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기춘 아지매 - 권순진

석전碩田,제임스 2019. 8. 21. 06:42

기춘 아지매  

 

                                   - 권순진   

 

성주군 선남면 오도리 기춘 아지매의 삶은 촛불 이전과 이후로 확실히 갈라졌다. 사드란 괴물이 들어선다는 소문을 듣기 전에는 심산 김창숙이란 인물이 이 고장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알 턱이 없고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자기랑 나이는 비슷한데 얼굴은 엄청 더 예쁜 탤런트 김창숙은 안다  

 

이 나라에 껍데기는 가라’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외치다 간 신동엽 시인도 처음 들었다. 같은 이름의 개그맨은 가끔 보아서 안다  

 

김소월 윤동주의 시 한두 편은 제목도 알아 완전 맹탕은 아니라 자부했건만. 이참에 몇몇 시인의 이름을 새로 주워들었다. 집안동생이 일러주었는데, 시를 잘 써 억대의 상금을 탔다는 문인수란 시인의 고향이 성주란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군청 앞마당에서 시를 읽어주던 멀끔한 젊은이 김수상 씨도 시인인 것을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놈의 사드 때문에 신간은 고되었지만 먹물은 좀 먹은 셈이다. 기분 더럽게 성 빼고 자기와 이름이 같은 나치장교를 닮은 사람, 미꾸라지란 별명의 우씨란 사람이 청문회에서 모른다 안했다 앵무새처럼 주낄 때, 전 같으면 그런가보다 했겠는데 분통이 터져 주둥이를 쥐어박고 싶었단다  

 

자기가 뽑은 국회의원도 창피해 죽겠단다. 매양 가던 길로 붓 뚜껑을 찍어온 제 손가락을 분지르고 싶었단다  

 

- 사드배치 반대 촛불집회 200일 기념 시집 <성주가 평화다>(2017, 한티재)  

    

* 감상 : 권순진 시인. 1954년 경북 성주 출생,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습니다. 2000<시하늘> 계간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고, 2001<문학시대>로 등단하였습니다. 시운동 계간지 <시와시와>를 발행하고 있으며 2008년부터 시작하여 11년 째 지역 일간지인 대구일보에 시 컬럼,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를 연재 중에 있습니다. 첫 시집, <낙법>(2011, 문학공원)과 신문에 연재했던 시 해설들을 모아서 엮은 책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1>(2011, 그루), <낙타는 뛰지 않는다>(2018, 학이사)를 냈습니다.  

    

금도 계속되고 있는 대구지역 신문에 쓰는 그의 시 컬럼 글 때문에 사실은 저도 몇 년 전에 권순진 시인을 알게 되었고 그가 소개하는 시평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는기춘 아지매시 속에서의 기춘 아지매가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보다 더 많이 내가 시에 대해서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오늘 읽는 이 시를 통해서 권 시인이 성주 출신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지매라는 호칭은 우리 고향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말입니다. 결혼 한 모든 여자는 자신의 친정 마을 이름으로 택호(宅號)가 주어지고, 부를 때에는 그 택호에 아지매를 붙여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여자의 택호에 아재를 붙여 부르면 되었습니다. 가령, 돌아가신 나의 모친의 친정은 멀리 경남 합천읍에 있는 옥산이라는 작은 마을이어서 옥산댁이 되었고, 옥산 아지매, 아버지는 옥산 아재로 불렸습니다. 호칭과 관련하여 이런 독특한 문화가 아직까지도 실 생활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이 바로 내 고향 성주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아지매라는 말은 단순히 아주머니의 사투리 표현이라는 설명으로는 절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 한 여자의 친정과 시댁을 이어주고 또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관계, () 생애가 다 담겨있는 호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권순진 시인의 이 시 제목을 보는 순간, 뭔가 확 끌리는 게 있었지요.  

 

산문 시를 읽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시골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 온 한 아낙네가 사드 반대 촛불 집회를 계기로 생각이 변해가는 과정을 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재미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산 김창숙이라는 성주가 배출한 시대의 걸출한 독립 운동가의 이름과 시골 아낙네들이 잘 아는 동명이인의 이름, 영화배우 김창숙과 연결시켜 그것을 시적 은유로 삼아 점점 상상력을 확장해 나가는 기술이 이 시를 이해하는 포인트입니다. 소위, 먹물 좀 먹은 사람들이 아는 이름과 그렇지 않은, 시골 아지매 같은 사람들이 알만한 이름을 대비시켜 그 범위를 넒혀 가다가 결국 어느 한 지점에 모이게 하는 기법 말입니다.  

 

동엽이라면 매일 보는 TV에 나오는 개그맨 신동엽만 있는 줄 알았더니, 시인 신동엽이 있었고, 시인이라면 그저 김소월이나 윤동주만 알았는데, 내가 사는 성주에도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꽤나 유명한 시인들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게 표현했습니다. 그것도 집안 동생이 일러 준 시인 중에는 그동안 한번 상상조차도 해 보지 않은 사실, 를 써서 억대의 상금도 탔다고 하니 참으로 희한할 뿐입니다  

 

난 주말, 벌초를 하기 위해 내 고향 성주를 다녀오면서 내 고향 성주와 관련된 이 시를 한번 소개해드리는 것도 의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교정이, 옛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추억 박물관으로 변했고, 방과 후 소를 몰고 친구들과 함께 뒷산에 올라 소를 먹이던 풍경은 없어졌지만 그 옛 정취는 언제나 그대로인 '내 고향 성주'를 사드라는 괴물로부터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직까지도 고고도 미사일 사드배치 문제가 완전히 일단락되지 않았고, 또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등 주변의 열강들이 전 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정세, 또 북한은 이런 남한의 속도 모르고 연일 펑펑 놀이하듯이 제멋대로 주변을 위협하는 현실이지만 이제는 매양 가던 길로 붓 뚜껑을 찍지 않고 생각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기춘 아지매'가 있어 든든합니다.  

 

심 아지매, 고타이 아지매, 이번에는 벌초 작업이 끝나고 그냥 곧바로 올라오느라 마을에 못들려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너무 너무 죄송합니다. 조만간 찬 바람이 선선하게 나면 시간 내서 내려 갈께요. 그리고 그 땐 넉넉히 시간을 가지면서 살아가는 이야기 함께 나눠 보자구요.^&^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