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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디센던트(The Descendants, 2011)

석전碩田,제임스 2012. 3. 7. 11:49

지난 주일 저녁 아내와 함께 광화문 씨네 큐브에서 영화 한편을 감상했습니다. 영화제목은 디센던트.. 오래 전 신문에 실린 영화평을 읽으면서 시간이 되면 한번 봐야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영화인데, 마침 주일 오후 EBS에서 방영한 영화 <모정>을 보고 난 후, '상영관에서 영화 한편 보는 게 어떠냐'는 갑작스런 아내의 제안에 보게되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잘 나가는 변호사인 남편 맷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그리고 그들의 두 딸 줄리와 알렉산드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 가족과 얽힌, 평범한 가정사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몇년 전 개봉되었던 영화 <오스트레일리아>가 호주의 광활한 아름다운 풍광을 선전하는 효과를 톡톡히 하는 문화적인 수단으로 활약했다면, 이 영화는 하와이라는 아름다운 땅의 풍광과 그 땅의 역사를 맘껏 홍보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그런 영화입니다. 

 

 

맷의 아내 엘리자베스(리사)가 어느 날 모터 보트 사고로 혼수 상태에 빠집니다. 아내의 사고에 절망한 맷은 열살짜리 막내 줄리와 함께 다른 섬 학교 기숙사에 있는 큰 딸 알렉산드라에게 엄마의 상태를 전하러 가지만, 그 간 일에만 매달려 살면서 가족에게 소홀했던 사이 부쩍 커버린 딸들과의 소통이 자신의 전문적인 일인 변호사 일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큰 딸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고 있으며, 그 사실 때문에 엄마를 미워하면서 사춘기의 삐딱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엄마도 싫고 아빠도 싫은 큰 딸은 아빠의 눈으로 보기에는 불량함의 극치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욕을 입에 달고 다니고, 엉뚱한 행동을 반복하는 작은 딸에게 그런 나쁜 말을 누가 하더냐고 물었더니 자연스럽게 언니를 가르키면서 손가락질을 하는 딸들과 가까워지는 건 참 어렵습니다. '가족'을 하나로 만들고 싶은데 그 방법을 알 수 없습니다. 커가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습니다. 그저 아내가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 주길 바라는 마음 뿐인데, 그 아내가 나 모르게 바람을 피웠다디...

 

그러나, 현재의 나의 삶의 상황이 어떠 하든 그것은 우리 각자가 살아내야 하는 삶의 문제일 뿐입니다.  세상은 힘든 상황에 있는 맷에게 그리 너그럽지 않습니다. 살아가기 위해서 일은 계속해야 하고, 조상대대로 물려 받은 광활한 땅을 처리해야 하는 골치 아픈 일도 앞에 놓여 있습니다. 또 아이들의 학교에 불려가서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으로 아이 친구의 집에까지 찾아가 사과도 해야 하는, 그동안 아내 리사가 했을 법한 일들을 감당해야합니다.

 

 

 

결국 아내의 소생은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으면서, 평소 아내의 유언대로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이제 아내는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조차, 아내의 거짓 행위인 바람 피운 일 때문에 생긴 배신감과 충격, 당황, 그리고 놀라움이 어느 정도 가시면서 은근히 바람을 피운 상대 남자 브라운 스피어를 아내가 진짜로 사랑했을까, 아니 상대 남자는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해서 서로 바람을 피운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확인 작업에 나서는 장면은 어쩌면 코믹한 슬픔을 느끼게도 합니다. 그리고 그 남자로 하여금 아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하고 싶어 집니다.

 

 

크게 분노하고 울부짖고 통곡하는 등 극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을 이 영화에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슬픔, 분노, 복잡한 심정,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 곤란함 등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고 시종일관 맷과 그의 가족의 움직임을 좇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영화의 제목이 <The Descendants>가 되어야 할까? 딱 이거다 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의 카메라 앵글을 따라가다 보면 그 힌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벽에 걸린 오래된 선조들의 사진이 여러번 반복해서 비춰지는 장면이 바로 그 힌트입니다. 그들의 후손들이 현재 하와이 땅을 살아가면서 겪고 있는 <지금-이곳에서>의 이야기는 그저 평범한 일상입니다. 가족을 이루고, 이별을 겪고, 성장하고, 화합하면서 조상들이 물려 준 땅을 거닐고...친척들, 가족들, 사랑과 이별, 슬픔과 행복, 배신과 믿음....그래서 또 한 세대가 지나가고 또 다른 세대가 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내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 말입니다.  <Here & Now>..지금 이곳에서 내가 살아내야 할 삶은, 조상들이 후손인 나에게 물려 준 땅을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의 세대에서 단절되지 않도록 잘 보존해서 다음 세대(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임을 영화는 잔잔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와이의 멋진 풍광들이 가득한 영화 디센던트...그리고 삶은 계속 이어지고 또 그렇게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