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 생명의 전화 상담 봉사원들의 소그룹 모임의 하나인 <해오름> 게시판에 지난 11월 모임 후기(後記)로 제가 올렸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소그룹 해오름 모임은 그동안 15여년동안 꾸준히 매주 셋째 월요일에 모이는 서울 생명의 전화의 상담연구 모임입니다.
1.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입니다. 어릴적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동화입니다. 자신을 수탉이라고 생각하여 닭 행세를 하는 왕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왕자를 둔 왕인 아버지는 근심하다가 전국의 용한 의원들에게 치료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나 천하의 용한 의원들이 다 모여서 왕자를 진찰하고 치료하였지만 치료되기는 커녕 더욱 증상은 더해갈 즈음, 한 허름한 차림의 의원 한 사람이 궁중을 찾았습니다. 외모로 봐선 도저히 신뢰가 가지 않는 차림의 의원이었지만 사정이 급한 왕은 왕자의 치료를 하도록 지시합니다.
의원은 궁중의 식탁 밑에서 수탉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는 왕자에게 다가가 아무 말 없이 그 식탁밑으로 들어가 함께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를 본 왕자가 이상해서 의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거기서 뭐 하는거요? 당신은 누구요?"
"나는 암탉입니다."
"웃기지 마시오 당신은 사람이지 어떻게 당신이 암탉이란 말이오?"
"내가 사람으로 보인단 말이오? 나는 분명히 암탉인데, 왕자님이 보시기엔 분명히 사람이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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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의원과 왕자가 대화가 되기 시작하면서, 우스꽝스런 자기 체면에 묶여 있던 왕자가 치료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서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던 왕자가, 제대로 된 의원을 만나서 외부 세계와 소통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소통의 끈으로부터 치유가 일어난 것이고요.
2. 또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 2주 전, 우리와 함께 해 온, 해오름 식구 중 한 분이신 한정희 선생님께서 입원하셨습니다. 물론 우리 해오름 모임에 참석하신지는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처음 몇 번 참석하셨다가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번 결석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전혀 얘기치 않은 병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있습니다. 그 황망스런 소식을 듣고 병실을 찾았습니다. 큰 병이지만 밝은 표정으로 병상에 계신 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시련들이 우리의 눈으로 보기엔 불가능한 것 같고 또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수렁처럼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또 다른 삶의 안목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구약 성경 욥기를 다시 읽으면서 받았던 은혜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그동안 욥기를 강해하거나 설교하면서, 주인공 욥이라는 사람의 신앙이 어려움을 당해도 꿋꿋이 참아내는 인내의 신앙인으로서, 엄청나게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가르쳐온 탓에, 욥기를 읽어도 항상 뭔가 답답증을 해소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었는데, 최근 욥기의 주제가 내가 배워온 그런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욥기는 욥의 신앙이 좋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욥의 신앙이 율법적인 신앙, 행위와 도덕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신앙, 그리고 자기 자신 중심의 신앙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 은혜와 인자의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주제라는 사실을 새롭게 묵상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으며 바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만을 구하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병상에 있는 시간동안, 다른 것 보다 욥과 같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관계맺었던 사람-가족, 친척, 친구, 동료-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소명이 있다는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42:10)
우리 해오름 식구들이 함께 기도문을 읽으면서 한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하기로 한 것은, 이런 이야기에게서, 우리들 자신이 개입되는 첫 발걸음이자, 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우리 해오름의 이야기가 되는 첫 출발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3.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화, <패치 아담스>를 보면서 눈물을 찔끔 훔칠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속에 이야기의 구조가 탄탄하게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담 공부를 해 나가는 우리들에게는 상담적인 상황과 기술, 그리고 태도 등에서 여러가지 힌트를 주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영화가 감동을 주는 것은, 허구로 쓰여진 소설에서 영화화 된 것이 아니라, 실제의 인물, 실제의 장소, 실제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동화 이야기가 아니라, 매일 매일 내가 써 내려가는 삶의 이야기 말입니다. 또 주위에서 일어나는 동료의 이야기도 아니고 또 친척이나 가족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바로 내 스스로가 절대자 앞에서 살아내야 하는, 내 삶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려 이런 나의 삶의 이야기들은 선뜻 꺼내기도,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주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또 들어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해오름이 그런 멋진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겨울의 초입입니다. 찬 바람 부는 계절이 돌아오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이 넘치는 우리 해오름은 늘 따뜻한 바람, 훈훈한 바람이 넘치는 장소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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