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교수님 스타일 1 - 채형복

석전碩田,제임스 2020. 6. 10. 06:54

교수님 스타일 1

 

                          - 채형복

 

나는 교수님이다

사람들이 불러 교수님이고

사회적 지위가 교수님이다

교수님은

술도 못 마시고 헛소리도 욕도 못 하는 줄 안다

온종일 책 읽고 글 쓰고 연구만 하는 줄 안다

교수님도 밥 먹고 똥도 싸고

사랑도 한다

화도 내고 시기하고 질투도 한다

다만 교수님 스타일로

 

- 시집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한티재, 2016)

 

* 감상 : 채형복 시인.

 

 

1963년 대구 성서에서 태어나 계명대 법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같은 대학 일반대학원에서 석사학위(국제법)를, 프랑스 국립 엑스마르세유대학에서 유럽통합법으로 박사학위(EU법)를 취득했습니다. 귀국 후 경북대 박사 후 연수(Post-Doc.) 연구원, 아주대 국제학부와 영남대 법과대학을 거쳐 현재는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2016년 한국 현대문학 7건의 필화 사건을 다룬 책 <법정에 선 문학>을 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는 문학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국가주의의 극복과 기본적 인권의 확대라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습니다. 법학자이면서 시인인 그가 펴낸 시집으로 <늙은 아내의 마지막 기도>(2012), <우리는 늘 혼자다>(2012), <저승꽃>(2013), <묵언>(2014), <바람구멍>(2015), 그리고 2016년 그의 여섯 번째 시집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 <칼을 갈아도 날이 서질 않고>(문예미학사, 2018) 등이 있습니다. 그는 시인이 되기 위해서 소위 사람들이 생각하는 ‘등단’이라는 관문인 일간신문의 신춘문예나 시 전문 문예지의 추천 등을 통한 적이 없습니다. 평소 즐겨 썼던 시들을 묶어 시집을 내면서 등단의 관문을 스스로 통과한 시인입니다. ‘남자 나이 오십이면 모두 다 시인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나이가 오십 줄에 들어섰을 때 쓸쓸한 가슴 한 켠으로 찾아 온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그가 첫 시집을 내면서 외쳤던 모토가 바로 ‘모든 사람은 시인이다’는 말을 위로 삼아 ‘시인 아닌 시인’으로 ‘시 아닌 시’를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그가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출판기념식도 갖고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첫 선을 보였던 여섯 번째 시집,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에 ‘교수님 스타일’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10개의 연작시 중 가장 첫 번째 시입니다. 교수라는 직업을 통해서 세태를 풍자하는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시들이 공감을 엮어내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한다고 하면 마치 천상에서 이슬만 먹고 사는, 고매한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풍자하여 ‘교수’도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똥도 싸는' 등 모든 걸 다 그대로 하는 평범한 존재일 뿐임을 밝힙니다. 그러나 그런 일상의 모습을 ‘다만 교수님 스타일로’ 한다고 너스레를 떠는 시의 마지막 문장 표현이 ‘시적 은유’로 작용하여 재미있게 읽힙니다. 물론 그의 다른 연작시를 보면 그 ‘교수님 스타일’도 별것이 아니라 모두 연줄과 인맥, 학맥으로 쌓아 올린 것이라고 실랄하게 풍자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교수님 스타일 5

 

                                   - 채형복

 

우리 할아버지는 말이지

우리 아버지는 말이지

우리 삼촌의 사돈의 팔촌의 아들은 말이지

교수님의 집안 자랑은 끝이 없다

나는 고생 모르고 자랐어

운도 좋았지

착하게 사니까 복이 있었어

교수님의 자기 자랑은 끝이 없다

사람은 말이지

공부 이전에 사람이 되어야 해

사람이

교수님의 착한 사람 예찬은 끝이 없다

그런데 교수님

수업은 하지 않으세요

말할 수 없다

사람은 모름지기 착해야 하니까

 

- 시집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한티재, 2016)

 

연작 풍자시를 쓴 채형복 시인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국립대 로스쿨에서 법을 가르치는 법학자입니다. 딱딱한 학문인 법학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보니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그저 개인적인 문학적 취향쯤으로 시를 쓰는구나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의 시들을 읽어내려 가다보면 분명한 지향점이 있고, 또 항상 사회적인 약자 편에 서려하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에 맞서려고 하는 삶의 태도가 진하게 엿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성향은, 현재는 국립대학교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어엿이 자리를 잡았지만 지방대학 출신으로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내려 있는 연고주의 문화 등의 부조리를 몸소 체험하고 느낀 것이 많았던 탓일 것입니다. 그리고 전공인 법학과 문학의 프리즘을 통해서 이런 부조리와 당당하게 맞서는 방편으로서, 시 창작을 하는 것이기에 전공 못지않게 그의 시는 치열하고 뜨겁습니다.

