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진관사에서 - 이병일 / 페미니즘을 너무나 잘 이해해주는 남자라는 괴물 - 이소연

석전碩田,제임스 2023. 11. 22. 06:29

진관사에서

- 이병일

진관사 외진 방, 빗소리 곁에 두고서 내 것 아닌 것을 생각한다
더러운 것들 몸뚱이에 두르고 와서 그 어디에도 버릴 수가 없다
우연찮게 앵두의 그것처럼 탱글탱글 익어 가는 빗줄기를 보면서
밥 생각 없이 구운두부 찜을 먹었다 좋아라, 피가 돌고 숨이 돌았다
두부 자체가 간수인데 몸에 붙은 흰 그림자 잔뜩 으깨진 것이 보였다

- 시집 <나무는 나무를>(문학수첩, 2020)

* 감상 : 이병일 시인.

1981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5년 <평화신문> 신춘문예에서 시 ‘곰팡이’가 당선되었고, 2007년 <문학수첩>에 시 ‘가뭄’, ‘빈집에 핀 목련’, ‘여름 이사’, ‘세숫대야에 뜬 별빛’, ‘마이산 천지탑’ 등의 시를 통해 신인상 수상,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집으로 <옆구리의 발견>(창비, 2012), <아흔아홉 개의 빛을 가진>(창비, 2016), <나무는 나무를>(문학수첩, 2020), 청소년시집 <처음 가는 마음>(창비교육, 2021), 산문집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문학수첩, 2023) 등이 있습니다.

5.18문학상(2012),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고 오늘의젊은예술가상(문학부문)(2013), 수주문학상(2014), 제1회 평택 생태시문학상(2015), 송수권시문학상 젊은시인상(2016), 한국시인협회가 주는 젊은시인상(2021) 등을 수상했습니다. 현재는 명지전문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문예창작과에서 현대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이 중학생이었을 때, 시가 뭔지도 모르면서 시를 썼습니다. 백일장에 나가면 국어 선생님은 꼭 자장면을 사 주셨고 또 같이 시를 쓰는 친구들이 있는 문예반이 있어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 관심과 노력의 결과,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시인은 대산청소년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상 받으러 서울에 왔다가 광화문에 있는 시인이 보기에 ‘세상에서 가장 큰 서점’인 교보문고에 들른 경험은 어린 시인에게는 가히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집 코너에 자신의 시집이 꽂혀 있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꿈대로 대학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고 졸업하기 전 시인이 되었습니다.

난해 여름 시인의 아내 이소연 시인의 시집 <거의 모든 기쁨>(아시아, 2022)을 구입해 놓았지만, 어떤 시를 택해서 감상문을 쓸까 선택하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길 1년. 오늘 감상하는 시인의 시를 감상하게 되면서야 '남편 이병일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몇 가지 팁을 주는' 이소연 시인의 시를 이렇게 읽게 될 줄이야 미처 몰랐습니다. 우선 이소연 시인의 시를 먼저 읽어 보겠습니다.

페미니즘을 너무나 잘 이해해주는 남자라는 괴물

- 이소연

빨래 잘하고 청소 잘하고 요리 잘하는 남자가 있다
그런 남자와 연애를 하고 급기야 결혼까지도 했다면
그 남자는 아이마저 자기가 낳았다고 우기면서
거실 창으로 쏟아지는 햇볕 속으로 블라우스를 다려줄 것이다

나는 열 시까지 침대 위에 뒤집어져 있겠지
잠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잘 알면서
남편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것이고
그다지 특별난 것도 없는 여자를 위해
무섭게 아침을 차리고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남편에게서 발각되는 페미니즘이란 의례

나는 가끔 시어머니의 방식으로 신을 부른다
주여……

떨어뜨리기 좋은 약속들을 하나둘 청소기로 빨아드리면서
반성할 일은 하지 마라, 아들아
요즘은 네가 흘린 부스러기가 너무 많구나
제왕절개로 낳았지 미숙한 일이었지 주여……

반성은 고질적이다
변기 위에 앉아 힘겹게 빠져나가는 구불구불한 오전을 떠올리면
코끼리가 된 것 같고

동물원에만 이해받는 코끼리에 대해서
손의 일을 앗아간 코에 대해서
손으로 짚은 바닥에 대해서
장식용 주머니처럼 달린 남자의 젖꼭지에 대하여 구실과 처세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와 함께 입덧을 하고
나와 함께 배가 불러오던 남자가
급기야 내 옆에서 라마즈 호흡을 할 때
나는 내 모든 태반을 옮겨 심었지
할례를 하고 침대에 누운 순결한 나의 남자
오, 나는 남자를 너무 사랑해서 내 모든 기관을 주었네
도축을 일삼은 숱한 낮과 밤의 이야기로
오래된 예언서를 써 두었네

