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근무하면서 거의 10년을 넘게 한 부서에서 근무했던
곳이 대학신문사입니다. 매년 11월이면 학예술상 작품을 공
모한 후 당선작을 발표합니다. 시, 소설, 평론, 사진 부문에서
당선된 학생들은, 대학에서 나름대로의 필력을 과시할 수 있
는, 일종의 문학도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느 해, 당선된 학생들에게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는 자리에
서 당시 편집인 겸 주간을 맡으셨던, 문학평론을 전공하셨던
교수님이 했던 한 마디를 저는 늘 기억하곤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상장과 상금 때문에 인생을 올인하는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참좋겠습니다. 그저 아름다운 학창 시절의 추
억 쯤으로만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분의 말은, 혹시 어린 학생들이 규모가 작은 대학신문사의
학예술상에서 당선된 사건에 너무 집착한 나머니, 자신의 전
공과 현실적으로 걸어 갈 길을 잊고, 배고픈 문학을 한답시고
일생을 내던질까봐, 노파심에서 했던 말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나에게는, 그저 축하해 주면서
적당한 덕담을 하는 것 보다는 훨씬 더 피부에 와 닿는 격려의
메시지로 들렸습니다.
*
공식적으로 시인과 소설가 등 문학인으로의 등단 과정으로는
일간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신춘문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
주위에도 몇 몇 분이 신춘문예에 집착하면서 몇 해를 도전하
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어찌보면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이
일반인들에게는 추천을 통한 과정보다는 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선되기가 소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 같이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당선이 되면 본인 뿐 아니라, 가문의
영광이기도 한 것이 바로 권위있는 일간신문 신춘문예에서
의 당선이지요.
그런데, 이런 일간신문의 신춘문예에 동시에 두 군데서 당선
된다면 우리는 그걸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지난 번에 구입했던 1일자 일간신문을 통해서, 당선작들을
읽어나가다가, 시 부문에서 두 군데 신문에서 동시에 당선
된 행운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신선한 당선작 두 개의 작품을 기쁜 마음으로 소
개할 요량으로 이렇게 길게 글을 쓰게 되네요. 따끈 따끈한
감동이 묻어 있는 당선 소감을 읽는 재미도 있어, 함께 실어
봤습니다. ^&^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불가리아의 여인
이 윤 설
매일 창 여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지만,
매일 창 여는 순간 일정하게 지나가는
이국의 여인.
자줏빛 붉은 함박꽃 모직코트를 여며 입은 그 몸은 뚱뚱하나
검게 불 타는 흑발,
영롱한 흑요석의 눈동자를
불가리아 여인, 이라 칭하기로 하자.
가본 적 없는데도 그 여인 볼 때마다
벽력처럼 외쳐지는
불가리아!
정염의 혀가 이글거리는
태양과 열정이
조합된
발음!
가혹하게 태질하는 칼바람을
움츠려 깊이 찔러넣은
함박 핀 꽃은
불길하게도 피붉어
하염없이 걷고 걸어도 불가리아 여인
하염없이 걷고 걸어도 내 창 앞 그 여인
어쩌다 여기에 와 있는 거죠,
겹쳐진 창문으로 지나가는 그 여인
부풀어 터질 듯 꽃핀 몸, 타오르는
흑요석 눈빛은 생각하겠지,
저 이방의 여인 코리아의 여인
창 속의 갇힌 듯 노랗게 뜬 얼굴 부르쥔 손
왜 내가 지나가는 이 시간마다 일정하게 창을 여는 걸까.
어떤 이끌림이
그녀와 나의 눈동자 속 흑점에 맞추어지고
우리 서로 의아해하며 바라본다
왜 하필 나를 선택한 걸까.
하고많은 사람 중에
불가리아 여인
코리아 여인
우연히 다시 만난다면 스치듯 안녕,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불길하게도 매일 일정하게.
▶당선소감
사람은 누구에게나 은유가 있다.
오래도록 어두운 창을 바라보는 날이었어도 잘 지냈다고 미소지을 때,
그 미소에는 그의 혼자인 촛불이 흔들리던 날들과 등을 기대고 허공에
그리던 얼굴 같은 것들이 모두 둥글게 감싸인 채 소유되는 것이다.
