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저와 함께 있어 주세요 - 헨리 F. 리트

석전碩田,제임스 2022. 3. 2. 06:29

저와 함께 있어 주세요!
Abide With Me

- 헨리 프란시스 리트(Henry Francis Lyte)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밤이 빠르게 찾아옵니다.
어둠이 깊어져갑니다. 주님,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날 돕는 자 더 이상 없고 위로도 떠나 갈 때
어쩔 줄 몰라 하는 불쌍한 저를 도와주세요.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Abide with me; fast falls the eventide;
The darkness deepens; Lord with me abide.
When other helpers fail and comforts flee,
Help of the helpless, O abide with me.

인생의 작은 날이 썰물처럼 순식간 빠져나갑니다.
이 땅의 기쁨들이 희미해져가고 그 영화들이 지나갑니다.
모든 것들이 변하고 썩어가는 것을 봅니다.
오, 변치 않는 당신이시여,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Swift to its close ebbs out life's little day;
Earth's joys grow dim; its glories pass away;
Change and decay in all around I see;
O Thou who changest not, abide with me.

간청하오니 짧은 한 순간도, 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아니기를,
주님, 당신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셨던 것처럼
저에게도 친밀하고, 낮아지시고, 참으시고, 자유롭게 대해 주세요.
잠시 머물다가 가시지 마시고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Not a brief glance I beg, a passing word,
But as Thou dwell'st with Thy disciples, Lord,
Familiar, condescending, patient, free.
Come not to sojourn, but abide with me.

제 젊은 시절 당신은 제게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당신께 반항하고 고집스럽게 비뚤어지고
종종 당신을 떠났지만 당신은 저를 떠나지 않으셨지요.
마지막 까지, 오, 주님,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Thou on my head in early youth didst smile,
And though rebellious and perverse meanwhile,
Thou hast not left me, oft as I left Thee.
On to the close, O Lord, abide with me.

흘러가는 매 순간마다 저는 당신의 임재가 절실합니다.
당신의 은혜 말고 무엇이 유혹자의 힘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당신 말고 누가 저의 인도자가 되어 제 곁에 있어줄 수 있겠습니까?
구름 낀 날이든 화창한 날이든, 주님, 늘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I need Thy presence every passing hour.
What but Thy grace can foil the tempter's power?
Who, like Thyself, my guide and stay can be?
Through cloud and sunshine, Lord, abide with me.

당신께서 가까이 계서 저를 축복하신다면 어떤 원수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불행도 감당할 수 있으며 어떤 슬픔도 쓰리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이 찌르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당신이 저와 함께 있어주신다면 저는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I fear no foe, with Thee at hand to bless;
Ills have no weight, and tears no bitterness.
Where is death's sting? Where, grave, thy victory?
I triumph still, if Thou abide with me.

제가 눈을 감을 때까지, 당신의 십자가를 굳게 잡아주소서.
어둑한 어둠 속에 빛을 비춰주시고 하늘을 가리켜 저로 보게 해 주세요.
천국의 아침이 동터오면 땅의 헛된 그림자들은 사라질 겁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오, 주님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Hold Thou Thy cross before my closing eyes;
Shine through the gloom and point me to the skies.
Heaven's morning breaks, and earth's vain shadows flee;
In life, in death, O Lord, abide with me.

* 감상 : 헨리 F. 리트(Henry Francis Lyte).

1793년에 출생하여 1847, 향년 54세로 사망한 영국의 시인, 찬송가 작사가, 성공회 사제(목사)입니다. 리티는 24살에 7살의 연상인 앤 맥스웰(Anne Maxwell)과 결혼하여 슬하에 두 딸과 세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리티의 건강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종종 천식과 기관지염으로 고생을 했고 때론 휴양지를 찾아 유럽전역을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결핵은 그를 더 이상 교회 사역을 지속할 수 없도록 하여 사표를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고별 설교를 하는 날 아침, 그에게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시인으로서, 그리고 목사로서 자신의 삶의 끝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직감하였을 것입니다. 이 때 작시한 것이 오늘 감상하는 찬송 시 [Abide with me](저와 함께 있어주세요!)였습니다. 그는 이 시를 사촌 누이에게 건네주고는 휴양을 위해서 이탈리아로 떠났는데 3주 후에 프랑스 니스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마지막 시가 된 셈입니다. 이 시는 인생의 황혼이 깃들고 ‘이젠 떠날 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직감한 연약해진 영혼이 하나님께 드리는 마지막 간청을 담고 있는 시이기도 하지만, 이 찬송 시에 얽힌 사연들을 알고 나면 한층 더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영혼의 울림이 있는 기도문이기도 합니다.