 

의 초창기 시집에 있는 시 한 편을 더 읽어보겠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학자 시인으로서, 또 생활 현장의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결기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앞으로 학자로서, 또 시인으로서 어느 방향으로 달려가야 할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듯한 시입니다.

 

너는 아느냐

 

                              - 채형복

 

유학 시절

수업 중 쉬는 시간

나보다 열 살은 어린 친구에게 푸념했다

프랑스인들은 왜 한국에 대해 무지하냐고

88올림픽을 치른 나라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인데

사뭇 비장한 어조로 물었다

심각한 얼굴로 듣고 있던 어린 친구가 되물었다

너는 아프리카의 약소국들에 대해 아느냐

그들이 흘리는 피와 눈물의 의미를 아느냐

제 형과 같은 내게 되물었다

당시 소말리아에서는 내전이 있었다

수십 수백만의 실향민들이 난민으로 떠돌고 있었고

살인과 강간, 방화로 연약한 노인과 여인, 그리고 아이들이 죽어갔다

자신과 한국이란 조국에만 집착한 나는

부끄럽게도 소말리아에서 일어난 일에는 무지하였다

나는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꿈꾸는 국제법학도였고

분열과 갈등을 넘어선 통합을 이룩한 유럽공동체법을 공부하는 통합론자였다

자성과 체험을 거치지 않고

관념에만 사로잡힌 지식의 무력감

관념에 사로잡힌 지식과 지식인은 위험하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어린 친구가 나를 준엄하게 질책하는 꿈을 꾸곤 한다

너는 아프리카의 약소국들에 대해 아느냐

그들이 흘리는 피와 눈물의 의미를 아느냐

어린 친구의 질책은

여전히 무섭다.

 

- 시집 <우리는 늘 혼자다> (높이깊이, 2012)

 

을 전공하는 학자가, 왜 시를 쓰고 시집을 내는지를 어느 정도 눈치 챌 수 있을 법한 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그의 저서나 글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법 철학자인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을 자주 언급하곤 합니다. 진정한 사회정의는 인간 스스로의 역량을 최고로 발휘하여 자유를 누릴 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역량이론’을 창시한 학자로 유명한 누스바움으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고백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쓴 책 <시적 정의(Poetic Justice)>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기도 합니다. 법률가들이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공상, 공감 그리고 휴머니티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누스바움이 책에서 표현한 문장을 그대로 한번 옮겨 보겠습니다.

 

‘충분히 이성적이기 위해 재판관들은 공상과 공감에 또한 능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술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휴머니티를 위한 능력까지도 배워야 한다. 이 능력 없이는, 그들의 공평성은 우둔해질 것이고 그들의 정의는 맹목적이 될 것이다. 이 능력 없이는, 자신들의 정의를 통해 말할 수 있기를 추구했던 ”오랫동안 말이 없던“ 목소리들은 침묵 속에 갇힐 것이며, 민주적 심판의 ”태양“은 그만큼 장막에 가려질 것이다. 이 능력 없이는, ”끝없는 노예 세대들“이 우리 주변에서 고통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자유를 향한 희망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근, ‘기본 소득제’라는 약간 생소한 개념을 느닷없이 들고 나오면서 보수 야당을 개혁해 보겠다고 시동을 건 노 경제학자를 다 아실 것입니다. 기본 소득제는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면 아무리 ‘인간 평등’을 외쳐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약간은 진보적이고 또 어쩌면 전복적이고 불온한 생각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론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진보 쪽 정치인들이 가끔 외쳤던 주장인데, 어느 날 갑자기 보수 정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언급을 하고 있으니 그 당에 속한 의원들조차도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의문스럽긴 합니다. 앞으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어 갈지 그 귀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인 듯 합니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경제적인 자유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누스바움의 생각과도 통하는 면이 있는 듯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진정한 자유를 꿈꾸며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한 법학자와 또 그의 시를 발견한 기쁨이 큽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삶의 방향이 같은 '도반(道伴)'을 만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기 때문입니다. 옛 성현이 노래한 ‘유붕이 자원방래하면 불역락호아!(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는 감탄문에서 ‘붕(朋)'은 ‘삶의 도반’을 말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