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미터
- 전윤호
마침내 말 한 번 걸어보려
검은 교복 입고 뒤쫓던
역전 다리 위 백 미터
어두운 공설운동장에서
한 시간 미리 도착하고도
딱 그만큼 달아나버린 정신줄
목사님이 신자가 아니면 사귀지 말래
저주처럼 붉은 십자가에
돌팔매질하던 거리
나이 먹고 친구로 만나도
같이 마시고 함께 취해도
저만치 앞서 걷는 그녀와의 사이
작심하고 달려도 평생 건너지 못한
아우라지 건너편 솔밭 같은
백 미터 그 지긋지긋한
부탁받은 척 흰 봉투 들고
망설이며 서 있는 장례식장 안내판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별과의 거리
- 시집, <정선> (달아실, 2019)
* 감상 : 전윤호 시인.
1964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났으며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문학세계사, 1995), <순수의 시대>(하문사, 2001), <연애소설>(동아기회, 2017), <늦은 인사>(실천문학사, 2013), <천사들의 나라>(파란, 2016), <봄날의 서재>, <세상의 모든 연애>(파란, 2019), <정선>(달아실, 2019)이 있습니다. 시집과 시선집 이외에도 어린이 고전문학과 역사 읽기 등의 책들을 많이 펴냈습니다. 시와 시학 작품상 젊은 시인상,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편운문학상(2020) 등을 수상했습니다. 아우라지, 곤드레, 아라리, 여량, 동강할미꽃, 정암사, 구절리, 운탄고도, 민둥산, 화암약수, 만항재, 정선시장, 용마소, 수리취떡, 용소 등 작가의 기억 속에 간직된 고향 정선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그의 아홉 번째 시집은 시집 이름을 고향 지명을 따서 지었습니다. 아마도 대한민국 최초로 지명(地名)을 딴 시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를 쓴 전윤호 시인은 지난 달, 김기택 시인의 ‘사무원’이라는 시를 감상할 때 함께 읽었던 시 ‘사직서 쓰는 아침’을 소개하면서 잠시 언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시만 슬쩍 빌려왔기 때문에 전 시인에게 약간은 빚진 마음이 있어 이번에 작정을 하고 그의 시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전윤호 시인은 ‘정선 시인’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그가 태어난 고향인 정선과 관련이 많은 시인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정선으로 시작해서 정선으로 끝나는 그의 시집 <정선>은 정선을 소재로 한 시 60여 편을 모은, 대한민국에서는 유일하게 지명을 딴 시집입니다.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정선이라고 쓰고 고향이라고 읽었다’는 말이 딱 맞는 표현일 정도로 강원도 정선과 고향의 추억을 소환해내는 시로 가득합니다.
그 시집에 실린 오늘 감상하는 시를 읽으면 역시 옛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교복을 입던 학창 시절, 짝 사랑하는 여자를 멀찌감치 따라가면서 사랑한다는 고백은 할 줄 몰랐던 한 남학생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그런 시입니다. 아니, 용기를 내서 고백을 했지만 돌아 온 대답은 정신줄을 놓게 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어서, 그 이후 나이를 먹고 친구 사이로 만나도 그 충격 때문에 여전히 ‘저만치 앞서 걷는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역전 다리 위, 공설운동장 후미진 곳, 그리고 정선의 이별과 만남의 명소인 아우라지 나룻터 등 시의 화자가 경험했던 아쉬웠던 짝 사랑의 장소들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건너지 못할, 강 이 편에서 아우라지 저 편 솔밭 같은 곳으로 건너가 버려 놓친 사랑은, 늘 백 미터 앞이었습니다. 시에서는 그 거리가 딱 ‘백 미터‘라고 말하지만 시의 화자에게는 그 백 미터는 평생을 두고 좁힐 수 없었던 멀고도 먼 거리였습니다.
