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월
- 박목월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 <상아탑> 6호(1946)
* 감상 : 시인 박목월. 본명은 영종(泳鍾)입니다.
1916년 1월, 경북 월성군 서면 건천리 모량마을, 지금은 경주(慶州)시로 편입된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건천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35년 대구 계성(啓星)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하였습니다. 귀국 후 계성고, 이화여고 등에서 가르치다가 1953년 홍익(弘益)대학의 조교수, 1961년 한양(漢陽)대학의 부교수, 교수가 되어 평생을 대학에서 가르쳤으며, 1978년 고혈압으로 63세의 일기로 타계하였습니다.
1939년 정지용 시인에 의해 문예지 <문장(文章)> 9월호에 ‘가을 어스름’, ‘연륜’ 등의 시가 추천 완료됨으로써 등단하였습니다.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藝術院) 회원으로 선임되었고, 1968년 한국시인협희 회장에 선출되었습니다. 1973년 시 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시집으로는 그를 ‘청록파 시인’이라고 불리게 한 조지훈, 박두진이 함께 낸 <청록집(공저)>(1946)에서부터 <산도화>, 자작시 해설서 <보랏빛 소묘>(1958), <난, 기타>(1959),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1959), <청담>(1964), <경상도의 가랑잎>(1968), 연작시집 <어머니>(1968), 연작시집 <청록집·기타>(1968), <사력질>, <무순>(1976) 등이 있습니다. 시인에 대한 이런 객관적인 정보를 나열하는 건 무의미할 정도로 너무도 유명한 시인이어서 이쯤에서 생략하는 게 도리일 듯합니다.
감자꽃, 찔레꽃이 피고 먼 산에서 뻐꾸기 소리가 아련하게 들리는 이맘때가 되면 송홧가루가 날려 난데없이 콧물이 줄줄 흐르는 알레르기성 비염이 도지는 때입니다. [송홧가루], [윤사월] 등의 시어들이 연결 고리가 된 박목월의 이 시가 새삼 떠오른 건, 올해가 ‘윤사월’이 낀 해이기도 하고 코로나19로 인해서 여행과 외출이 자제되는 사회적 분위기라, 녹음이 짙어져 가는 황금 계절에 대한 아쉬움이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사실, 송홧가루가 박목월의 시 ‘윤사월’에 등장하는 탓에 정겹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얼마 전 뉴스로도 보도되었듯이 이때가 되면 우리나라 영동 지방에서는 해마다 이 송홧가루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고 합니다. 집의 창문을 열어놓지도 못할 지경으로 흩날리다 보니 생활이 안 될 정도는 물론 알레르기 비염 환자들이 급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노란 송홧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외딴 봉우리 한 구석에 산지기 집 딸인 듯한 눈먼 처녀가 봄의 경치를 볼 수 없어 문설주에 기대어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봄의 풍경을 상상하고 있다고 슬픈 아름다운 노래를 하고 있으니 묘한 여운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윤사월’이 이 시가 쓰인 1946년과 같이 올해에도 들었으니 그것을 핑계 삼아 이렇게 슬쩍 꺼내서 감상해도 누가 욕은 하지 않을 듯합니다.
윤달(閏月)은 음력과 양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양력은 1년이 365일인 반면 음력은 1년이 354일 정도로 1년에 약 11일의 차이가 납니다. 만약 음력에서 윤달이 추가되지 않으면 17년이 지나면 계절이 완전히 뒤바뀌어 5, 6월에 눈이 내리고 동지가 한 여름에 오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양력과 음력의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3년에 한 번 꼴로 윤달을 넣어 절기를 맞춰 나가야 하는데, 매번 꼭 4월에만 윤달을 넣는 게 아니라, 나름의 일정한 법칙(置閏法)을 따르게 됩니다. 윤달이 드는 빈도는 5월이 가장 높고, 11월 12월 1월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덤으로 청록파 시인 동인인 동탁 조지훈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풍류를 즐겼던 시도 함께 감상하며 코로나 정국으로 인해 우울한 마음을 달랬으면 좋겠습니다. 이 즈음의 자연을 노래하고 또 시를 나누면서 우정을 돈독히 나누었던 두 시인의 풍류가 부럽습니다.
완화삼(玩花衫)
- 木月에게
-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상아탑> 5호(1946년 4월)
시의 제목 ‘완화삼’은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입니다. 꽃을 즐겨 구경하는 선비를 말하는데, 이 시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절친 박목월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시에 대하여 박목월 시인은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시, ‘나그네’를 써서 화답했습니다. 두 시인이 이런 시를 쓰게 된 사연은 박목월의 시집 <산도화> 발문을 쓴 조지훈의 글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동탁 조지훈은 1942년 노란 산수유 꽃이 한창이던 봄날, 자기보다 네 살 연하인 목월을 경주 근처의 건천역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 이유는 목월이 경주 박물관에 전시 중인 ‘싸느란 옥저(玉笛)를 마음속에 그리던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다’며 동탁을 초청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조지훈 시인은 보름 동안 경주에 머물며 고마운 마음을 담아 ‘완화삼’이라는 시를 써서 목월에게 건넸고, 목월은 그 시에 화답하여 시 ‘나그네’를 써 보낸 것입니다.
나그네
―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 박목월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南道 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상아탑> 5호 (1946년 4월호)
어디선가 향긋한 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오는 윤사월 6월의 첫 주간, 초여름 해가 깁니다. 이런 두 시인의 사연을 알고 부산시 강서구 낙동강 제방에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완화삼'과 '나그네' 시비를 나란히 세워놓았다고 하니 보리밭이 익어가는 이즈음에 나들이 삼아 한번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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