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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Finding Vivian Maier)

석전碩田,제임스 2015. 4. 22. 16:58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사전 지식 하나만 달랑 가지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보는 도중 지리하리 만큼 한 사람에 대해서 집요하게 추적하는 인터뷰 대사들을 읽으며서 영화를 봤고, 그러나 다 본 후에는 뭔가 찡하게 여운이 남는 게 있는,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영화가 바로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였습니다.  그래서 영화 제목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이지만,  어쩌면 이 영화는 '가장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를 찾아서' 파헤치는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모순적이다. 대담하다. 신비롭다. 비밀스럽다. 유별나다. 굉장히 비밀스러운 사람이다. 엄청난 수집광었다."

영화 첫 장면에서, 그녀를 기억하면서 표현하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또는 Vivian Myer).

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이름인데, 이름조차도 그 철자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사림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확실히 롤라이 플렉스 사진기로 놀라운 사진을 남기고 떠난 사람입니다.  그녀를 아는 사람마다 그녀에 대한 평가는 내용이 다 다를 정도로 알려진 게 별로없는 사람이지만,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전문 사진가들은 '진실된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 본성과 사진과 거리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고 평하는 사람입니다. 또 그들은 그녀가 인간에 대한 이해, 온기, 장난기가 넘쳐 보이고 유머 감각이 있으며, 비극도 볼 줄 아는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또 '아이들을 사랑하고 삶과 주변 환경에 대한 감각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사진가로서의 자질이 풍성한 사람'입니다.

 

조각 조각 단편적인 단서들을 가지고 한 사람, 비비안 마이어를 알아가는 다큐 형식의 영화 전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은 어떤 한 사람을 기억하고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함께 있는 동안 그 사람이 보였던 행동이나 언어들, 혹은 그 사람에 대한 느낌들을 기억할 뿐 그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며, 또 기본적으로 어떤 가족사를 가졌는지에 대한 것들은 여전히 신비에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비비안 마이어가 살아 낸 삶이 곧 지금 여기(Here & Now)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포함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비비안 마이어처럼 자신을 타인에게 알리는 데 필요한 사회적인 라벨(직책이라든지 직함, 또는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직분)을 가지지 못한 채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날 하늘이 부르면 이생을 마감하고 떠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사회적인 라벨을 근사하게, 여러 가지를 치렁 치렁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 '잘 살았다'고 박수를 보내고, 또 그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칭찬하면서 치켜세워 줍니다.

 

"그러나 진짜 그런 삶이 잘 살아 가는 삶일까요?"

 

바로 이 영화가, 아니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찍으면서 감독인 존 말루프(John Maloof)가 답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을까요? 

 

양파 껍질 벗기듯 벗겨져 가는 베일에 가렸던 그녀의 인생은 점점 외롭고 우울한, 그리고 쓸쓸함과 고독이 가득한 삶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녀가 찍었던 수많은 사진 속의 표정들과 감정들을 통해서 그녀는 스스로 소통하길 원했습니다. 물론 현상을 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일 기회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이 말은,  결국 우리네 인생도 우리 눈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통해서 찍혀지는 수많은 컷의 사진들이 차곡 차곡 쌓여지고 있을 뿐, 그것을 현상해서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부분, 삶을 살아가면서 부차적인 것들에 자신을 끼워 맞추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타인에 의해서 주어진 사회적인 라벨이 마치 진짜 자기 자신인양 속고 살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 쯤에서 비비안 마이어가 생전에 자신의 사진들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평생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다는 건 행복한 것이었다고 말하는 부분이 계속해서 여운이 남습니다. 그녀의 경우처럼 죽은 후에 우리의 삶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져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로또를 맞는 큰 행운이겠지만, 비록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맘껏 할 수 있는 것이 제대로 사는 삶이 아닐까?

 

틈틈이 보여주는 멋진 사진 작품들을 보는 즐거움은 물론, 다큐멘터리 영화 형식을 통해서 진지한 삶의 질문에 답하는 일에 탁월한,  영화 감독의 재능까지도 훔쳐 볼 수 있는 멋진 영화입니다. 강추입니다.

 

*2015.4.30일 씨네큐브에서 개봉 예정

 

 

 

 

* 배경음악은 Bon Jovi의 It's my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