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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석전碩田,제임스 2015. 1. 4. 21:43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감상한 후, 이런 멋진 영화를 기획하고 연출하여 세상에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내 놓는 '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부러우면서도 동시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스위스 알프스에 위치한 작은 마을 '실스마리아'라는 동네가 중요한 장소로, 그리고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인 산악 지대의 특이한 구름 현상이 복선을 깔고 있는 중요한 소재로 등장합니다. 그냥 지나치면 그만인, 하찮은 소재 하나를 활용하여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는 작품 하나를 근사하게 만들어 내는 감독은, 말하자면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창조자'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자신이 감독의 변을 통해서 이번 영화에 적합한 장소로 '실스마리아'를 떠올리게 된 것은, 바로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의 일화와 그가 쓴 ‘영원 회귀’를 논한 글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기나긴 병치레로 ‘실스마리아’에서 요양 중이던 니체는 불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중, 알프스 산맥의 장엄함과 이를 만들어낸 실스 호수를 본 순간 황홀함을 느꼈고, 며칠 후 똑같은 장소에서 변화무쌍한 구름 현상으로 인해 달라지는 광경을 보고 또 똑같은 황홀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니체가 모든 순간은 필연적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영원 회귀’를 생각해 낸 곳이 바로 실스마리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연 현상을 1924년에 산악 영화 감독 아르놀트 팡크가  짧은 영상에 담았다고 합니다. 그 영상의 이름은 <말로야의 구름현상>이라고 이름 붙여졌는데, 이 영상을 접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에게는 실스마리아라는 장소가, 자기가 기획하는 영화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는 강한 직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통해서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려고 하는 자신에게 무엇인가 힌트를 주는 곳이라고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로야의 구름 현상>은 스위스 동쪽 끝 엥가딘 언덕부터 ‘실스마리아’ 위를 지나 실바플라나, 생 모리츠까지 이어지는 구름으로, 높은 산맥과 협곡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뱀의 형상과 비슷해 이름 지어진 ‘말로야 스네이크’ 현상을 말한다고 합니다.  낡고 긁힌 필름 속에 담긴 짧은 영상은 거의 한 세기의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가 유비적으로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은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데, 이를 본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세월과 나이에 대한 성찰"뿐 아니라 "인생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찍기에 가장 잘 맞는, 이상적인 배경이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스무 살 시절, 연상의 상사인 '헬레나'를 유혹해 자살로 몰고 가는 젊고 매력적인 캐릭터 '시그리드' 연기로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마리아 앤더스(줄리엣 비노쉬).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 준 연극의 리메이크 버전에 출연 제의를 받게 되지만, 그녀에게 맡겨진 역할은 주인공이 아닌 나이 든 상사 헬레나.

리허설을 위해 매니저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과 함께 알프스의 외딴 지역인 '실스마리아'를 찾은 마리아는, 관객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시그리드'로만 남고 싶은 욕망에 20년 전 자기가 역할했던 '시그리드'역은 누가될 지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그리고 은근한 질투심까지 나타내면서 불안해합니다. 이런 그녀를 다잡기 위해서 매니저(비서) 발렌틴이 잔인하고 이기적인 ‘시그리드’보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헬레나’가 더 매력적인 배역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과정에서 결국 마리아는 발렌틴과 끊임없이 충돌하게 됩니다. 연극 속에서의 배역, 즉 헬레나와 시그리드의 관계와 지금 현재를 살아내는 마리아 앤더슨과 발렌틴의 관계가 서로 묘하게 스쳐지나는 것을, 영화는 긴장감 속에서 카메라로 잡아내고 있습니다.

 
새롭게 ‘시그리드’ 역을 맡게 된 할리우드의 스캔들 메이커 조앤(클로이 모레츠)의 젊음을 동반한 아름다움마저 질투하기 시작한 마리아, 또 그녀에게서 불안하고 이기적이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를 근거리에서 도움을 주면서 매니저 역할을 하는 발렌틴.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긴장감있게 그려 내면서 배우로서 정점을 찍었던 대 배우 마리아 앤더슨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이 영화를 리메이크 하기 위해서 배우를 캐스팅한다면 어떤 배우가 적합할까라는 질문을 해 봤습니다. 젊은 시절 일약 스타덤에 올라, 평생 배우로서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면서 멋지게 늙어간, 그래서 중년의 매력이 흘러넘치는 성공한 배우가 누가 있을까? 

 

아니, 이런 상투적인 질문보다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어느 누구인들 한번 쯤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그런 인생의 성공과 정점을 찍은 지점에서 얻은 명성과 재물, 지위를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내려 놓아야 하는데, 과연 나는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저런 인생의 질문들을 던져주는 영화라는 점에서 '秀作'의 평점을 주고 싶습니다. 꼭 한번 보세요. ^&^

 

 

 

 

 

* Carpenters의 Top of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