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커밍아웃 / 신이 앓고 계시다 - 이재무

석전碩田,제임스 2022. 2. 23. 05:39

커밍아웃

- 이재무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궁둥이에 꼬리가 생겨난 것이다. 내가 원숭이로 퇴화라도 했단 말인가? 기가 막혔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는 궁리에 몰두 했다. 꼬리가 난 사실이 알려지면 가택연금을 당할지도 모른다. 나는 꼬리를 말아 감추고 하루를 시작했다. 꼬리가 생긴 뒤로 언행에 주의가 따랐다. 차라리 꼬리를 내놓고 살까? 불쑥 충동이 일기도 했지만 닥쳐올 후폭풍이 두려워 가까스로 억누르며 살았다. 그렇게 꼬리를 감추는 일이 습관이 되어 갈 즈음 나는 사람들이 의심스러웠다. 저들도 꼬리를 몰래 감추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한번 의심이 들자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꼬리를 가지고 있다. 꼬리가 없는 것처럼 굴지만 그것은 기만이다. 꼬리가 발각될까 노심초사하며 행동거지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유난히 점잔을 피우는 자일수록 꼬리가 긴 사람이다.

- 시집, <즐거운 소란>(천년의 시작, 2022)

* 감상 : 이재무 시인.

1958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했습니다.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1983년 <삶의문학>, <실천문학>, <문학과사회> 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집으로 <섣달그믐>(청사, 1987),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문학과지성사, 1990), <벌초>(실천문학사, 1992), <몸에 피는 꽃>(창작과비평, 1996), <시간의 그물>(문학동네, 1997), <위대한 식사>(세계사, 2002), <푸른 고집>(천년의 시작, 2004), <저녁 6시>(창작과 비평사, 2007),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화남, 2007), <경쾌한 유랑>(문학과지성사, 2011), <주름 속의 나를 다린다>(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실천문학사, 2014), <슬픔은 어깨로 운다>(천년의 시작, 2017), <데스벨리에서 죽다>(천년의 시작, 2020). <즐거운 소란>(천년의 시작, 2022)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생의 변방에서>(화남, 2003),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화남, 2010). <집착으로부터의 도피>(천년의 시작, 2016), <쉼표처럼 살고 싶다>(천년의 시작, 2019), 공저 <우리시대의 시인 신경림을 찾아서>(웅진닷컴, 2002), <긍정적인 밥>(화남, 2004), 시평 집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화남, 2005)이 있습니다.

2회 난고문학상(2002), 편운문학상(우수상, 2005), 제1회 윤동주시상(2006), 소월시문학상(대상, 2012), <풀꽃문학상>(2015), <송수권시문학상>(2017), <유심작품상>(2019), <이육사문학상>(2020) 등을 수상하였고,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하고 있으며 <천년의 시작> 대표 이사입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지난 달에 발간된 이재무 시인의 신작 시집 <즐거운 소란>에 수록되어 있는 재미있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이라는 문장이 생각이 났습니다. 샤워를 하다가 발견한 궁둥이에 난 ‘꼬리’라는 말이 연상 작용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엉뚱하게 생겨난 시인의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질까 궁금해 하면서 시를 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는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다가’ 자신의 궁둥이에 꼬리가 난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는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엉뚱한 상황을 출발로 하여 시적 화자는 스스로 질문을 합니다. ‘내가 원숭이로 퇴화라도 했단 말인가?’ 이 질문을 시작으로 나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매진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지만, 우리가 흔히 하는 생각이나 궁리의 과정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잘 표현하고 있어 어색함이 없이 논리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급기야 자신의 꼬리를 감추는 것으로 해결책을 삼았지만 ‘그 꼬리를 감추는 일’이 습관이 되어 갈 즈음, ‘다른 사람들도 꼬리를 몰래 감추고 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새로운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의심은 확신이 되었고, 다른 모든 사람을 ‘기만하는 것’으로 믿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생각이 발전하고 의심이 습관으로, 그리고 그 습관이 확신으로 고착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하기만 했는데 뭔가 불편해지는 느낌은 무엇일까. 우리네 삶의 모습을 은근히 고발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결론적으로 마무리 짓는 시의 마지막 문장이 참으로 기발합니다. ‘유난히 점잔을 피우는 자일수록 꼬리가 긴 사람이다.’

‘커밍아웃(Coming out)‘이라는 말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낼 때 사용하는 말이지만, 자신의 사상이나 지향성을 밝히는 행위라는 뜻으로 확장되어 쓰이는 ’고유명사‘와도 같은 말입니다. 성소수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신의 처지가 어쩌면 궁둥이에 꼬리가 난 것보다 더 황망하고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느 날 떳떳이 밝히려고 마음을 먹어 봤지만 도저히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숨기면서 살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숨기면서 사는 생각이 하나의 습관이 될 즈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자신 속에 하나의 ’확신‘이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다 나처럼 숨기면서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갖게 되는 확신....결국 너와 내가 거대한 습관의 벽과 관습의 담 속에서 갇혀, 커밍아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숨 막히는 삶에 내던지는 상황을 이 시는 점잖게 꼬집고 있습니다.

은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 하나를 더 감상해보겠습니다. 언뜻 보기엔 조금 전에 읽었던 시와 전혀 별개의 시 같지만, 결국 고착화된 습관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우리 인생의 모습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는 면에서는 서로 맥이 통하는 듯합니다. 오히려 이 시는 더 목소리를 높여 우리가 ‘습관’이라는 두꺼운 껍데기에 둘러싸여 살다가 결국에는 날마다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는 서글픈 신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관습과 습관의 틀을 깨고 커밍아웃 하지 않으면 ‘악의 종으로’, 또는 그저 ‘강철 습관’에 끌려 다니는 공자망(空自忙) 부생(浮生)으로 살다가 죽게 된다는, 섬뜩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신이 앓고 계시다

- 이재무

신은 죽지 않고 앓고 계신다

신이 앓는 동안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주인인 악이 선을 종으로 부릴 것이다

신은 인간을 돌볼 여력이 없다

우리의 기도는 매번 도로에 그친다

습관의 나라에 습관의 해가 뜨고 습관의 해가 진다

강철 습관이 부박한 생을 끌고 다닌다

습관으로 희망을 품고 습관으로 절망하는 날들

화살표를 따라가면 장례식장이 나온다

- 시집, <즐거운 소란>(천년의 시작, 2022)

난 해 8월, ‘울음통’이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서 알게 된 허향숙 시인이 보내 준 이재무 시인의 따끈따끈한 신간 시집을 읽으면서, 그 중에서 두 편의 시를 골라본 것입니다. 주변의 자연과 일상의 삶 속에서 시의 소재를 갖고 오되, 그것을 서정적으로 평범하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에 치열하게 적용하는 능력이 탁월한 시인답게 시집에 실린 모든 시들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고 계신 신을 살려낼 수 있을까. 그래서 신이 건강하게 우리의 기도가 도로(徒勞)에 그치지 않도록 우리를 돌볼 여력이 있는 그런 세상은 올까. 갸우뚱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떤 사연을 커밍아웃하더라도 ‘가택연금’ 따위를 당하지 않는 사회, 아니 꼬리를 감추면서 유난히 점잔을 빼면서 살기로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그립습니다. 자기의 내밀한 이야기를 솔직히 드러내더라도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는 그런 성숙한 세상 말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