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내 시를 찾아가다가 - 임보

석전碩田,제임스 2019. 9. 25. 06:14

내 시를 찾아가다가  

 

 - 임보  

 

<마누라 음식 간보기>란 내 글이  

담양의 어느 떡갈비집에 크게 걸려 있다는 소문을 듣고  

모처럼 고향 내려가는 길에 찾아갔더니  

몰려드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다   

 

얼마나 기다려야 되느냐고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50분도 더 넘어야 한다는 대답이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이리 붐빈 걸 보면   

이 집의 남다른 비결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일정에 쫓겨 그 집의 갈비 맛도 못 보고  

되돌아오면서 차 속에서 생각한다  

음식 맛도 음식 맛이겠지만, 어쩌면  

시가 걸린 집이어서 세상의 구미를 당긴 건 아닌지―   

 

걸린 시의 작자가 찾아왔다고 주인에게 밝혔다면  

혹 자리를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아내는 투덜거리고, 아들 녀석은 농담 삼아  

무단 게시에 대한 저작권을 운운하기도 하지만―   

 

시가 밀려나고 있는 삭막한 이 시대에  

손님들로 하여금 시를 생각하게 하는 그 주인이  

얼마나 갸륵한 마음을 지녔는가?  

고마워해야 할 것만 같다  

 

- 시집 <광화문 비각 앞에서 사람 기다리기> (시학, 2015)  

 

* 감상 : 임보 시인.

1940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2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하였습니다. 1988년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 현대시 운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충북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퇴직하였습니다. 1974년 첫 시집 <임보의 시들 59 - 74> 이후 2011<눈부신 귀향>, 2019<그런 사람을 어떻게 얻지?>에 이르기까지 23 권의 시집과 동인지, 시론집을 펴냈습니다. 프랑스 상징주의 천재 시인 랭보(J. A. Rimbaud, 1854~1891)에 심취하여 그의 이름에서 따 온 임보(林步)는 필명이며 본명은 강홍기(姜洪基)입니다. 인수봉이 보이는 우이동 운수재(韻壽齋;그의 집)에 오래 살면서, 그 주변의 시인들과 <우이동> 동인지 활동을 해 온 것이 그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시인 이생진, 홍해리, 채희문, 임보(강홍기)로 구성된 우이동 시인들이라는 동인이 그것입니다.  

 

보 시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난 2009년 문정희 시인의 시, ‘치마에 대해서 답가 형식으로 쓴 그의 시 팬티 문정희의 치마를 읽다가라는 시로 인해 인구에 회자된 사건일 것입니다. 1947년생 전남 보성 출신 문정희 시인과 1940년생 전남 순천(곡성) 출신 임보 시인 간의 걸쭉한 남도 입담이 담긴 이 두 편의 시는 당시, 또 다른 중재 형식의 시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세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야한 듯 하면서도 예술적인 시라고 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의 본성에 화답하는 듯 시인들의 재치가 번뜩이는, 주고 받는 시는 예술과 문학 세계의 풍류를 만끽하는 재미가 넘칩니다. 이곳에서 그들의 시를 새삼 소개하는 건 자제하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찾아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임보 시인이 고향 근처 어느 식당에 자신이 쓴 시가 걸려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 구경도 못하고 돌아서서 오는 상황을 재미나게 풀어 낸 시입니다. 그리고 이 시가 어째서 시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시의 제목을 다시 읽어보면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내 시를 찾아가다가라는 제목은 어느 식당에 걸려 있다는 자신이 쓴 시를 찾아가는 의미도 있지만, 시인 스스로 50년 시업(詩業)을 해 왔지만 아직도 자기 나름의 시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이해하면 한 편의 재미나는 멋진 시로 읽힌다는 것입니다. 그의 시에는 아내, 아들 등 가족이 등장하기도 하니 그가 시를 찾아가는 여정은 자기 혼자만의 길이 아니었다는 의미도 있을 듯 합니다. 같은 차 안(공간)에서 온 가족이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 조차도 훌륭한 시 소재가 되었으니 분명 그의 시를 찾아가는 길은 시인 혼자만의 작업은 아니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가 깨달은 것은 이 삭막한 시대에, 손님들로 하여금 시 한 편이라도 생각나게 하려는 그 식당의 주인이야 말로 시인과 똑같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즉 갸륵한 시인의 마음을 지닌 삶의 도반이라는 사실, 그것이 눈물겹도록 고맙다는 평범한 깨달음 말입니다.  

 

렇듯 그의 시는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냥 술술 읽힌다고 해야 할까요. 그의 시 속에는 이야기가 있고 해학이 있으며 한 편의 수필을 읽는 것 같은 데 어느 새 한 편의 시가 되어 마음 속에 감동이 일게 하는 마법이 있습니다.  

 

전성시를 이루는 담양의 어느 떡갈비 집에 걸린 임보 시인의 마누라 음식 간보기시를 이쯤에서 함께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   

 

아내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 때마다   

내 앞에 가져와 한 숟갈 내밀며 간을 보라한다   

그러면   

"음 맞구먼 맛있네  

이것이 요즈음 내가 터득한 정답이다   

 

물론   

때로는 좀 간간하기도 하고   

좀 싱겁기도 할 때가 없지 않지만   

만일"좀 간간한 것 같은데 하면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나서   

뭣이 간간허요 밥에다 자시면 딱 쓰것구만' 하신다   

 

만일  

좀 삼삼헌디 하면 또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나서   

"짜면 건강에 해롭다요 싱겁게 드시시오" 하시니   

할 말이 없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고   

아내 음식 간맞추는데 평생이 걸렸으니   

 

정답은   

"참 맛있네"인데  

그 쉬운 것도 모르고.  

 

- 200410월 발표시   

 

이가 들어가면서 깨달아지는 것 중의 하나가 가장 어려우면서도 쉬운 것이 부부 사이에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평범한 사실입니다. 시인이 평생을 걸려서 깨달은 삶의 비결입니다. 음식 간을 보면서 참 맛있네라는 너무도 간단하고 쉬운 말이 정답이었습니다.  

 

써 6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제가 근무하고 있는 기숙사로 발령이 난 이듬 해인 2013년 이맘 때 쯤, 그 전 부서에서 가깝게 지냈던 동료 선생님 한 분이 암 투병을 하다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가 운명을 달리하기 한 달 전, 바싹 마른 몸을 이끌고 일부러 저를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가 작은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평소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가 들려 준 정답은 그만큼 제 귀에 크게 들려왔습니다.  

 

배 선생, 내가 인생의 정답을 발견했고 알려주려고 이렇게 왔어요.’  

그게 뭔데요?’  

, 다 내려 놓으면 돼. 아등바등하지 말아요. 내가 왜 그러지 못했는지 안타까워....’  

 

늘 임보 시인의 시 두 편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삶의 정답이 뭔지를 되새겨 봅니다. 내 시를 말도 하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저작권 운운하면서 멱살잡이 하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 밀려나고 있는 삭막한 요즘같은 현실 속에서, 한 편의 시라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그 갸륵한 마음을 알아주는 넉넉한 시인의 마음, 내려 놓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발견해야 할 가장 쉬운 삶의 정답이라는 것입니다  

 

리고 바로 그 것이 시인이 자기 시를 찾아가는 길 끝에서 만나는 정답이기도 할테니까요.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