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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게 말걸기, 문학동네 刊, 다니얼 고틀립 著

석전碩田,제임스 2011. 6. 29. 17:20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정호승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는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

 

지난 며칠 동안 다니엘 고틀립이 쓴 <마음에게 말걸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게 많았습니다. 삶을 살아가다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예기치 않은 삶의 문제에 맞서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하게 크게 다르지 않지만 크게 두 가지 반응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분노와 화, 그리고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절망과 우울을 겪다가, 점차적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그 엄청난 삶의 역경을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니엘 고틀립.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의 교수로, 임상 상담심리 치료가로 촉망된 장래가 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33세가 되던 해, 예기치 않는 불의의 출근길 교통 사고를 당하면서, 엄청난 삶의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척수 손상을 입어 전신 마비가 되었고 평생 휠체어를 의지해야 하는 상황. 그 와중에 아내가 떠나가고(이혼) 지독한 우울증, 그리고 자녀들의 방황, 자신을 가장 신뢰해주던 누나의 갑작스런 죽음과 부모님의 죽음 등을 차례로 경험하게 됩니다. 심지어 둘째 딸이 낳은 유일한 손자가 자폐증 판정을 받게 되는 고통의 연속입니다. 다니엘에게 닥친 삶의 무게는, 그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조차도 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다가온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절망의 상황에서 굴복하지 않고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서 주옥 같은 삶의 잠언들을 풀어내는 삶을 선택합니다.  사고 이전의 삶이 머리로, 이성으로, 합리성으로 살았던 인생이라면, 사고 이후에는 잠잠히 삶을 관망하면서 가슴과 마음으로 맞딱뜨리는 것을 배우면서 진정한 성숙함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과정 속에서, '설명'보다는 '느낌'으로, '이성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직접 경험하는 것'을 더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자신의 깨달음을 고백하는 고백록이라고 말하면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의 절망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직도 전신마비 환자로 휠체어에 묶여 있는 그는 이 책을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될 것 같다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 책은 솔직한, 그러면서도 삶을 마음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자기 고백서입니다.  그의 다른 저서인 <샘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마음에게 말걸기>를 읽으면 저자의 따뜻한 시선과 유머, 그리고 가슴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연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을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

 

정호승 시인의 시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라는 시를 읽으면서, 다니엘 고틀립의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과 같은 류의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의 시에서 매연마다 '이제는~'이라고 시작하는 표현이 특별히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예전에는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낙엽에 '대해서' 아는 사람을 사랑했다면, 이제는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가슴으로 살아갈 줄을 아는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삶을 보는 눈의 변화를 노래하는 듯 합니다.  예전에는 머리와 이성, 합리성으로 사는 사람을 사랑했다면, 이제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하리라는 시인의 다짐이 느껴지는 시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음에게 말걸기>에 나오는 내용 중, 다니엘이 자신의 누나가 죽은 후, 장례식 추도사에서 애정어린 표현으로 누나를 기리는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나는 누나가 나와 비밀을 공유하는 가장 절친한 친구였으며, 희생과 정직의 참뜻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나의 역할 모델이 되어 주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 평생동안 어느 누구도 누나처럼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주지는 못했으며 그녀의 죽음은 내 인생에 영원한 빈 자리를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중략) 무엇보다 나의 누나는 다음과 같은 하시디즘 우화집에 나오는 랍비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한 늙은 랍비가 제자들에게 밤이 끝나고 새벽이 시작되는 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그때가 가장 신성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저 멀리 동물이 있는데 그 동물이 양인지 개인지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요?" 한 제자가 되물었다.

"아니다." 랍비가 답했다.

"그러면 멀리서 나무를 보았는데 그것이 무화과나무인지 배나무인지 알아볼 수 있는 시간 아닙니까?" 또다른 제자가 물었다.

"아니다." 랍비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몇 명이 대답했지만 모두 틀렸다고 하자 제자들이 물었다.

"그럼 말씀해주십시오. 대체 언제가 새벽이 시작되는 시간이지요?"

"어떤 남자나 여자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들이 저희의 형제 자매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다면, 그 때가 새벽이니라. 그 전까지는 아직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