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어쩌자고 - 최영미

석전碩田,제임스 2022. 3. 16. 06:15

어쩌자고

- 최영미

날씨 한번 더럽게 좋구나
속 뒤집어놓는, 저기 저 감칠 햇빛
어쩌자고 봄이 오는가
사시사철 봄처럼 뜬 속인데
시궁창이라도 개울물 더 또렷이

졸 졸
겨우내 비껴가던 바람도
품속으로 꼬옥 파고드는데
어느 환장할 꽃이 피고 또 지려 하는가

죽 쒀서 개 줬다고
갈아엎자 들어서고
겹겹이 배반당한 이 땅
줄줄이 피멍든 가슴들에
무어 더러운 봄이 오려 하느냐
어쩌자고 봄이 또 온단 말이냐

-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작과비평사, 1996)

* 감상 : 최영미 시인.

1961년 9월 25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 선일여자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그리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속초에서' 등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래 대담한 발상과 세련된 유머, 자본과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작과 비평사, 1994) 첫 시집을 발간, 무려 50만부가 팔리며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에 올랐습니다. 이밖에도 시집으로 <꿈의 페달을 밟고>(창작과 비평사, 1998), <돼지들에게>(실천문학사, 2005), <도착하지 않은 삶>(문학동네, 2009), <이미 뜨거운 것들>(실천문학사, 2013),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출판사, 2019)을 냈으며, 소설집으로는 1970년대 서울 변두리의 가족사를 다룬 첫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랜덤하우스 중앙, 2005)을 비롯, <청동정원>(은행나무, 2014)이 있습니다. 또한 산문집으로 <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일기>(창작과 비평사, 1997),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문학동네, 2009),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등을 출간했으며, 2018년 고은 시인에 대한 미투 이후 <아무도 하지 못한 말>(해냄출판사, 2020>을 펴냈습니다.

난 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통령 선거가 끝이 났습니다. 선거 결과는 초박빙, 역대 최소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이 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48.56%와 47.83%로 0.73% 차이, 그리고 두 사람의 표차는 고작 24만7,077표로 무효표 30만 7,542표(0.9%) 보다 더 적은 표 차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거 후 느끼는 감정들이 다른 선거 때보다 훨씬 더 깊고 강렬한 것 같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된 사람들에게는 박빙의 승부에서 이겼으니 그 기쁨이 배가되었을 것이고, 또 그 반대 입장인 분들은 조금만 더 했더라면 하는 마음 때문에 그 아쉬움과 허탈감은 더 심한 듯합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남녘에서 봄꽃 소식이 들려오고, 차가운 겨울 바람이 이제는 견딜만한 훈훈한 봄 바람으로 바뀐 바로 이맘 때 딱 맞는 시입니다. 그런데, 화창한 봄을 맞는 마음은 그리 흔쾌하지 않다는데 이 시를 읽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왜일까. 시인이 기대하기도 했고 또 그 봄을 맞기는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봄을 기다리기는커녕 쳐다보기도 싫은 봄과 실제로 지금 오고 있는 자연의 봄 사이에서 시인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은 채 계속해서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 시를 감상하는 묘미일 것입니다.

시와 무관하지 않을 시인과 관련된 삶의 이야기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1981년, 시인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내 시위에 가담하였다가 관악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구류 10일을 살고 1년 간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반독재 투쟁 운동에 가담하면서, 소위 ‘운동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 이론서 원전을 번역하고 출판하는 일과 관련하여 구속이 되기도 했습니다. 나름 치열하게 달려왔지만,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정권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그녀가 움켜잡고 있던 거대 담론과 이데올로기에 회의를 품게 되고,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되는 심각한 변화들을 글로 표현하는 시인과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실로 그녀가 내 놓은 첫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1996년 출판되면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시인의 가슴은 이미 ‘줄줄이 피멍’이 든 후였다고나 할까요.

1980년 ‘서울의 봄’은 왔지만, 곧바로 군부 정권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줄줄이 나타나서 ‘죽 쒀서 개 줬다고 / 갈아엎자 들어서고 / 겹겹이 배신당한 이 땅’을 보면서 시인은 울화통이 터지는 마음으로 ‘날씨 한번 더럽게 좋구나’하면서 아니꼬운 듯 탄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도,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답답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또 속이 부글부글 끓고 뒤집히기도 하는데 ‘속 뒤집어 놓는’ ‘더러운 봄’이 ‘어쩌자고 또 온단 말이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전 국민의 딱 절반에 해당하는 그런 분들에게는 바로 시인이 이 시를 노래할 때의 그 마음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선거 다음 날 이른 아침, 아무 말 없이 저에게 아래 글을 보내 준 지인의 마음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8월, 건포도를 만들기 위해 수확한 포도를 널어놓은 후 사람들은 느긋한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먹장구름이 몰려오면서 한바탕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구름이 나지막이 늘어졌고, 노란 번갯불의 섬광이 소리 없이 하늘을 갈겼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자 사람들은 건포도를 널어놓은 포도원을 향해 사방으로 뿔뿔이 달려갔다. 포도밭마다 구슬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 통곡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반쯤 말린 포도가 한 아름씩 물에 휩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몇 명의 여자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물로 뛰어 들어가 건포도를 조금이라도 더 건지려고 기를 썼다. 아버지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나’는 건조장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수염을 깨물고 있었고, 어머니는 그 뒤에 서서 훌쩍훌쩍 울었다.


“아버지.” 내가 소리쳤다. “포도가 다 없어졌어요!” “시끄럽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나는 그 순간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나는 그 순간이 내가 인간으로서 위기를 맞을 때마다 위대한 교훈 노릇을 했다고 믿는다. 나는 욕이나 애원도 하지 않고 울지도 않으면서, 문간에 꼼짝 않고 침착하게 서 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항상 기억했다. 꼼짝 않고 서서 재난을 지켜보며, 모든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 혼자만이 인간의 위엄을 그대로 지켰다.]
- <영혼의 자서전 1>(열린책들, 니코스 카잔차키스, p.107-108)

미 봄이 턱 밑까지 다다랐습니다. 저는 지난 주말, 서오릉에 있는 단골 꽃모종 가게에 가서 봄꽃을 구입해 와 화분갈이를 하며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시나브로 원치 않아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을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말하며 위엄 있게, 그리고 화사하게 맞을 일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