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귀가 예쁜 여자 - 나태주

석전碩田,제임스 2020. 5. 27. 06:33

귀가 예쁜 여자

- 나태주

맞선을 본 처녀는 별로였다
살결이 곱고 얼굴이 둥글고
눈빛이 순했지만
특별히 이쁜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두 번째 만나던 날
시골 다방에서 차 한 잔 마시고
갈 곳도 마땅치 않아
가까운 산 소나무 그늘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산길을 내릴 때
앞서가는 처녀의 뒷모습
조그맣고 새하얀 귀가 예뻤다
아, 귀가 예쁜 여자였구나
저 귀나 바라보며 살아가면 어떨까?

그렇게 살아, 나는 이제
늙은 남자가 되었고
아내 또한 늙은 아낙이 되었다.

- 시집 <어리신 어머니>(서정시학, 2020)

* 감상 : 나태주 시인.

1945년 3월 16일,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공주사범학교를 졸업(그 후 방통대, 충남대 교육대학원에서 수학)하고 1964년부터 2007년까지 43년간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가르쳤습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첫 시집 <대숲 아래서>(한국문학도서관, 1973)를 출간한 후 <어리신 어머니>(서정시학,2020)까지 무려 45 권의 시집을 출간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기 시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산문집 <시골 사람 시골 선생님>, <풀꽃과 놀다>,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날마다 이 세상 첫날처럼>, <꿈꾸는 시인>, <죽기 전에 시 한 편 쓰고 싶다>,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등을 출간했습니다. 제 43대 한국시인협회 회장,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 공주문화원 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2014년 정지용문학상, 2019년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칠 전, 어느 조간신문에 이 시가 소개되었는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읽었지만 자꾸 여운이 남아 ‘함께 나누고 싶은 시 목록’에 포함시켜 두었던 시입니다. 그 날 아침 출근을 했더니 책상 위에 낯선 이쁜 책 한 권이 놓여 있었습니다. 김민준 시인의 수필집 <시간의 모서리>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저의 묵상 글을 받아보는 가까운 지인 한 분이 보내 주신 책 선물이었습니다. 시인인 저자가 책을 선물한 분과 친익척 관계라도 되는건가 의아해하며 별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첫 몇 페이지를 넘기다가 그만 자세를 고쳐 끝까지 정독을 하게 된, 그래서 모처럼 독서의 즐거움을 맛 본 책이었습니다. 그 책에서 만난 멋진 표현 하나, ‘사는 동안, 그렇게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사람을 읽어 내려 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알아가는 일을 책을 읽는 일에 비유하고 있는 이 저자는 ‘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이내 책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변해 있었습니다. 섬세하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의 귀를 가진 저자에게 매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늘 감상하는 시를 그냥 무심코 읽으면,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놓칠 수 있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맞선으로 소개받아 만났고, 그렇고 그런 여자라 처음에는 별로였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 보니까 귀가 예뻤고 그래서 둘이 결혼해서 늙기까지 함께 살았다’는 너무도 평범한 사실을 얘기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읽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한번 더 행간을 들여다 보면 이 시를 통해서 시인이 얘기하고자 하는 게 보입니다.

인이 맞선을 본 여자는 예쁜 구석이라고는 별로 없는 처녀라 만날까 말까 망설일 정도여서 시큰 둥, 당시로 치면 근사한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만나지도 않았고 ‘시골 다방’에서 두 번째 만났습니다. 갈 곳도 마땅치 않아 두 사람은 가까운 산 소나무 그늘에서 한참을 이야기했나 봅니다. 남자가 주로 말하고 그 처녀는 경청을 했을 것입니다. 여자는 예쁜 귀를 열고 시인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들어 주었을 것이고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맞장구도 쳐주고 가끔 대답도 해주었을 것입니다. 한참 얘기를 나눈 후,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소나무 산을 내려오다 보니 앞서가는 처녀의 귀가 예뻤습니다. ‘처녀의 뒷모습/조그맣고 새하얀 귀가 예뻤다’고 표현한 부분이 바로 이 시를 읽는 키 포인트라는 것입니다. 잘 들어주는 귀를 통해서, 그 때까지 한 번도 드러내보지 못했던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고 나니 사람을 보는 눈도 달려졌다고나 할까요. 아니 눈만 새로 뜨인 게 아니라 ‘저 귀나 바라보며 살아가면 어떨까’ 생각도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내 편이 되었고 세월이 흘러 둘은 이제 늙은 남자, 늙은 아낙이 되었으니 해피엔딩임에 분명합니다.

시를 읽으면서 갑자기 고은 시인의 짧은 시 ‘그 꽃’이 생각이 났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쳐서 보지 못했지만 여유를 가진 후에는 갑자기 보게 되었다는 ‘재발견의 반전구조’가 시적 은유로 동일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꽃

                  -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정상에 도달해야 하는 소정의 목표를 정해놓고 산을 오르다 보면 산행로 옆에 있는 작은 꽃들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합니다. 올라야 할 목표가 너무도 분명해서 한시도 지체치 말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올 때에는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 주위를 둘러 볼 여유가 있어 올라갈 때 미쳐 보지 못했던 꽃들이 그 자리에 있는 걸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는, 짧은 시가 긴 여운을 주는 이유입니다. 아등 바등 투쟁적으로 삶을 살다보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해 놓치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경청하다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새롭게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청과 공감이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비결일 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힘이 분명 있는 듯 합니다.

'그렇게 살아, 나는 이제/ 늙은 남자가 되었고 / 아내 또한 늙은 아낙이 되었다'는 시인의 표현이 내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똑같이 할 수 있다면 적어도 실패한 삶은 아닐 듯 합니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잘 들어주지 못하는 꽉 막힌 귀를 가졌으나 이제는 적어도 서로가 들을 줄 아는 예쁜 귀를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