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추석 - 권선희

석전碩田,제임스 2020. 9. 29. 09:39

추석

 

                       - 권선희

 

아고야, 무신 달이 저래 떴노

금마 맨키로 훤하이 쪼매 글네

야야, 지금은 어데 가가 산다 카드노

마눌 자슥 다 내뿔고 갔으이

고향 들바다 볼 낯빤디기나 있겠노 말이다

가가 말이다

본디 인간으로는 참말로 좋았다

막말로 소가지 빈 천사였다 아이가

그라믄 뭐 하겄노

그 노무 다방 가스나 하나 잘못 만나가 신세 조지 삐고

인자 돌아 올 길 마캐 일카삣다 아이가

우찌 사는지럴

대구빠리 눕힐 바닥은 있는지럴

내사 마 달이 저래 둥그스름 떠오르믄

희안하재, 금마가 아슴아슴 하데이

 

우짜든동 처묵고는 사이 읍는 기겠재?

글캤재?

 

- 계간 <열린시학>(2012년 봄호), 시집 <꽃마차는 울며 간다>(애지, 2017)

 

* 감상 : 권선희 시인.

1965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예술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고 1998년 <포항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 3월 동해안 작은 어촌 ‘구룡포’에 둥지를 틀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시를 쓰고 있습니다. <푸른시> 동인, 한국 작가회의 회원, 포항 예술문화연구소, 포항문학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제1회 대한민국 해양영토대장정 기록 작가로 참가하여 항해기 <우리는 한 배를 탔다>를 펴냈습니다. 그 외 국토해양부 해안길 도보 여행기 <바다를 걷다, 해안 누리길>(공저), 경북 해양문화를 다룬 해양 문화집 <뒤안>, 구룡포의 일본인 가옥 거리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어업과 생활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구룡포에 살았다>(2인공저) 등 주로 해양 관련 책들을 많이 냈습니다. 시집으로 <구룡포로 간다>(2007), <꽃마차는 울며 간다>(애지, 2017)가 있습니다.

 

‘추석’이라는 제목의 오늘 감상하는 시를 읽으면 시인은 분명히 경상도 토박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강원도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어찌나 맛깔스럽게 잘 표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를 읽고 이게 우리 한국말인지 의아해할 사람도 있을 것 같기도 할 정도로 오리지널 경상도 사투리 표현이 가득합니다.

 

[아, 무슨 달이 저렇게 둥실 떴을까

그 녀석처럼 환하니 마음이 좀 씁쓸하네

보소, 지금은 어디에서 그 녀석이 산다고 했나

마누라 자식 다 뿔뿔이 흩어지고

고향이라고 찾아 올 면목이나 있을까

그 녀석이 말이다

본래 사람은 참 좋았지

솔직히 말하면 속이 빈 천사 같은 녀석이었지

그러면 뭐 하겠나

다방에서 일하는 그 아가씨 잘못 만나 신세 망쳤지

이제는 다시 돌아올 가망은 전혀 없고 그 녀석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몸 하나 눕힐 처소는 있는지

나는 늘 오늘같이 저렇게 보름달이 둥실 뜨면

신기하게도, 그 녀석이 자꾸 생각이 나네

 

어쨌든지 입에 풀칠은 하면서 살고 있으니 연락도

없는거겠지? 그렇겠지?]

 

시를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즉 ‘표준어’로 바꾸면 이 정도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뜻은 대충 통할는지 모르겠지만 경상도 특유의 그 감흥은 제대로 표현해낼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금마 맨키로 훤하이 쪼매 글네’, ‘인자 돌아 올 길 마캐 일카삣다 아이가’, ‘희안하재, 금마가 아슴아슴 하데이’, ‘우짜든둥 쳐묵고는 사이 읍는 기겠지?’ 등과 같은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현대어로 번역해낸다 해도 그 심정이나 경험적인 삶의 애환까지는 담아낼 수가 없는, 아주 독특한 경상도 사투리 표현입니다.