난 월요일 아침, 이사야서를 묵상한 후 도처에서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 중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묵상한 후 보냈던 묵상 글을 읽고, 지인 한 분이 짧은 동영상 하나를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이 찬송시에 감동을 받아 작곡된 찬송가에 대한 이야기를 명쾌하게 풀어낸 어느 목사님의 설교 동영상이었습니다.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탱크와 미사일로 무차별 공격하는, 21세기 개명천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목도하면서 참담한 심경으로 묵상했던 글을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소망을 둘 곳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저의 기도에 힘을 보태는 동영상이었습니다.

동영상 내용에 의하면, 리트 목사의 이 마지막 시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윌리엄 몽크(William H. Monk, 1823~1889)에 의해 1861년 ‘저녁 무렵’(Eventide)’이라는 제목의 노래로 재탄생되었습니다. 그 후 이 곡은 100여년이 지나는 지금까지 Devonshire의 Lower Brixham에 있는 리트 목사가 마지막으로 섬겼던 교회에서 매일 차임 종으로 연주되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곡은 영국 왕 조지VI세의 결혼식에서도 연주되었으며, 후에 엘리자베스 II세가 된 그의 딸 결혼식에서도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모든 교회에서 부르고 있는 찬송가, ‘때 저물어 날 이미 어두니’라는 제목의 찬송 곡입니다.

7개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는 아마도 리트 목사가 누가복음의 한 에피소드를 읽다가 영감을 얻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성경 누가복음 24장에는 마치 다른 곳에서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이야기 하나가 삽입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눅 24:13~35)입니다. 이 두 제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비교적 상세하게 그들이 나눈 대화에서부터 이 이야기가 왜 그 부분에 위치해야 하는 지에 대한 힌트는 설명되어 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이 찬송시의 제목과 동일한 표현이 바로 이곳에 기록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29절을 당시 영국인들이 사용했던 흠정역 성경(King James Version)의 번역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Abide with us: for it is toward evening, and the day is far spent.’(Luke 24:29)

쓸하게 엠마오, 그들의 고향으로 낙향하는 두 제자. 그 때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와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 부분에서, 성경을 기록한 누가는 그 ‘누군가’가 예수였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들은 끝까지 알아채지 못합니다) 이 낯선 사람은 이십오 리나 되는 꽤 긴 길을 그들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는 두 사람이 겪었던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 처형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분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바로 그 이야기였습니다. 그를 따랐던 이 두 사람은 비극적 결말에 충격을 받고는 슬픔 가운데 낙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낯선 동행자는 그 이야기에 대한 해석을 자세하게 해주었습니다. 메시아의 오심과 고난, 그리고 그 의미와 이유에 대해 풀어줄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말하자면 길 위에서 열렸던 일종의 말씀 사경회(査經會)였다고나 할까요.

낯선 동행자의 가르침에 깊이 매료된 두 사람은 그와 헤어져야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서운했습니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어졌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을 시간은 점점 없어져가고 그 분의 말씀 해석의 심오함과 시원함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적 갈증이 속으로 더욱 타들어 갔습니다. 그들은 그 낯선 동행자를 놓치고 싶지 않고 붙잡고 싶어 이렇게 애원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어주세요.’ 한글 성경 개역 개정번역에는 이 구절을 ‘우리와 함께 유(留)하사이다.’라고 밋밋하게 표현하기도 했더군요.

서 언급했던 동영상은 그동안 이 곡이 연주되었던 특별한 순간들과 그 뒷 사연들을 수없이 나열하고 있었습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2009년 항공기 사고가 났던 네덜란드 공항, 영국 FA컵 축구 경기 결승전, 영국 럭비대회 결승전,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 매년 인도 ‘공화국의 날’ 국경일 행사,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테레사 수녀의 장례식 날 등.....

종과 종교, 국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공간과 시간에 이 찬송 곡이 울려 퍼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주어진 찰나의 시간, 우리 인생은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고 사라져버리지만,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인생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쁠 때도, 슬플 때에도, 가장 격렬히 살아 있을 운동과 경쟁의 순간에도, 축제의 순간에도,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삶의 구간을 달려가는 침울한 순간에도 우리는 간절하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저와 함께 해주세요. 이미 때 저물어 날이 어두웠습니다’ - 석전(碩田)

https://youtu.be/pA_ojoHOW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