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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석전碩田,제임스 2012. 1. 28. 22:22

 

설날 연휴 마지막 날, 예약을 하지 않은 채 아내, 그리고 키르키즈스탄에서 유학 온 아야나와 함께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 집 가까운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시간대에 상영하는 영화를 얼른 하나 보고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사실 설날 명절에 우리 집에 와서 명절을 쇠고 있는 아야나에게 평범한 한국 사람들이 명절을 보내는 소일거리 중의 하나가 '영화보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영화가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거의 모든 영화가 매진 행진을 하면서 발디딜 틈 없이 붐비는 영화관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20분  남짓 후에 상영되는 영화 중 제일 앞 자리 몇 자리가 여유가 있었던 영화가 바로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는 영화였습니다.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 영화를 보는 중에 가끔씩 등장하는 폭력적인 장면들과 정사 장면들에서는, 외국에서 온 젊은 여학생과 아내에게는 그리 편하진 않겠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별로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였지만 기대 이상으로 영화를 보고난 후에 며칠 전 봤던 <부르진 화살>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수작(秀作)의 영화였습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동안 헐리우드가 각 나라에서 호평을 받은 소설과 영화를 리메이크해 오고 있는데, 이 영화도 그런 영화의 하나라고 합니다. 이 영화는 스웨덴의 스티그 라르손의  3부작 소설인데, 이미 스웨덴에서 3부작 모두 영화로 제작되어 상영될 정도로 인기를 구가했던 스릴러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이 소설로 10부작까지 이야기를 펼쳐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3부까지 탈고하고 난 후 갑작스럽게 죽었다고 하니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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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차관자금을 유용해 크로아티아 우익단체에 지원하는 금융재벌인 '한스 에리크 베니르스트룀'의 부패와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를 게재해 소송에 시달리다 끝내 증거 부족으로 패소한 주간지, <밀레니엄>의 기자인 '미카엘 플롬크리스트'는 그간 쌓아 온 명성과 재산을 모두 날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감옥에 갈 날도 머지 않습니다. 그런 그에게 스웨덴 최고의 재벌, '방예르' 그룹의 총수 '헨리크 방예르'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 옵니다.

 

표면적으로는 죽음이 머지 않은 자신의 자서전 집필을 부탁하는 헨리크였지만, 사실은 40여년 전 단서 하나 없이 집에서 사라져 버린 손녀딸 '하리에트' 살인 사건의 진실을 몰래 조사해달라며 <밀레니엄>의 두 배의 보수와 함께 베네르스트룀과의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확실한 정보를 주겠다는 거부하기 어려운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낸 뒤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지만 뛰어난 기억력과 정보 분석력, 컴퓨터 해킹 실력 등으로 '밀턴 시큐어리티'라는 보안 업체에서 비밀 조사업무를 맡고 있는 '리베스트 살란데르'. 미카엘과 함께 영화를 이끌고 갈 또 다른 주인공입니다. 미카엘의 배후를 해킹으로 알아내서 결정적으로 패소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되었지만 미카엘은 자료 수집과 분석을 위해서 그녀를 조수로 고용하고 하리에트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원작 소설의 원래 제목은 <용문신을 한 소녀(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입니다. 이 제목이 말해 주듯 언뜻 보면 영화의 주인공이 미카엘인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천재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타락한 비리 자본가와 추악한 이면을 가진 재벌가 가족에 대한 진실 규명' 같이 보이지만 사실 소설가 스티그 라르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폭력성', 특히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남녀평등, 민주주의, 복지가 우수하게 정착되어 있는 스웨덴 안에서조차 스웨덴 1등 기업의 대표 '마르틴'은 소외된 여성을 강간하고 고문하고 죽이고, '리스베트'의 아버지 '살리첸코'는 리스베트의 어머니를 허구한 날 때리고 학대하고, 리스베트의 후견인 '닐스 비우르만' 변호사는 그녀를 보호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를 강간합니다. 영화 속의 이 모든 행동들은 남성이 힘을 앞세워 여자들에게 행하는 폭력들입니다. 이러한 '남성들의 여성을 향한 폭력'을 영화 제목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무참하게 강간했던 '비우르만' 변호사의 몸에 치욕적인 문신을 새겨 보복했던 '리스베트'의 행위, 즉 사회의 약자인 그녀가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항하는 행위는 언제나 약자일수밖에 없는 영화 관객들에게 묘한 동질감과 쾌감을 전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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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왜 영화의 제목이 <밀레니엄>이어야 할까?' 

 

과학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해 있는 21세기 최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화 속에 있는 폭력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국가가 최 첨단의 시스템으로 갖춰지면 갖춰질수록 권력기관의 잘못된 윤리관이 소수의 약자들을 더 교묘하게 고단한 삶으로 내몰수 있는 것도 옛날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앞으로의 세기, 즉 <밀레니엄> 시대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붙여진 제목은 아닐까?   천재 해커 '리스베트'와 같은 인물이 지금은 부적응 관리 보호 대상자로 분류되지만, 밀레니엄 시대에는 결국 '리스베트'가 하나의 정상적인 캐릭터라는 사실을 아이러니컬하게 보여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 영화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기대하지 않고 감상했던 한 편의 영화가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후속으로 만들어질 밀레니엄 시리즈 2부, 3부 이야기에도 기대를 갖게 만드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