주여……

모든 권리를 양도합니다 이 거룩한 아이를 가지소서 내게서와 같이 당신에게서도 나의 일이 이루어지기를 나의 산통과 나의 내막을 나의 수축과 이완을 모두 드리오며 마땅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지금껏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남자의 등에 빨대 꽂은 여자로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임산부석 앞에 서 있다

저녁엔 흘리지 않고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타코라이스를 먹었다
턱밑으로 잘게 썬 양상추가 떨어져 내렸다

- 이소연 시집 <거의 모든 기쁨>(아시아, 2022)

쯤 되면,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남편인 이병일 시인이 어느 날부터 점점 부담스러운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고 욕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은근슬쩍 ‘페미니즘이란 어쭙잖은 명분으로 무장한 형편없는 나 같은 여자인데도 내게는 무한정 이해해 주는 좋은 남편이 있어요’라고 자랑하는 건지 헷갈리지만, 적어도 이병일 시인이 맞벌이 생활인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조금 엿볼 수는 있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수요일마다 저의 시 감상문을 받아보는 지인 중 한 분이 보내 준 시입니다. 먼저 제목을 읽자마자 ‘진관사’라는 절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은평구 진관동’이라는 같은 동네에 있는 절이기도 하고, 또 시인이 노래한 진관사에서의 템플스테이 체험담이 격하게 공감이 되었습니다.

20여 년 전, 전국적으로 템플스테이가 처음 생겨날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먼 곳에 가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해서 가까운 서울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에서 하는 템플스테이를 직접 몸으로 체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나름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처음 ‘불교’를 체험하면서 느꼈던 당시의 생경한 추억들이 갑자기 소환되었다고나 할까요.

플스테이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 중의 하나는, 머무는 기간 내내 ‘절대 묵언’을 해야 하는 원칙이었습니다. 아마도 진관사에서의 템플스테이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입 하나만 봉했는데도 모든 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진관사나 길상사는 모두 번잡한 도심 속에 있는 절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공간이 갑자기 깊은 산 속에 있는 절처럼 느껴지는 것도 ‘묵언의 비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진관사 외진 방, 빗소리 곁에 두고서 내 것 아닌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또 빗줄기가 ‘우연찮게 앵두의 그것처럼 탱글탱글 익어 가는’ 것처럼 바라보이는 이유도 어쩌면 ‘묵언 수행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템플스테이의 특징 중의 하나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큰 결심을 하고 참가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금방 기발한 깨달음이나 수행의 높은 경지에는 절대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외진 방에 앉아 수행이랍시고 앉아 있기는 하지만, 생각은 온통 속세의 그것들 - 즉 ‘내 것 아닌 것을 생각’하게 되고, ‘더러운 것들 몸뚱이를 두르고 와서 그 어디에도 버릴 수가 없다’는 나약하고 자신감 없는 생각들만 가득 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이 ‘구운 두부 찜’을 갑자기 언급한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 중에는 ‘먹고 싶은 욕망’이 어쩔 수 없이 도사리고 있음을 표현한 건 아닐까. 비워지기는커녕 맛있는 ‘구운 두부 찜’을 먹고 난 후에야 비로소 ‘피가 돌고 숨이 돌았다’고 표현한 부분에서는 오히려 시적 화자가 인간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서 응고제로 쓰이는 간수는 이미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더러운 몸뚱이에서 으깨져서 흘러나온 순결한 결과물이므로, 그 간수 자체인 두부를 먹고 기분이 좋아지고 피가 돌고 숨이 돌았으니, ‘어설프지만 나도 이제 깨달음의 원리는 알게 되었다’는 적극적인 변명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 제목을 그저 ‘진관사에서’라고 붙인 까닭은 그 공간이야 ‘진관사’든, ‘길상사’든 별 상관없이, 도시의 바쁜 일상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있었음을 노래한 것은 아닐까.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이곳저곳에서 각종 모임 일정을 알리는 SNS가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비록 반쪽짜리 수행일지라도 나만의 작은 공간을 확보하여, ‘있는 그 자리에서’ 절대 묵언을 실천하며 한 해를 조용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합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