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문학 3월호>(1934년 4월)
- 시집 <영랑시집>(시문학사, 1935)
* 감상 : 김윤식 시인. 호는 영랑.
1903년 1월16일, 전남 강진군 군내면(현재 강진읍) 남성리에서 대지주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17년 휘문의숙(현재 휘문고등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였으며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강진으로 돌아와 3.1운동을 준비하던 중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 후 1920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그곳에서 무정부주의자였던 박열과 가까이 지냈으며, 아오야마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중 괴테, 키이츠 등 외국 문학에 깊이 심취했습니다. 그러던 중 관동대지진이 발생, 학업을 중단하고 황망히 귀국하였습니다. 1930년 정지용 시인과 함께 박용철이 주도했던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때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시를 많이 발표하였으며 창씨개명(創氏改名),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1945년 8월, 광복과 더불어 보수 쪽 정계에 입문하여 활동했지만, 그들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성향에 금새 질려 그만두고 당시 이승만 정권하에서 공보 비서관이었던 시인 김광섭의 권유로 공보처 출판국장직을 맡았지만, 이것도 그 안에 친일파들이 득실거리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의 평생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을 6개월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강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습니다. 1950년 서울 수복 다음 날인 9월 29일, 퇴각하던 북한군이 아무렇게나 쏜 유탄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을 아실이’, ‘봄 밭에 봄마음’ 등이 있으며, 향토적이고 토속적인 운율이 살아있는 순수 서정시로, 김소월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 계보의 효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물론 시인이 순수시만을 고집했던 것은 아니고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기러기’. ‘거문고’, ‘묘비명’ 등의 시를 통해 삶에 대한 회의를 노래하기도 했으며, 광복 후에는 순수 서정시와는 거리가 먼 우익 정치에 관심을 보이며 사회 개혁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남긴 시집으로는 <영랑시집>(1935), <영랑시선>(1949) 등 두 권이 있는데 영랑은 시집을 낼 때 시의 제목을 붙인 적이 없었고 제목 자리에는 번호만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유명한 시 제목들은 대개 시의 첫 구절을 제목으로 뽑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연남동 단독 주택 마당 한쪽에는 커다란 모란 꽃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이맘때쯤이면 검붉은 자주색 꽃이 탐스럽게 피어, 담장 허물기를 한 골목을 환히 밝혀주었지요. 이른 봄 목련이 지고 나면 연달아 할미꽃, 앵두꽃, 철쭉, 모란, 찔레꽃 등 각종 꽃이 피고 지면서 지나는 이들을 행복하게 했던 아담한 마당이었는데, 2년 전 집이 팔리고 그곳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기로 결정되면서 꽃나무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할 정도로 풍만한 모란꽃이 없어진다는 사실은 골목 안 모든 이웃에게는 슬픔이었지요. 바로 그때 옆집에 사시는 이웃사촌께서 자신의 농장에 캐다 옮겨 놓아도 괜찮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당연히 ‘그리하시라’고 또 잘 살려주시길 부탁드리며 ‘그곳 농장에서 꽃을 다시 피우는 날 우리가 만나자’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지난주 어느 날, 연남동 그 이웃사촌께서 전화를 주셨고, ‘그 꽃이 피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면서 우리들의 그 약속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의기투합, 또 다른 쪽 옆집의 이웃 등 세 가정이 오랜만에 다시 만나 막 피기 시작한 모란꽃의 환생(?)을 축하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간 다른 쪽 집에 사셨던 이웃사촌은 남편이 큰 수술을 한 후 끝내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지난달에 돌아가시는 이별의 슬픔도 겪었기에, 농장에서 가까운 수목장에 함께 들러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더 실감 나게 다가왔다고나 할까요. ‘모란’이 피는 찬란한 이 계절인 봄에 먼저 가신 분을 기리는 슬픔을 함께 나누었으니 말입니다.
시인에게 있어 ‘봄’은 그저 찬란한 계절만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화려하고 매혹적인 색깔로 대변되는 ‘모란’과 지금까지 시인이 간절하게 ‘뻗쳐오르던 보람으로’ 기다려 왔던 소망의 계절인 ‘봄’을 같은 이미지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오월 어느 무덥던 날’ 불과 하루 사이에 화사했던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리고, 그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린 모습을 보면서, 시인은 자신이 기다려 온 봄도 다 가고 말았다고 슬프게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다음 해에 또 모란은 피겠지만, 다시 그 모란이 피기까지, 그래서 또 다른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소망을 가져볼 수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 다시 올봄도 ‘찬란한 슬픔의 봄’일 뿐입니다.
영랑의 시 중에서 오늘 감상했던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비슷한 울림이 있어 이 아름다운 계절에 읽기에 딱 맞는 시 하나를 꺼내 읽고 싶습니다.
오월
- 김영랑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바람은 넘실 千이랑 萬이랑
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좇을 뿐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山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
- 시집 <영랑시집>(시문학사, 1935)
- 시집 <모란이 피기까지는> (동아일보사, 2008)
오월, 계절의 여왕답게 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멋진 때입니다. 애기똥풀이 만발했다 지고 나면 그 자리엔 개망초꽃이 또 온 천지를 뒤덮겠지요. 또 아카시아는 매혹적인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만방에 발산하고, 송홧가루가 온 천지에 흩날리고 있는, 영랑이 노래했듯이 그야말로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러울 뿐'입니다.
정작 같은 골목 안 옆집에 살 땐 식사 한 끼도 함께 하지 못했던 우리 사이가, 서로 떨어져 지내면서 오히려 도타운 정을 나누는 ‘이웃사촌’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그리고 그 인연의 끈이 새로운 곳에 잘 적응하여 다시 피어난 ‘모란’이라니 얼마나 행복한지요!
갑자기 조영남이 부른,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로 시작하는 노래 ‘모란 동백’이 입 안에서 흥얼거려집니다. 바람 불고 고달픈 세상에서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절절하게 노래하는 노랫말의 울림이 영랑의 시에서 ‘모란’을 통해 노래한 그것과 상통(相通)한 탓이겠지요? - 석전(碩田)
https://www.youtube.com/watch?v=YcAbotl_4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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