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앨범 3
- 김상미
시를 우습게 보는 시인도 싫고, 시가 생의 전부라고 말하는 시인도 싫고, 취미(장난)삼아 시를 쓴다는 시인도 싫고, 남의 시에 대해 핏대 올리는 시인도 싫고, 발표지면에 따라 시 계급을 매기며 으쓱해하는 시인도 싫다.
남의 시를 훔쳐와 제 것처럼 쓰는 시인도 싫고, 조금씩 마주보고 싶지 않은 시인이 생기는 것도 싫고, 文化林의 나뭇가지 위에서 원숭이처럼 재주 피우는 시인도 싫고, 밥먹듯 약속을 어기는 시인도 싫고, 말끝마다 한숨이 걸려 있는 시인도 싫다.
성질은 못돼 먹어도 시만 잘 쓰면 된다는 시인도 싫고, 시는 못 쓰는 데 마음씨는 기차게 좋은 시인도 싫고, 학연, 지연을 후광처럼 업고 다니며 나풀대는 시인도 싫고, 앉았다 하면 거짓말만 해대는 시인도 싫고, 독버섯을 그냥 버섯이라고 우기는 시인도 싫고, 싫어…
2004년 마지막 달, 시인들만 모이는 송년회장에서 가장 못난 시인이 되어 시야 침을 뱉든 말든 술잔만 내리 꺾다 바람 쌩쌩한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 싫다, 싫다한 시인들 차례로 게워내고 나니
니체란 사나이, 내 뒤통수를 탁 치며, 그래서 내가 경고했잖아. 같은 동류끼리는 미워하지도 말고 사랑하지도 말라고! 벌써 그 말을 잊은 건 아니겠지? 까르르 웃어 제치더군. 바람 쌩쌩 부는 골목길에서
- 시집<잡히지 않는 나비>(천년의 시작, 2009)
* 감상 : 김상미 시인.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1990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그녀와 프로이트 요법'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시집으로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세계사,1993), <검은, 소나기떼> (세계사,1997), <잡히지 않는 나비> (천년의 시작,2003),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문학동네, 2017), 그리고 시인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 수필집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나무발전소, 2017), <아버지, 당신도 어미니가 그립습니까>(생각하는 백성, 1999> 등이 있습니다. 2003년에 '오렌지' 외 4편으로 <박인환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1990년에 등단했으니, 올해로 29 년차가 되는 중견 시인입니다. 2017년, 그동안 ‘시인’으로서 읽고 쓰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그녀가 가슴에 품은 11 명의 작가들을 소개한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냈는데, 그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 김상미 시인의 시를 한번 선택해 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꾸준히 운영해 오고 있는 블로그의 제목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이니까 뭔가 서로 통하는 것이 있을 듯도 합니다. 사실, 이 제목의 출처는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라는 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표현인데, 김상미 시인도 이 표현을 문학 소녀였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좋아했다고 하네요.
오늘 소개하는 그녀의 시, ‘시인 앨범 3’은 언뜻 보면 시인 자신을 제외한 주변에 있는 모든 못돼 먹은 시인들을 통째로 싸잡아 쓰레기통에 던져 넣을 것 같은 기세지만, 사실은 평생을 시인으로 살아온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실랄하게 자아 반성을 하는 시임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녀가 싫다고 말하는 시인의 모습들은 어찌보면 자신의 그림자가 투영된 것, 그 이상도 또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류로 살아 온 시인들의 송년회장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는 ‘시인’으로서의 자신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어울려 한 잔 두 잔 내리 꺾다 돌아오는 길 골목길 한 편에 쭈그리고 앉아, 싫다고 한 시인들의 모습을 힘겹게 차례로 게워내고 있는데, 그게 바로 ‘가장 못난 시인이 된’ 자기 자신의 모습이니 말입니다. 길게 나열한, 싫은 시인들을 열심히 게워냈다는 것은 이제 자신은 삶과 시가 일치하는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가장 인간적인 의식(儀式) 같기도 합니다.
한 때 시가 생의 전부라고 말했던 자신의 모습도 보이고, 취미(장난) 삼아 시를 쓴다고도 했던 자신의 모습, 또 발표 지면에 따라 시 계급을 매기면서 스스로 으쓱해했던 자신의 모습 등 줄줄이 사탕처럼 손꼽을 수 있는 싫은 가짓수는 끝이 없이 이어지고 그 싫음의 강도는 점점 더 해집니다.
시인입네, 작가입네 하면서 무리를 이룬 사람들을 그녀는 ‘문화림(文化林)’이라고 까지 표현하는데 스슴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성한 수풀을 이룰 정도이지만 쓸만한 나무는 하나 없고 그들은 하나같이 마주보고 싶지도 않은, 원숭이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학연 지연 등에 없고 나폴대는 시인도 싫고 앉았다 하면 삶과 작품이 동떨어진, 거짓말만 일삼는 진정성 없는 시인은 더더욱 싫습니다.
남자 나이 50이면 모두가 시인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가끔 서점에 들리면 시집 코너 앞에서 서성이기 시작한 때가 50이 막 되던 해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를 꺼내 읽으면서 '이런 시를 쓴 시인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삶을 살았을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비록 감히 시를 쓰지는 못하지만 시를 즐겨 읽는 ‘반쪽 짜리 시인’이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를 읽으면서, 남자 나이 50이 되어 반쪽 짜리 시인이 된 사람으로서, 이 시의 화자가 싫어하는 ‘시인’과 그들의 못된 행동의 자리에, ‘나’와 ‘나의 모습’을 대입시켜 보니, 꼭 내게 말하는 호된 꾸지람처럼 들려 옵니다.
삶을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 또 ‘내가 살아 온 삶이 전부’라고 말하지도 말며, 그저 장난처럼 취미에만 푹 빠져 진지하게 삶 속에서 ‘생명과 사랑을 건져올리지 못하는 삶’은 살지 말라고 하는 듯도 합니다. 남의 생각에 핏대 올리는 편협함도 버리라 하고, 또 돈이 많고 적으며 사회적인 지위가 높고 낮음에 따라 사람을 차등해서 평가하는 것은 더더욱 하지 말라는 조언도 들리는 듯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조금 낫다고 으쓱해 하며 잘 난체 하지도 말고 성질이 못돼 먹은 사람도 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 앞 가림도 못하면서 마음씨는 좋아서 마치 천사나 자선 사업가처럼 오지랖 넓게 살지 말라는 잔소리도 들리는 듯 하고, 절대로 먹어서는 안되는 치명적인 것을 남에게는 몸에 좋은 버섯이라고 우겨대는, 자신의 무지를 강요하는 사람은 더더욱 되지 말라는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삶과 문학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평소 그녀의 지론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시 한 편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나의 삶을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밥 먹듯이 약속을 어기는 사람, 또 말 끝마다 한 숨을 내 쉬는 사람이 아니라 늘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처럼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그런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길 이 가을의 초입에 다짐해 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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