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를 채우면서
- 천양희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군가에게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든다는 걸.
- 시집 <오래된 골목>(창작과비평사,1998)
* 감상 : 천양희 시인.
1942년 1월 부산 사상에서 태어나서 경남여중고,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65년 대학 3학년일 때 당시 연세대 교수였던 박두진 시인이 발행하던 당시 유일한 문예지 <현대문학> 추천으로 '庭園 한때', '아침', '和音'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이 인연으로 박두진 교수의 제자였던 시인 정현종과 만나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았으나, 1973년 결혼 5년 만에 정현종 시인이 아무 말없이 이효석의 딸(현재의 부인)과 딴 살림을 차리면서 이혼하였습니다. 1983년 첫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평민사)을 냈고 그 후 발간된 그녀의 시집은, <사람 그리운 도시>(나남 출판사, 1988), <하루치의 희망>(청하, 1992), <마음의 수수밭>(창작과 비평사, 1994), <오래된 골목>(창작과 비평, 1998), <너무 많은 입>(창비시전, 2005),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창작과 비평, 2011), <벌새가 사는 법(육필시집)>(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2)<새벽에 생각하다>(문학과지성, 2017), 산문집 <시의 숲에 거닐다>, <직소폭포에 들다>, <나는 울지않는 바람이다> 외 다수가 있습니다.
몇 주 전에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소개했는데, 그 정현종 시인과 오늘 감상하는 이 작품의 천양희 시인이 부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단추를 채우면서’는 1996년 제 10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자였던 천 시인의 수상 대표작이었습니다. 시인의 삶에 대한 회한이 묻어나는 이 시는, 다분히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1998년 어느 잡지사와 했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이혼할 당시 그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이라는 걸 하면서 나는 문학을 버렸다. 생활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문학을 버린 건 내가 나를 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아무도 아무 것도 돌이킬 수 없었다. 삶이 이런 거라면….. 차라리…… 나는 문득, 죽을 생각으로 살아보자며 다시 일어섰다. 한 권의 시집은 커녕 방 한 칸도 없이, 나는 살기 위해 아침 일곱 시에서 밤 열한 시까지 일했다. 가게에서 자기도 하고 하숙을 하던 때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뛰어 든 생활 전선(이대 앞에서 조그만 의상실을 직접 운영)에서 그 이후 그녀가 겪어내야 했던 삶의 무게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잘못 채운 첫단추, 첫연애 첫결혼 첫실패'란 표현에서 시인의 쓰라린 심경이 읽혀집니다. 어느 해 겨울, 외출하려고 옷을 입다 첫 단추를 잘못 채웠을 뿐인데 옷 모양 전체가 망가져 버린 그 순간 마치 인생 전부가 흐트러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첫 단추의 실패가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잘못 끼운 단추의 난감함이 이 시를 쓰게 했다고 시인은 시작 배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는 것과 같은 실패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잘 못 채워진 첫 단추에 갇혀 스스로 송두리째 모든 삶을 포기하는 선택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그 첫 단추 구멍까지 풀어 헤치고 다시 채우고자 결단하는 것입니다.
부안 내소사. 그 곳에서 30분쯤 걸어가 길이 끝나는 곳에 자리 잡은 직소폭포. 1979년 여름 서른일곱 나이에 삶이 버거워 그만 내려놓기 위해 찾았던 곳이었습니다. ‘천추의 큰 울음처럼’ 우렁찬 폭포수 앞에서 폭포처럼 오열한 시인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마디, ‘너는 죽을 만큼 살아보았느냐’는 말에 마음을 다잡고 시를 읊었습니다. 천 시인은 이 때의 심경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거나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삶을 주도하는 진짜 힘은 자신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이렇게 천양희 시인을 다시 살아나게 한 직소 폭포에서의 깨달음은 그 후 하루치의 희망이라도 쓰자는 생각으로 자신만의 시 작업에 몰두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13년 후 그녀는 ‘직소폭포에 들다 ’는 제목의 시와 산문집을 발표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에서, 시인이 깨달은 것–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달린 단추도 채우는 게 쉽지 않듯 –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이 쯤에서 시인을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서 다시 살아나게 했던 깨달음이 무엇이었는지, 시 ‘직소 폭포에 들다’를 직접 읽으면서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직소폭포에 들다
- 천양희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淨土(정토)! 나는 늘 꿈꾸어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水宮(수궁)을.
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동소리 같은
우레 같은 기립박수소리 같은 - 바위들이 흔들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絶唱(절창)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 <마음의 수수밭>(창비, 1994)
세월이 흘러 상처가 아물자 그 자리에는 옹이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삶의 상처를 시로 승화시킨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이라는 이름이 천양희 시인에게 주어진 타이틀이 되었습니다. 시인은 상처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깨달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시, 그리고 감성적이고 진실한 시를 쓰는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홀로 살아 온 삶 자체가 오로지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수행의 과정이었다고나 할까요. 이곳 저곳 몸이 성하지 않지만 아직도 시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소통할 수 있는 곳이라면 기꺼이 달려가는 그녀는, 어설픈 시어들로 치기(稚氣)를 부리는 시들을 호된 죽비로 서슴없이 내려칠 줄 아는 문단의 든든한 어른 역할을 자임하고 있기도 합니다.
시 앞에서 수도자처럼 살아가는 그녀가 시를 대하는 자세가 엿보이는, 최근 어느 강연에서 했던 짧은 고백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국은 '단독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배워야 하는, 진지한 삶의 자세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 석전(碩田)
‘새벽에 생각하니
시여 고맙다
네가 늦도록 나를 살렸구나
너는 내 고단한 생각을 완성해주었다.
저녁노을은 저물수록
더 붉게 탄다는 말이
오늘따라
생각을 찢는 것이
시의 마땅한 일이란 것을 절감하게 한다‘(천양희, 20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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