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産 - 김민정

석전碩田,제임스 2023. 8. 9. 10:13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産

- 김민정

구운 갈치를 보면 일단 우리 갈치 같지
그런데 제주 아니고는 대부분이 세네갈産
갈치는 낚는 거라지 은빛 비늘에 상처나면
사가지를 않는다지 그보다는 잡히지를 않는다지
갈치가 즐기는 물 온도가 18도라니 우아하기도 하지
즐기는 물 온도를 알기도 하고 팔자 한번 갑인고로
갈치의 원산지를 검은 매직으로 새내갈,
새대가리로 읽게 만든 생선구이집도 두엇 가봤단 말이지
세네갈,
축구 말고 아는 거라곤
시인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가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는
세네갈,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도 시 좀 읽으세요 했다가
텔레비전 책 프로그램에서 통편집도 당하게 만들었던
세네갈,
수도는 다카르
국가는 ‘모든 국민이 그대의 코라와 발라폰을 친다네’
코라와 발라폰을 치며 놀라고 대통령이 권하는
놀라운 나라라니
세네갈,
녹색 심장의 섬유여
형제들이여, 어깨에서 어깨로 모여라
세네갈인들이여 일어나라
바다와 봄에, 스텝과 숲에 들어가라*
역시나 시인 대통령이 써서 그런가
보우하사도 없고 일편단심도 없고
충성도 없고 만세도 없구나
세네갈,
우리는 갈치를 수입하고 우리는 새마을운동을 수출하고
마키 살 세네갈 현 대통령을 초청한 자리까지는 좋았는데
방한 기념으로 수건은 왜 찍나 왜 그걸 목에 둘둘 감나
복싱 하나 주무 하나 결국엔 한번 해보겠다는 심사인가
‘새마을 리더 봉사단 파견을 통한 해외 시범 마을 조성사업’
돔보알라르바와 딸바흘레, 이 두 마을이 성공했다는데
본 사람이 있어야 믿지 간 사람이 아니라야 믿지
재세네갈 한인회 회장보다 부회장이 낫지 않을까
헛된 믿음으로 찍히고 말 발등이라면 재기니 한인회,
재말리한인회 두 회장에게 속아보는 게 차라리 나을까나
세네갈,
갈치 먹다 알게 된 거지만 사실
갈치보다 먹어주는 게 앵무새라니까
세네갈産 앵무를 한국서들 사고판다지
아프리카라는 연두
아프리카라는 노랑
아프리카라는 잿빛
삼색의
세네갈,
앵무새 앵에 앵무새 무
한자로 다들 쓰는데 나만 못 쓰나
鸚鵡
이 세네갈産
앵무야

* 註 : “녹색 심장의 섬유여 형제들이여, 어깨에서 어깨로 모여라 세네갈인들이여 일어나라 바다와 봄에, 스텝과 숲에 들어가라”-세네갈 국가(國歌) 후렴 부분에서.

- <현대시> (2015, 7월호)
-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문학동네, 2016)

* 감상 : 김민정 시인, 출판 편집인.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검은 나나의 꿈’ 외 9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열림원, 2005),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문학과지성사, 2009), <아름답고 쓸모없기를>(문학동네, 2016),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문학과지성사, 2019) 등이 있으며 산문집 <각설하고,>(한겨레출판사, 2013)가 있습니다. 박인환문학상(2007), 현대시작품상(2016), 이상화시인상(2018)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랜덤하우스 코리아>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21세기 한국 현대시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랜덤하우스시선을 책임 편집하면서 많은 젊은 시인들을 발굴하였습니다. 현재 <문학동네>에서 문학전문 출판사 <난다>의 대표로 재직 중이며 문학동네 시인선을 책임 편집하고 있는 대한민국 문단을 대표하는 스타 편집자입니다.

녀의 첫 번째 시집인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를 통해서 우회하지 않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위선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시원하게 까발리는 시어들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을 통해서 시인은 이런 자신만의 색깔을 계속해서 드러냈는데 이를 두고 시인 안도현은 ‘김민정 시인의 시는 때로 좀 야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남의 말을 자세히 듣다가 마구 뛰어다니고, 얌전한 척하다가 끝내 일을 저지르고, 점잖은 말을 하다가 돌아서서는 시원한 욕을 쏟아내고, 부지런히 일을 하다가도 질펀하게 즐기는 화자들이 여럿이다. 젊은 시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드디어 한 경지를 열었다’고 말했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그녀로 하여금 지난 2016년 제17회 ‘현대시작품상’ 수상자가 되게 하였는데, 이 때 심사위원들은 ‘거침없는 시어와 톡톡 튀는 상상력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펼쳐오며, 많은 후배 시인들에게 강한 영감과,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보니 김민정 시인의 시는 지난 2020년 11월에, ‘음모陰毛라는 이름의 음모陰謀’(https://jamesbae50.tistory.com/13410997)를 함께 감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 감상문에서 제가 그녀에 대해서 썼던 부분만 다시 한번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먼저 그녀의 독특한 시 세계입니다. ‘김민정 시인 = 언어유희’라고 할 정도로 그녀의 시에선 놀랄 만큼 현란한 말놀이(language fun)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시에 담긴 언어 이미지들은 비호감이나 비루하기까지 하지만 어딘가 유쾌하고 통쾌한 이 시대의 풍경을 포착하고 있으며,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이야기(스토리텔링)를 통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녀의 언어 유희가 놀랄만큼 개방적이라는 점입니다. 화두와 화투, 젖과 좆, 페니스와 페이스, 해피와 피해, 미혼과 마흔, 오빠와 오바, 화장(化粧)과 화장(火葬), 여성부와 이성부, 끝과 끗, 시작(始作)과 시작(詩作), 음모(陰毛)와 음모(陰謀) 등 끝이 없이 빛을 발합니다. 어느 평론가는 김민정 시인을 희망을 상실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농담, 넉살, 패러디, 난센스, 해학, 언어의 유희, 동화적인 환상 같은 것들을 끌어다가 시 속에 집어넣어 비빔밥처럼 맛깔스러운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시인’이라고 평을 했습니다.