돌아서는 그의 어깨 뒤로 숲의 잎들이 가을을 받아적기 시작할 때,
그는 그 모든 날들을 자신의 힘겨운 육체의 일부분으로 가지고 호젓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시인인 때는 제 뜨거운 아픔을 손에 꽉 쥐고도 놓지 않고
지니고 갈 때이다. 그것이 또 하나의 자신이 될 때까지 버리지 못하고
울 때이다.
사람의 은유는 신에게서 배워 사람만이 읽을 수 있도록 주어진 것,
그래서 그는 신의 은유로써 살아가고 신의 품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신이 그를 버리지 못하고 울 때이다.
오늘 이 평범한 기적에서 나는 신의 은유를 느낀다. (세계일보)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이 윤 설
비린 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어요
슬펐거든요. 울면서 마른 나뭇잎 따 먹었죠, 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졌죠.
사실 나무를 통째 먹기엔 제 입 턱없이 조그마했지만요
앉은 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 깨끗이 아작냈죠.
멀리 뻗은 연한 가지는 똑똑 어금니로 끊어 먹고
잎사귀에 몸 말고 잠든 매미 껍질도 이빨 새에 으깨어졌죠.
뿌리째 씹는 순서 앞에서
새알이 터졌나? 머리 위에서 새들이 빙빙 돌면서 짹짹거렸어요
한 입에 넣기에 좀 곤란했지만요
닭다리를 생각하면 돼요. 양손에 쥐고 좌-악 찢는 거죠.
뿌리라는 것들은 닭발같아서 뼈째 씹어야해요. 오도독 오도독 물렁뼈처럼
씹을 수록 맛이 나죠. 전 단지 살아있는 세계로 들어가고팠을 뿐이었어요.
나무 한 그루 다 먹을 줄, 미처 몰랐다구요.
당신은 떠났고 울면서 나무를 씹어 삼키었죠.
섬세한 잎맥만 남기고 갉작이는 애벌레처럼
바람을 햇빛을 흙의 습윤을 잘 발라 먹었어요. 나무의 살집은
아주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죠. 푸른 생선처럼 날 것의 비린 나무 냄새.
살아있는 활어의 저 노호하는 나무 비늘들.
두 손에 흠뻑 적신 나무즙으로 저는 여름내 우는 매미의 눈이 되었어요.
슬프면 비린 게 먹고 싶어져요,
아이 살처럼 몰캉한 나무 뜯어먹으러 저 숲으로 가요.
▶당선소감
꿈같고 꿈에서 운 아침같다
한때 당신과 나, 우리 둘이는 짝짝이 신발처럼 어색했지만 잘도 어울려 다녔다.
내가 가장 착할 때 당신은 떠났고
왜냐고 묻지 못했다.
조금씩 해와 달의 각도를 맞추듯 그렇게
느린 우주의 걸음으로 걸어와 당신을 다시 만났다.
참 예쁜 당신
당신이 나를 알아볼 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그냥 안아줄 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 말도 묻지 않겠다.
이 별에 오길 잘했다.(조선일보)
▣ Gloria sung by Laura Branigan
Gloria
You're always on the run now
Running after somebody
You gotta get him somehow
I think you got to slow down
Before you start to blow it
I think you're heading for a breakdown
So be careful not to show it
You really don't remember
Was it something that he said
Or the voices in your head, calling Gloria
Gloria
Don't you think you're falling
If everybody wants you
Why isn't anybody calling
You don't have to answer
Leave'en hanging on the line
Oh, calling Gloria, Gloria
I think they got your number
I think they got the alias
That you've been living under
But you really don't remember
Was it something that they said
Or the voices in your head, calling Gloria
Gloria
How's it going to go down
Will you meet him on the main line
Or will you catch him on the rebound
Will you marry for the money
Take a lover in the afternoon
Feel your innocence slipping away
Don't believe it's coming back soon
Gloria
Don't you think you're falling
If everybody wants you
Why isn't anybody calling
You don't have to answer
Leave'en hanging on the line
Oh, calling Gloria, Gloria
Gloria
I think they got your number
I think they got the alias
That you've been living under
But you really don't remember
Was it something that they said
Or the voices in your head, calling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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