 만든 픽션물이다. 물론 논픽션물도 있지만 대부분 작가의 창작적인 가상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역사물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비록 그 작품이 허구(픽션)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도 소설을 읽는 독자나 영화(드라마)를 보는 관중들은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따라서 역사물을 전문적으로 집필하는 작가는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한 논리적인 판단으로 소설이나 영화(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칫 법정 소송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장편소설 ‘대제국 백제에서 황국 일본까지’와 중편소설 ‘홍의장군’을 완성하고 발표를 준비중이다. ‘홍의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경남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운 분이다. ‘홍의장군’은 왜적과 싸우면서 후퇴하거나 산속에 들어가 숨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홍의장군의 이런 행위를 도망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실제로 도망도 아니다. 전쟁이란 상황에 따라 후퇴할 수도 있고 산속으로 들어가 숨을 수도 있다. ‘한국민족문화백과’에서 배설장군의 행적을 보니 도망으로 표기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전체의 내용을 보면 전투가 불리한 상항에서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배설장군’이 도망을 했다면 왕은 왜 ‘배설장군’에게 그가 쌓은 무공을 인정하여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을 했겠는가? 역적이라니 말이 안된다.

 

만일 싸우다가 작전상 후퇴한 걸 도망이라고 한다면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까지 후퇴한 백선엽 장군도 도망으로 봐야 하지만 누구도 도망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영화는 사실이거나 상상력에 바탕을 둔 허구적인 이야기지만 '명량' 영화가 좀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여 만들어졌다면 청소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교육적 효과도 있고 일반인에게도 한층 더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지 않았겠는가 싶다.

 

역사소설과 사극영화(드라마)는 아무나 쓸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반드시 역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만일 필자가 ‘명량' 영화의 대본을 썼다면 배설장군이 역적으로 등장하여 후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건 구성상 역적이 필요하다면 가상의 인물을 설정했을 것이다.

 

더구나 해전에 참전하지도 않았던 ‘배설장군’이 해전에 등장시켜 그가 거북선을 불태우고, 이순신 장군 암살 기도 등 왜군보다 더 악질적으로 묘사해 관객들은 흥미와 감동을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배씨 문중에선 분기탱천 했을 것은 자명하다, 만일 ‘권율장군’을 ‘배설장군’처럼 역적으로 등장시켰다면 안동권씨 문중에서도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명량' 영화를 보지 않아서 본 사람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유속이 빠른 울돌목 바닷 밑에 설치한 쇠사슬 전술로 인해 왜선이 침몰한 장면은 없고 왜군에게 병사가 많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휘영청 밝은 달밤에 남녀노소가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뛰는 장면도 없었다고 한다. 전남 진도에서는 해마다 ‘강강술래’ 놀이 행사를 한다. 이 ‘강강술래’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우리 병사의 수가 많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란 걸 모른다면 그 작가는 ‘명량’ 대본을 쓸 자격이 없다.

 

경주 배씨 후손들은 발끈하면서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명량' 영화 제작자들을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함으로써 사태의 귀추가 주목된다. 그들은 '예술표현의 자유니' '창작의 자유니' 등을 내세워 자기 정당화에만 급급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없다. 그들이 피해 당사자의 입장이 된다면 그들도 분통을 터뜨렸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돈보다 명예가 더 소중할 때가 있다. 실제로 인간의 명예는 목숨처럼 귀중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몇 년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는 비극이 발생한 적도 있었다.

 

제작자 측은 "영화는 영화대로 봐 달라"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배씨 문중의 입장은 다른 것 같다. 그들은 영화 자체가 허구이기 때문에 가공인물을 내세워 악역 부분을 얼마든지 묘사할 수 있다는 주장이 더욱 국민적 공감을 얻고 있다. 경주 배씨 후손들이 진정성 있는 사죄와 합당한 배상을 요구한 것은 당연하다. 차후에는 역사를 왜곡하거나 인물을 폄하하여 문제를 만드는 일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

*Words Sung by Bee Ge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