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두 마리
- 이동순
지난 여름 장에 가서
암수 강아지 한쌍을 사왔다
이놈들이 커서 이젠 제법 개 구실을 한다
어느날 과자 하나씩을 주었더니
제각기 자기 과자 앞에서 과자를 지키며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한다
두 시간이 지나고 오전이 다 가도록 서로
눈치만 보며 먹지를 못한다
등털 곤두세우고 침만 질질 흘리는
이 어이없는 긴장!
나는 늦게사 그걸 알고
가서 과자를 멀리 던져버림으로써 팽팽한 긴장을 깨뜨렸다
이놈들은 그제사 고개 들고 하늘도 보고
또 서로 핥아주기도 한다
- 시집 <봄의 설법> (창비,1995)
* 감상 : 이동순 시인.
1950년 6월 경북 김천(금릉)에서 태어났습니다. 경북대학교 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마왕의 잠’이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1989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에도 당선되었습니다. 충북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영남대학교 교수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을 하였습니다. 대구 MBC 라디오에서 <이동순의 재미있는 가요이야기> 프로그램의 MC로 활동했으며(2003~2008), 미국 워싱턴 소재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남북이 같이 듣는 노래>프로에 매주 고정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대중 가요에 관심이 많아 퇴임 후 계명문화대 특임교수와 이 대학 평생교육원의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시집으로는 <개밥풀>(창비, 1980), <물의 노래>(실천문학사, 1983), <지금 그리운 사람은>(창작사, 1986) <봄의 설법>(창비, 1995), <맨드라미의 하늘, 시선집>(문학사상사, 1988), <꿈에 오신 그대>, <철조망 조국>(창비, 1991),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 <가시연꽃>(창비, 1999), <기차는 달린다>, <미스 사이공>, <마음의 사막>, <발견의 기쁨>, <묵호>(시학, 2011), <강제이주열차>(2019), <좀비에 관한 연구>(천년의 시작, 2019), <독도의 푸른 밤>(실천문학사, 2020) 등 무려 20권에 이릅니다. 이밖에도 평론집, 에세이집 등 다수를 발간하였습니다. 제1회 김삿갓문학상(2001), 시와시학상(2003), 경북문화상(2004), 정지용문학상(2010)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의 시선집(창비, 1987)을 발간하고 문학사에서 그를 복원시키는 중요한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를 소개할 때 ‘시인’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시인이라는 직함 이외에 평론가, 가요 해설사, 교수, 방송 진행자 등 여러 다른 직함들이 있습니다. 모두 그의 재능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생긴 직함이지만 그가 평생 매달린 것은 시(詩)였습니다. 신춘문예 등단도 시였고, 1988년 취득한 박사학위도 <일제 시대 저항 시가의 정신사적 연구>라는 제목의 시 분야 논문이었습니다. 2년 전, 이동순 시인과 안도현 시인이 사돈의 연을 맺었다고 하니 가히 집안도 시인의 가문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오늘 감상하는 시는 개 두 마리를 유심히 관찰한 후 그들의 행동을 마치 에세이 쓰듯이 묘사한 시입니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 나면 어딘가 모르게 깨달음이나 성찰을 위한 근엄한 가르침을 받은 듯한 묘한 기분이 듭니다. 지난 여름 장에서 암수 한쌍 강아지를 사와서 기르고 있는데, 어느 날 맛있는 먹이(과자)를 던져 주었더니 그걸 중앙에 놓고 두 마리가 거의 반나절을 으르렁거리면서 등털 곤두세우고 침만 질질 흘리며 대치를 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못나보이기도 하다는 것인데, 그 모습이 바로 우리네 인생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의 화자가 나서서, 극한 대치의 근원인 ‘먹이’를 치워버리니 그제야 고개도 들고 하늘도 보고, 또 서로 홡아주기도 했다는 결론 부분이 마치 도덕 수업의 마지막 결론과도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개의 행동을 통해서 교훈을 얻었으니 개가 스승이 된 셈입니다.
“개처럼 사는 것”을 자신의 인생철학이라고 말해서 유명해 진 어느 디자이너의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개가 꼭 나쁜 면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 철학이 개처럼 사는 것이라고 해서 ‘개 같은 인생’이 아니고, 인생의 목표가 ‘개처럼 살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들은 현재에 집중하거든요. 개는 주인이 오면 반갑게 꼬리를 흔들고 밥을 주면 그 밥 먹는 데에 온 신경을 쏟지, 꼬리를 흔들며 내가 어제 주인에게 꼬리를 좀 덜 흔든 것 같은데 주인이 기분 나빠 할까, 조금 더 세차게 흔들어 볼까 하는 등의 고민을 하지 않지요. 개는 밥을 먹으면서 어제의 꼬리치기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 내일의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고 해요. 개들은 밥을 먹을 때 밥만 먹고 잠을 잘 때는 잠만 자거든요. 집중을 하거든요.”
지금 여기서(Here & Now)를 사는 개의 모습을 통해서 그는 배울 게 많다고 말했습니다. 9년 전 반려견 소심이가 우리 집으로 온 후 매일 그와 산책을 하면서 저도 배우는 게 참 많습니다. 시에서도 표현했듯이, 먹는 것 앞에서는 천하에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는 개의 특성을 새삼 알게 된 것입니다. 즉 삶의 최고의 목표(먹는 것)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대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집중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디자이너의 깨달음과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늘 킁킁 거리면서 땅 냄새를 맡느라 아래만 쳐다보면서 정신이 없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성찰하게 됩니다. 내가 개처럼 위를 쳐다보지 못하고 맨날 아래만 쳐다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항상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만날 때마다 꼬리가 떨어져라 반가워하는 것이라든지 뭔가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보이면서 주인을 무한 신뢰하며 따라 나서는 태도 등은 개에게서 우리 인간이 배워야 할 가장 큰 덕목임에 틀림없습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 놓은 얼마 되지 않은 재산을 둘러싸고 형제자매지간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있었다는 뉴스는 설이나 추석 등 큰 명절을 지나고 나면 꼭 신문의 단골 기사가 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시 속의 화자가 개에게 던져줬던 ‘과자’가 상징하는 것은 꼭 재물뿐만이 아닙니다. 명예와 권력, 학벌과 지연, 그리고 자신이 목숨처럼 생각하는 소속 종교 단체, 심지어 사회적인 인정 욕구까지도 모두 포함됩니다. 말하자면 ‘내 것’이라는 착각에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움켜쥐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해당된다는 말입니다.
시인이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 반복해서 사용했던 ’늦게사‘ ’그제사’라는 두 시어가 은유하는 바도 큽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혹시 내게는 그 ’과자‘가 없는지 한번 살펴 볼 일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그 과자를 멀리 던져버리기 전에,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 볼 일입니다. 필요하다면 다정스레 서로 홡아주기도 하면서.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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