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
- 김현승
마지막 가을 해변에 잠든 산비탈의 생명들보다도
눈 속에 깊이 파묻힌 대지의 씨앗들보다도
난로에서 꺼내오는 매일의 빵들보다도
언제나 변치 않는 온도를 지닌 어머니의 품 안보다도
더욱 다수운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언제나 은혜의 불빛 앞에 있다
지금 농부들이 기쁨으로 거두는 땀의 단들보다도
지금 파도를 헤치고 돌아온 저녁 항구의 배들보다도
지금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주택가의 포근한 불빛보다도
더욱 풍성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것들을 모두 잃는 날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받았기에
누렸기에
배불렀기에
감사하지 않는다
추방에서
맹수와의 싸움에서
낯선 광야에서도
용감한 조상들은 제단을 쌓고
첫 열매를 드리었다
허물어진 마을에서
불 없는 방에서
빵 없는 아침에도
가난한 과부들은
남은 것을 모아 드리었다
드리려고 드렸더니
드리기 위하여 드렸더니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
마음만 받으시고
그 마음과 마음을 담은 그릇들은
더 많은 금은의 그릇들을 보태어
우리에게 돌려 보내신다
그러한 빈 그릇들은 하늘의 곳집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감사하는 마음 ― 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主人이 누구인지를 깊이 아는 마음이다!
- 시집 <김현승시전집>(민음사, 2005)
* 감상 : 김현승 시인.
호는 남풍(南風), 또는 커피를 특히 좋아했고 차를 즐겨 다형(茶兄)으로 불렸습니다. 1913년 4월 4일, 평남 평양에서 목사였던 아버지 김창국과 어머니 양응도 사모 사이에서 4남 2녀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부친의 첫 목회 사역지였던 북제주 하도에서 6세까지 성장하였으며, 7세 이후에는 전남 광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초등과정을 마쳤습니다. 그 후 평양의 숭실중을 졸업하고 1932년 숭실전문학교에 입학, 3학년 재학 중 지병(위장병)으로 중퇴하였습니다. 숭실전문학교 재학 중일 때, 당시 교사로 있던 양주동, 이효석 등의 강의를 들으며 시(詩) 습작에 몰두하였으나 병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부모가 있는 광주로 내려와서 요양하였습니다.
병이 어느 정도 나은 후 복학한 그는 방학 중에도 기숙사에 머물면서 학업에 정진하였는데, 이때 쓴 시들이 <숭실학보>에 실렸고, 이를 눈여겨본 양주동이 1934년 동아일보 문예란에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라는 그의 시를 추천,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조선시단, 동아일보, 교지 등에 ‘유리창’ ‘철교’ ‘이별의 시’ ‘묵상수제’ 등의 시가 발표되었고, 당시 비평가들의 극찬은 물론 정지용, 김기림, 이태준 시인 등의 찬사와 격려를 받으면서 이름이 삽시간에 대중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36년, 숭실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폐교되면서 졸업을 1년 남긴 채 광주로 돌아와 숭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숭일학교도 역시 신사참배 거부 사건에 연루, 주모자이자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후 학교에서 파면당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아버지와 여동생도 투옥되어 고문당하였고 결국 여동생은 사망하였습니다. 여동생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으며, 그 자신도 고문 휴유증으로 고생하였는데 김현승 시인은 이때부터 절필하였습니다.
1948년, 광복 후 그는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였고, 숭일학교의 교감으로 취임하였습니다. 그는 이 무렵 경향신문을 비롯한 여러 신문과 잡지에 다양한 시들을 발표하면서 서정주, 김동리 등과 활발한 문단 교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고, 전쟁 중 아버지의 죽음, 또 아들이 죽는 큰 슬픔을 겪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비극이 계속 닥쳐왔지만, 김현승 시인은 계속 시를 썼습니다. 1951년 조선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겼으며, 1960년에는 모교인 숭전대학교(현재 숭실대학교)로 옮겨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1975년 4월 11일, 숭전대학교 채플 시간 도중 고혈압으로 쓰러져 6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시집으로 <김현승시초(金顯承詩抄)>(문학사상사, 1957), <옹호자의 노래>(선명문화사, 1963), <견고한 고독>(관동출판사, 1968), <절대고독>(성문각, 1970), <김현승시전집(金顯承詩全集)>(관동출판사, 1974) 등이 있으며, 유고 시집으로 <마지막 지상에서>(창작과비평사, 1977), 산문집 <고독과 시>(1977)가 있습니다. 2005년 시인 사후 30주기에는 그가 생전에 쓴 시 300여 편을 총망라한 <김현승시전집>(민음사, 2005, 김인섭 편자)이 출판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숭전대학교 문리과대 학장, 부총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광주 무등산 도립공원에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김현승 시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기독교 정신과 인간의 근본적인 허무로 인한 고독의 발견, 그리고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홀로 맞서는 내면의 의지를 신앙의 언어로 형상화하여 노래한 시인, ‘가을에는 /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로 시작하는 그의 시 ‘가을의 기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해마다 추수감사절이 있는 이맘때 시인의 ‘가을의 기도’와 더불어 교회 설교나 성당의 강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시 중의 하나입니다. 아마도, 마지막 연에서 그가 결론적으로 노래한 시어가 설교를 마무리하며 적용하는 내용으로는 제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 ― 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 / 내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 主人이 누구인지를 깊이 아는 마음이다!’
지난 토요일, ‘내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 주인이 누구인지를 깊이 아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묵상을 끝내고 운동을 하기 위해 체육관에 갔다가, 운동 중 허리를 한순간 삐끗했는데, ‘그 한순간’ 때문에 지금까지 꼬박 나흘을 꼼짝 못 하고 누워있었습니다. 겨우 직립 보행(?)이 가능했던 어제 오후에야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이제는 겨우 의자에 엉거주춤 앉을 수는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정말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 제 아무리 훌륭한 체력과 기술, 구력을 가진 선수라 하더라도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시인의 표현을 빌면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감사하는 마음’을 쓰러진 후에야 비로소 가질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받았기에 / 누렸기에 / 배불렀기에 / 감사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읽을 땐 누워있으면서 마치 죽비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풍족하고 모든 걸 가졌지만 그동안 감사하지 않았던 제 모습을 꾸짖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추방에서 / 맹수와의 싸움에서 / 낯선 광야에서도 / 용감한 조상들은 제단을 쌓고 / 첫 열매를 드리었다’고 기억을 상기시킵니다. 또 ‘가난한 과부들은 / 남은 것을 모아 드리었다’고 노래하면서 없는 중에도 자신의 전 재산인 두 렙돈을 드린 '가난한 과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드리기 위해 드렸더니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신’ ‘주인’에 대한 노래로 이어집니다.
주인은 드리려고 하는 그 마음만 받으시고 ‘그 마음과 마음을 담은 그릇들은 / 더 많은 금은의 그릇들을 보태어 / 우리에게 돌려 보내신다’고 고백하며, 시인은 주인이 은혜가 풍성한 분임을 목청껏 노래합니다. 첫 연에서 시인이, ‘감사하는 마음은 언제나 은혜의 불빛 앞에 있다’고 진술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 상응하는 답변을 스스로 밝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곧 아는 마음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아는 마음이며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아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부르짖으며 겸양을 잃어버린 채 독불장군으로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라야 세상이 의미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는 ‘주인(主人)’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엊그제 내린 가을비가 그친 후 가을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김현승 시인의 대표 시, ‘가을의 기도’로 겸허한 기도를 드리면서 오늘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 석전(碩田)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구비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시집 <김현승시초(金顯承詩抄)>(문학사상사,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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