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 마종기

석전碩田,제임스 2023. 7. 12. 06:40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

- 마종기

봄밤에 혼자 낮은 산에 올라
넓은 하늘을 올려보는 시간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별들의 뜨거운 눈물을 볼 일이다.
상식과 가식과 수식으로 가득 한
내 일상의 남루한 옷을 벗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 밤,
별들의 애잔한 미소를 볼 일이다.

땅이 벌써 어두운 빗장을 닫아걸어
몇 개의 세상이 더 가깝게 보이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 느린 춤을 추는
별 밭의 노래를 듣는 침묵의 몸,
멀리 있는 줄만 알았던 당신,
맨발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 신약 빌립비서 2장 12절

- 마종기 시집 <새들은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문학과지성, 2002)

* 감상 : 마종기(馬鍾基) 시인, 의사.

1939년 1월 17일 대한민국 최초의 동화 작가인 마해송과 현대무용가 박외선의 사이에서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및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59년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일 때 시인 박두진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시 ‘해부학 교실’, ‘나도 꽃으로 사서’ 등의 시로 등단하였습니다. 이즈음 그는 가톨릭 신앙을 가졌으며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임관하여 1966년까지 공군에서 복무하였습니다.

1963년, 마 시인이 정신과 병동에서 실습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 ‘정신과 병동’은 시인 김수영으로부터 최고의 시라고 칭찬받았던 작품으로 이를 계기로 그는 김수영 시인으로부터 ‘문단에 섞이지 말고, 문학에 의학을 접목시켜 보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공군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군사 정권의 심한 고문과 함께 수감되는 일이 벌어졌고 이 일로 인해 아들 걱정을 하던 아버지 마해송은 이듬해인 1966년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고문의 후유증을 겪었던 그는 대한민국을 떠나 의학 연구차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이 시기 신문 기자였던 동생도 해직되어 형과 같이 미국으로 건너와 같이 살았지만 동생 종훈(鍾壎)은 총기 사고로 인해 1991년 세상을 먼저 떠났습니다.

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진단 방사선과 수련을 마치고 그 대학병원 교수로 생활하면서 시를 썼고, <평균율> 동인이었던 시인이자 무용 평론가였던 김영태(1936~2007), 황동규와 함께 3인 시집 <평균율 1>(창우사, 1968), <평균율 2>(1972) 등을 내기도 했습니다. 김영태 시인은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는데, 재학 중 홍대 신문사 기자로 활동했던 선배님이라, 2000년대 초반 홍대 교정에서 만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집으로 <조용한 개선(凱旋)>(부민문화사, 1960), <두 번째 겨울>(부민문화사, 1965), <변경의 꽃>(지식산업사, 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문학과지성, 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문학과지성, 1986), <그 나라 하늘빛>(문학과지성, 1991), <이슬의 눈>(문학과지성, 1997),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시선집, 2004),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문학과지성, 2002),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2006), <하늘의 맨살>(문학과지성, 2010), <마흔두 개의 초록>(문학과지성, 2015), <천사의 탄식>(문학과지성, 2020) 등이 있습니다.

하이오 주립대학교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 및 초대 부원장을 지냈으며 2002년 퇴임 후에는 매년 봄, 가을 한국을 방문하여 연세대와 가톨릭대 등에서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기도 하였으며, 시집과 수필집을 내는 등 아직도 문단의 현역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해 전, 국내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마종기 시인은 그가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아름다움을 쓰고 따스한 시어(詩語)를 이용하여 고단한 이들에게 단단한 기둥이 될 시를 쓰는 것이 시인으로서의 작은 사명’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 시인의 시를 읽으면 마치 경건한 성경 묵상글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갈하고 경건한 느낌을 받는 시편들이 많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제목 옆에 주석(注釋) 표시(*)를 달아놓은 후 그 아래에 성경 빌립보서 2장 12절에 나오는 ‘표현’임을 친절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 사도가 영어(囹圄)의 몸으로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가 신약성서의 <빌립보서>입니다. 그 편지에서 바울이 간절한 마음으로 성도들에게 권면했던 내용은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이었는데, 시인은 바로 이 구절을 시의 제목으로 차용(借用)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먼 이국땅에서 두고 온 고국을 생각하면 사무치는 그리움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간이 나면 가까운 산에 올라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하늘을 바라보곤 한 듯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넓은 하늘을 올려보는 시간에는 /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 별들의 뜨거운 눈물을 볼 일이다. / 상식과 가식과 수식으로 가득 한 / 내 일상의 남루한 옷을 벗고 /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 밤, / 별들의 애잔한 미소를 볼 일이다.’

인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의 뜨거운 눈물’을 보기도 했지만, 동시에 ‘별들의 애잔한 미소’도 보았습니다. 시인이 ‘멀리 있는 줄만 알았던’ 수많은 그리운 당신들을 소환하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맨발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별 밭에서 들려오는 별들의 눈물과 미소의 노래를 듣고 있는 광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특히, 그가 ‘맨발’이라고 표현한 시어에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장면이 갑자기 생각이 나는 건 너무 비약적인 해석일까요. ‘하나님이 가사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개역한글 성경)는 구약 성경의 표현과 신약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표현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가 마치 의미적 대칭을 이루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의 시 중에서 오늘 감상하는 시와 마찬가지로 주석 표시를 달고 성경의 표현을 그대로 시 제목으로 차용한 시 한 편을 더 읽으면서 오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

- 마종기

경상도 하회 마을을 방문하러 강둑을 건너고
강진의 초당에서는 고운 물살 안주 삼아 한 잔 한다는
친구의 편지에 몇 해 동안 입맛만 다시다가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향기 진한 이탈리아 들꽃을 눈에서 지우고
해 뜨고 해 지는 광활한 고원의 비밀도 지우고
돌침대에서 일어나 길 떠나는 작은 성인의 발.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피붙이 같은 새들과 이승의 인연을 오래 나누고
성도 이름도 포기해버린 야산을 다독거린 후
신들린 듯 엇싸엇싸 몸의 모든 문을 열어버린다.
머리 위로는 여러 개의 하늘이 모여 손을 잡는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보이지 않는 나라의 숨,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말,
먼 곳 어렵게 헤치고 온 아늑한 시간 속을 가면서.

* 신약, 로마서 8:24

- 시집 <이슬의 눈>(문학과지성, 1997)

시에서도 시인은 이국 생활에서 오는 고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 속에 있는 진정한 희망을 부여잡고 ‘신들린 듯 엇싸엇싸 몸의 모든 문을 열어’버리는 의식을 치르고 있는 한 사람의 삶의 순례자 ‘성인(聖人)’을 만날 수 있는 애절한 시입니다. 어수선한 시절을 살아내야 하는 당신, 가끔은 '낮은 산에 올라 넓은 하늘을 올려보는 시간'을 가져 볼 일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