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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석전碩田,제임스 2015. 3. 23. 21:27

지난 한 주간 동안 계속해서 내 맘 속에서 맴돌았던 화두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131절에 나오는 이 복음서의 저자 요한의 표현이 그것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  

 

오래 전부터 성경의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사랑한다'는 동사를 수식하기 위해서 사용된 부사가 참으로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을 하되, 마음 절절이 사랑했다든지, 죽도록 사랑했다든지, 아니면 비교급이나 최상급을 사용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더 사랑했다고 표현한 게 아니라, "끝까지"라는 부사를 사용한 이유가 무엇일까?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의 그 사랑을 나는 만분의 일이라도 따라 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토요일, 이 세상을 이별하고 저 세상으로 떠난 한 지인을 먼저 보내고 내내 되뇌었던 화두였습니다  

 

그런데 322() 오후, EBS [일요 씨네마] 시간에 방영된 영화,<흐르는 강물처럼>을 다시 보면서 지난 한 주간 동안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내내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생각들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스코틀랜드 출신 장교로 목사가 되어 몬태나에서 작은 교회를 담임 하고 있는 리버런드 맥클레인이 아내와 함께 두 아들, 노만과 폴을 키우는 한 가정의 가족사(家族史)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두 부부가 자녀을 낳고 그들이 장성해가면서 또 한 인생을 살아내고, 그 후에도 여전히 어릴 적 그들이 낚시를 즐겼던 강물은 흘러가고 있는 광경을, 두 세대를 한 영화에 모두 담아 낸 영화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째 아들인 노만 맥클레인이 예전 아버지 같은 나이가 되어 부인도 먼저 보낸 후, 고향으로 내려와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 동생과 함께 낚시를 하면서 보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추억에 잠기는 모습입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극적인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큰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이 장성해 가면서 부부는 늙어가는, 생로병사의 사이클이 돌아가는 인생을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보여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한 몸에서 태어났지만, 장남 노만과 차남 폴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형은 일찌감치 도회지로 나가 대학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후,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얼마 후 큰 도시, 시카고 대학의 영문학과 교수로 초빙를 받게 됩니다. 반면 그 세월 동안 동생 폴은 고향에서 나름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낚시 전문 잡지사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고향을 지키는, 비록 에너지 넘치는 그의 삶이 부모의 우려를 자아내게 하지만 늘름한 젊은이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두 형제는 달라도 너무 다르게 어른이 되어갑니다  

 

영화의 진행은, 마치 소설을 읽어나가듯이 아름다운 몬태나의 풍광과 함께 들려오는 내레이션의 설명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그 내레이션 속에는 이야기가 있고, 아름다운 풍광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자연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의 전개에서 굳이 갈등 구조를 찾아보라고 요구한다면 두 형제가 달라도 너무 다른 삶의 스타일과 그들의 다른 성정 정도일 뿐입니다.  

 

한 가족의 가족 사를 통해서 이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오히려 사랑을 나누는 일에 서로 서툴다는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서툴다기 보다는 서로가 도움이 필요한 존재인지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노만이 사랑하게 된 제시의 오빠 닐, 그리고 노만의 친 동생 폴은 스타일은 다르지만 어쩌면 더 깊이 그들을 이해한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쉽지 않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시인이자 목사인 아버지 리버랜드 맥클레인을 회상하면서, 노만이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설교를 영화는 놓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해하려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지난 주간 내내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끝까지 사랑하는 건 무엇일까" 하는 화두는,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가슴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필요한 것임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록 가슴으로 사랑하는 데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그런 부분은 강물이 흘러가고 또 다음 세대가 그 자리를 이어받듯이, 자연의 흐름 속에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채워지는 것이라고, 또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인생이므로 당대에 다 이루려고 욕심 내지 말고 겸허하게 살아 가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John Baez의 The river in the Pi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