그리고 ‘입심이 좋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제멋대로인 시인’답게 자유롭고 개성이 넘쳐, 흔히 우리가 시에서 기대하는 질서와 형식을 거부하는 새로운 시 운동의 시작이라고까지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시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정형화된 생각을 깨는 그녀의 새로운 시도는 ‘미래파’로 불리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어제가 입추(立秋)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폭염과 태풍, 그리고 어른들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망쳐버린 세계스카우트 잼보리(World Scout Jamboree) 대회에 참가했던 젊은 학생들을 보며 답답하기도 하고 또 안타깝기도 한 어수선한 상황에 뭔가 시원한 욕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를 검색하다가 만난 시입니다.

치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제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먹는 갈치는 거의 대부분이 아프리카에 있는 세네갈 산(産) 갈치라는 사실을 알게 된 화자(話者)가, 세네갈이라는 나라에 대해 전혀 몰랐다가 알아가는 정보들을 가지고 질펀하게 욕인 듯 아닌 듯 비틀고 꼬집는 풍자시입니다. 시와 시집의 제목을 잘 짓기로 유명한 시인답게, ‘빽빽하게 많다’는 뜻을 표현하는 ‘입추의 여지없다’는 멋진 우리말 관용구와 ‘입추(立秋)’라는 절기를 나타내는 말을 빗대어 눈에 확 띄게 했습니다. 이 시를 계속 읽어 내려가다 보면 중간중간 나오는 ‘세네갈’이라는 단어가 마치 ‘새대가리’로 읽히는 것도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또 ‘재세네갈한인회’ ‘재기니한인회’ ‘재말리한인회’라는 시어가 ‘제기랄!’로 들리는 건 저만 그런 것인가요. 그리고 이것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시인은 마지막 세 줄을 덧붙여서 시원하게 일갈(一喝)합니다. ‘鸚鵡 / 이 세네갈, / 앵무야’라고.

인이자 출판계에서 손꼽히는 ‘스타 편집자’로 이름난 시인의 시를 보너스로 하나 더 감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제 이름은 야한입니다

- 김민정

한 시인의 시집이 인쇄되고 있었다.
불교방송에서 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그에게
고가의 만년필을 선물하는 여승도 있다 했다
한 시인의 시집이 채 다 인쇄되기도 전에
시인보다 앞서 새 시집을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는 내가사라는 절입니다
시집 100권 주문합니다
주소 불러드릴께요
경남 밀양시 무인면 내집리 553
제 이름은 야한입니다
받는 사람에
야한 스님,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

그로부터 스님과
몇 통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밀양 하면 다들 전도연으로 압니다만,
내가사는 여자가 머물기에 참 좋은 절이지요
한번 놀러 오라 그리도 말씀하셨으나
여직 스님 떠올리면 야한이니
아직 갈 때가 아닌 듯해 나는 차일피일이다

-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문학과 지성사 , 2009)

네갈, 시인의 말대로 세네갈로부터 ‘갈치를 수입하고’ 또 ‘새마을 운동을 수출’하는 아프리카 서쪽 끝의 나라. 초대 대통령이 시인이고 그 대통령이 썼다는 그 나라의 국가에는 ‘바다와 봄에, 스텝과 숲에 들어가라’는 아름다운 노랫말이 있고, 그곳을 한번 가 봤다는 사람은 별로 없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시인이 이 시를 쓰면서 그런 ‘세네갈’이 아름답다고 노래하려고 한 건 아닌 듯합니다. 앵무새처럼, 남이 써 준 것만 읽을 줄 아는 대통령, 시민들의 감성과 눈으로 바라볼 줄 모르는 대통령에 빗대기 위해 모르긴 해도 앵무새를 사 온 그 나라 ‘세네갈’을 말하면서 ‘새대가리’라고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낮의 폭염은 여전하지만, 입추가 지나자마자 아침저녁 부는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잼보리에 참가했던 전 세계에서 온 젊은이들이 별 탈 없이 이 땅을 떠나고 나면, ‘갈치가 즐기는 물 온도가 18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18도쯤 되는 선선한 가을바람 맞으며 밀양에 있는 ‘내가사’에 가서 ‘야한 스님’이나 한번 만나보고 와야겠습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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