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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著, 세계사 刊

석전碩田,제임스 2011. 12. 17. 23:07

 

 

 

지난 11월 말, 대학 동문 모임에서 어느 후배가 슬며시 곁으로 오더니 <오두막>이라는 책을 읽어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형이라면 아마도 그 책 속에 있는 사람과 같이 대답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노라"면서 한번 읽기를 권했습니다. 도대체 내용이 뭐길래, 그리고 그 책 속에서 어떻게 얘기했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 후배와의 짧은 대화로 인해 멋진 책 한권을 읽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년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윌리엄 폴 영이 쉰이 넘어서 쓴 첫 번째 장편 소설이자 유일한 소설이라는 책 소개가 좀 특이합니다. 애초에 출판하려고 쓴 책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여섯 자녀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썼던 원고였습니다. 2005년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15권을 복사본으로 만들어 돌려 읽게 했는데, 이 원고를 읽었던 사람들이 출판하는 게 좋겠다고 강하게 권유하는 바람에 출판하려 했으나, 막상 책을 출판해주려는 곳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계속 퇴짜를 맞던 이 원고를 가지고 2007년 친분이 있는 두 명의 목사와 함께 출판사를 직접 만든 후에 출판을 했고 홍보와 광고도 직접 인터넷을 통해서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입소문과 인터넷 광고만으로 판매된 이 책은 그 후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지금까지 600만부 이상이 팔렸으며, 2008년 여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하는 베스트 셀러 1위에 오른 후 지금까지 38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살아가면서 아픔과 상처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생채기를 보듬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 메켄지()라는 아픔이 많고 상처가 많은 중년의 한 사나이를 등장시켜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고, 누구를 만나든 푸근한 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는지, 그 사연을 들은 친구인 <>가 말하는 형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 맥이라는 중년의 주인공은 미국의 중서부 농장지대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집안은 육체 노동과 혹독한 규율을 중시하는 아일랜드계였고, 더욱이 그의 아버지는 대단히 엄격한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비가 오지 않거나 비가 너무 일찍 올 때, 또는 그 사이에 남몰래 술을 퍼마시는 알코올 중독자이기도 했습니다. 맥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입에 올릴 때면 그의 얼굴에서 감정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어둡고 생기없는 눈빛만 남곤 할 정도로 유년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만취해서 기분이 좋게 잠드는 술꾼이라기 보다는 아내를 폭행하고 나중에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술주정뱅이였습니다.  

 

맥이 열세 살 때 청소년 부흥집회에 갔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교회 지도자에게 자신의 집안 사정을 털어 놓게 되었습니다. 술 취한 아버지에게 심하게 구타당하는 어머니가 의식을 잃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으면서도 자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고백을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상담을 했던 그 교회 지도자가 아버지와 같은 교회를 출석한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며칠 뒤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와 여동생들은 아무도 없고 아버지 혼자 현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집안의 비밀을, 아니 자신의 크나 큰 비밀을 동료 교인에게 발설한 반항아 아들에게 효도가 뭔지를 제대로 교육시키려고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메이 이모네로 보냈다는 사실을 그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맥은 거의 이틀동안 집 뒷쪽의 커다란 참나무에 묶여서 허리띠로 매를 맞았고, 아버지가 술병을 내려놓고 어느 정도 술에서 깨어난 후에는 성경구절로 야단치는 것까지 질리도록 들어야 했습니다.  

 

2주 후, 간신히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맥은 그 길로 집을 떠났습니다. 집을 떠나기 전, 농장에서 찾은 빈 술병마다 살충제를 넣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열세 살의 청년이 끔찍했던 가정을 자발적으로 나온 이후 나이 오십이 넘도록 그 가정으로 되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런 끔찍했던 유년의 상처를 안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빠르게 적응해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상처가 잊혀질 때 쯤에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단란한 가정도 꾸렸고 또 나름대로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어엿한 중년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느낌을 조금씩 느껴갈 즈음,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가족 여행을 갔다가 어린 소녀만을 유괴하는 연쇄 살인마에게 딸을 잃는 끔찍한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절망과 슬픔, 그리고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상처들이 한꺼번에 오버랩 되면서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맥에게 어느 날 딸 미시가 살인범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던 오두막으로 오라는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됩니다. 파파(맥에게 파파라는 이름은 생각조차도 하기 싫은 말이기도 하고, 자신과 자신의 딸을 지켜주지 못한 원망스런 하나님을 부를 때 쓰는 말임)라는 이름으로  

 

이 소설의 이야기는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전개되어갑니다. 그리고 그 오두막에서 맥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 깊은 삶의 문제들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나가는 아주 특별한 만남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 소설은 종교 동화라고도 할 수 있고 또 기독교의 교리적인 문제를 잘 설명하는 이야기식 메뉴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딱딱한 교리서와는 달리, 실제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님과 성령, 예수를 만나서 대화하는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는 상처들과 슬픔, 절망과 아픔들은 사랑과 용서로만 해결될 수 있다는 내용을 너무도 절묘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안고 있는 삶의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서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믿음 없음'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극한의 슬픔이 우리를 엄습해 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인자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메시지가 큰 폭포소리처럼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맥이 오두막에서 하나님이신 파파와 성령 하나님인 사라유, 그리고 성자이신 예수와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고 마음에 안고 살아온 상처와 슬픔을 가지고 대화하는 장면은 마치 잘 다듬어진 자연의 정원에서 이루어지는 상담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또한 파파, 사라유, 예수가 서로 소통하면서 대화하는 '완전한 관계'의 모형은, 우리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추구해야 할 관계의 질이 어떠해야 함을 힘주어 말해주는 듯 합니다.  

 

굳이 종교가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여러가지 삶의 문제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 지식이나 원리, 원칙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이 해결책 - 을 갖기 원한다든지, 무조건적인 긍정적인 배려와 수용을 통해서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하면 어떤 변화가 오는 지에 대한 힌트를 얻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번 읽어 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좋은 책 한 권을 절묘한 방법으로 호기심을 자극시키면서 소개해 준 후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