 

해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추석 큰 명절이 다가오면 가장 생각나는 것은 고향, 가족, 옛 친구입니다. 그리고 속이 빈 천사 같은 오래된 친구라면,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 연락도 없는 ‘그 친구’지만 더욱 생각나는 명절이 바로 추석입니다. 환하고 둥근 보름달은 고향과 친척,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총체적으로 대변한다고나 할까요.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하는 사람이나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나 서로가 바라보는 곳은 달라도, 그들의 눈이 둥근달로 한데 모이는 한가위 명절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계속해서 확산되는 상황이라 이번 추석 명절은 가족끼리도 만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하니 참 많이 우울할 뿐입니다.

 

‘우짜든둥 쳐묵고는 사이 읍는 기겠지? 글캤재?’라는 표현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유식한 표현의 오리지널 경상도 버전이라고 하면 될 듯합니다. 비록 어디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소식이 없어 잘 모르지만, 나름 잘 살아가길 바라는 진솔한 마음이 엿보이는 경상도식 마음 표현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시는 다른 마무리 장치 없이 이 문장으로 끝맺음합니다. 서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어디에 있든 서로 그렇게 ‘무소식이 희소식’인 것처럼 잘 되길 응원하는 마음을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풀어낸 추석 풍경이 그리움과 애잔한 추억을 소환해 냅니다.

 

원도가 고향인 시인이 포항에 정착하여 산지도 벌써 20년째. 이제는 ‘구룡포 시인’으로 통하게 된 것은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하는 구룡포에 정착한 뒤 줄곧 구룡포와 호미곶의 풍경, 그리고 이 지역의 사람 사는 모습 등을 배경으로 시와 글을 써 왔을 뿐 아니라, 사회 활동에서도 적극적이어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11년 1월부터 12월까지 총 41회에 걸쳐 지역 신문인 <경북매일신문>에 [경북 해양문화 人, 生, 길]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글들은 울진과 영덕, 포항, 경주, 울릉 등 5개 시군을 직접 발로 뛰면서 취재한 시인의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사에서는 필자와는 아무런 합의도 없이 다음 해인 2012년, 신문 창간 일에 맞춰 신문사 이름으로 단행본을 발간했고, 저자에게는 인세 한 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시인은 신문사와 오랜 기간 법정 싸움을 해야만 했습니다. 또 어떤 사진작가는 시인의 개인 블로그에 있는 사진을 특정 언론사에 무단으로 모두 전재하기도 했고, 세월호 참사 후 팽목항을 찾았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는 사이 그녀는 이가 모두 빠질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시인으로, 글쟁이로, 또 타향살이로 살아가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석과 관련한 나의 가장 오래된 추억은 동네 뒷산 중턱쯤에 마을 청년들이 해마다 추석을 전후하여 매는 그네에 대한 기억입니다. 새끼줄을 튼튼하게 꼬아 밧줄을 만들고, 소나무 튼실한 가지에 높다랗게 맨 ‘수제(手製) 그네’는 당시 우리 동네의 추석 명물이었지만 어린 아이들이 타기에는 조금 높은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위험하다고 아예 가까이에 가지도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기 때문에 부모님의 눈을 피해 그곳까지 접근해서 몰래 탔던 그 그네는, 내게는 아직도 ‘금기의 영역’이자 짜릿한 ‘일탈의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춘향전에서 춘향이 이몽룡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그네’가 등장하는 걸 보면, 아마도 내가 갖고 있는 추억과 동일한 모티브로 이야기에서 활용되지 않았나 멋대로 해석하고 싶네요. 그 후 청년들이 하나둘 도회지로 떠나면서 우리 동네에서 추석 명절마다 그네를 타는 일은 아련한 추억 속에만 남아 있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을 마칠 무렵, 나도 청운의 꿈을 품고 그 고향 동네를 떠나 서울이라는 낯선 곳으로 와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경상도 사투리와 억양이 있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상도 촌놈’으로 타향살이를 한지가 벌써 45년이 넘어가고 있으니, 오늘 이 시가 더 살갑게 다가옵니다. 특히 오늘같이 휘영청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니 더욱더 그렇네요.

 

우짜든동 한가위 추석 명절, 가족들과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며 따뜻한 정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두 손 모아 빕니데이...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