특히 결정적으로 그의 정신줄을 놓게 했던 한 마디는, ’우리 목사님이 믿지 않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래‘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을 하고 멀어져간 그녀. 그 후 그녀의 그 한 마디는 그에게 십자가만 보면 돌팔매질을 하고 싶을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며 그녀와의 거리를 더 이상 좁히지 못하게 하는 ’저주‘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 어느 지인 한 분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아내와 대화중에 자기 친구의 딸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며느리 삼게 보쌈 해 오자’고 했더니‘교회 안다녀서’라고 한다. 나는 교리에 노예가 되어 있는 광신적이며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보이는 사람보다는 무신론자이면서도 용의주도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며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분의 글에 아주 격하게 동감한다는 뜻으로 댓글을 달면서, 최근에 신간으로 나온 <예수의 할아버지>라는 제목의 소설을 소개하는 신문 기사를 공유할 수 있도록 링크를 달았습니다. 삶은 뒤따르지 않고 오직 ‘교리로만 무장된’ 현실 교회와 그리고 그 속에 소속된 교인들의 모습을 꼬집으면서 그 대안을 잘 그려낸 소설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무신론자와는 결혼을 하지 말라는 조언은 제가 성장하던 시절, 즉 한국에서 기독교의 교세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에 교회에서 신앙의 어른들이 결혼 적령기에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 했던 가장 흔한 말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말의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은 아마도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했던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고린도후서 6장 14절이라고 추측을 해 봅니다만, 이 구절은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에도 무리하게 적용하다 보니,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가슴이 뛰는 결혼 상대가 있어도 신앙 때문에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마치 큰 죄를 짓는 듯한 율법적인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가슴으로 끌리는 매력이 넘치는 사람과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해야 하는데, 규범적이고 율법적인 믿음이 개입하다 보니 삶의 현장에서 능력있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종교생활 그 자체에만 올인 하는, ‘교리에 충실한 종교인’을 양산하는 교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시 속의 화자는 이런 가르침으로 철저히 교육된 기독 청년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다가 그녀가 날린 꽉 막힌 한 방에 보기 좋게 넉 아웃(Knockout)이 된 경우인 듯합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지막 연에서 잘 드러나 있듯이 대체적으로 우울한 삶의 무상을 느끼게 합니다. 느닷없이 날아 든 그녀의 부고 소식. 숙명과도 같은 ‘딱 백 미터 만큼’이라면 그 소식을 듣고 그냥 모른 척 백 미터 이쪽에 있어야 했지만, 용기를 내서 조의금 봉투라도 전달하려고 마치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온 것처럼 빈소를 찾은 시 속의 화자. 이제 그녀와의 거리가 백 미터가 아니라 생과 사를 가로지르는 엄청난 거리만큼 떨어진 것을 인정하며 시는 속절없이 마무리됩니다. 참 슬픈 분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 무상한 인생이여, 허무한 백 미터 거리를 둔 관계여.
이쯤에서 이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좀더 심층적으로 느끼게 하는 시인의 또 다른 시를 한 편 더 읽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두 시에서 사용된 시어들과 시적 은유들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를 관통하면서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두 편의 시이지만 다 읽고 나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은 것 같을 정도로 닮은꼴입니다.
무심코 정선
- 전윤호
뭐 후회한다고 그때가 돌아오나
젖은 눈을 가진 계집애들은
먼 데로 혼처를 찾아 떠나고
탄처럼 시커멓던 사내놈들은
타관을 떠돌다 늙어
배불뚝이가 되었다
다시 찾아온다고 옛사랑이 기다려 주나
불빛이 제 몸만 간신히 밝히는 공설운동장에서
토끼처럼 떨며 입 맞추던 애송이들
어디로 갔나 배신에 울면서
친구에게 주먹질하던
도무지 어른이 될 것 같지 않던 천둥벌거숭이들
친절하지 못한 미래를 욕하며
함부로 침을 뱉던 골목은 사라지고
우산을 펼친 시장엔
검은 비닐 봉다리 하나씩 들고
낯선 사람들이 웃고 있는데
역전으로 가는 강가에 묶인 배처럼 흔들리며
너를 생각한다고 그때가 돌아오겠나
- 시집 <천사들의 나라>(파란, 2016)
‘백 미터’와 ‘무심코 정선’을 읽다가 젖은 눈을 가진 계집애들과 탄처럼 시커멓던 사내놈들, 그리고 말 한번 걸어보려 멀찍이 따라가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시절 자신이나, 혹은 고향을 떠올렸다면 아마도 당신은 배불뚝이가 된 중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 중년의 나이에 이른 우리들에게 삶이란 그저 무심한 세월이 가고, 늙고, 마침내 다 가고 마는, 허무함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또 후회한다고 그 때가 다시 우리 앞에 돌아올 일도 만무한 것 같지만, 이 시는 오늘 이 순간도 ‘인정머리 없는 원칙’과 ‘사랑 없는 교리’, 그리고 ‘꽉 막힌 아집’에 우리의 관계를 백 미터 쯤 멀리 내 맡겨 버려서야 쓰겠느냐고 호되게 질책하고 있는 듯합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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