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남주 생각 - 정희성

석전碩田,제임스 2019. 6. 5. 08:04

남주 생각  

 

 

                                    - 정희성  

 

 

남주는 시영이나 내 시를 보며 답답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뉘 섞인 밥을 먹듯 하는 어눌한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시영이나 나는 죽었다 깨도 말과 몸이 함께 가는 남주 같은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기껏 목청을 높여보았자 자칫 목소리가 따로 놀 테니까 시영이도 그렇겠지만 나는 나대로 감당해야 할 몫이 따로 있기도 하고 그렇지만 아무래도 이건 무슨 변명 같기도 하고 비겁한 듯도 하고 하여튼 일찍 간 남주 생각을 하면 내가 너무 오래 누렸다는 느낌이다  

 

 

- <흰 밤에 꿈을 꾸다>(창비, 2019)  

 

 

* 감상 : 정희성 시인. 19452월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부터 숭문고등학교 교사로 35년 교단을 지키다가 정년 퇴직했습니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변신'이라는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창비, 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창비, 1991), <시를 찾아서>(창비, 2001), <돌아다보면 문득>(창비, 2006), <고마워요 미안해요>(화남출판사, 2009), <고래>(책만드는집, 2012), <그리운 나무>(창비, 2013), <고래 2018>(문학나무, 2018) 등이 있습니다.  

 

 

저 김남주 시인의 시 '돌맹이 하나'를 읽고 이야기를 시작해야겠습니다.  

 

 

돌맹이 하나  

 

 

                                 - 김남주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 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맹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맹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이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늘 감상하는 정희성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남주'는 바로 이 '돌맹이 하나'가 되자고, '개똥벌레 같은 불씨 하나 되자'고 노래한 김남주 시인입니다. 말을 했으면 반드시 행동하는 시인이었던 친구 '남주'에게는 영낙없이 '비루한 자'로 비쳐졌을 법한 자신을 반성하는 시이기도 하고 또 아직도 살아 있어 소시민으로 살아가면서, 천둥처럼 큰 목소리를 내는 시를 쓰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해야 할 나름의 몫이 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싶은 마음도 비쳐지는 시입니다. 그래서 이 두 시를 놓고 보면, 남주의 시에 등장하는 대화 상대 친구가 마치 시인이 아닌가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희성 시인의 시를 처음 접했던 때가, '저문 강에 삽을 씻고'라는 제목의 시가 아닌가 기억됩니다. 1978년 문학 사상에 발표했던 그의 대표작인 이 시가 교과서에 실리고, 또 수능에도 종종 출제되는 시가 되면서 세간에 알려진 시인이었습니다. 삽 한 자루로 살아가는 가난한 삶의 노동자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삽을 씻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시였지요. 그리고 그런 담담한 광경 자체가, 우리가 살아내야 했던, 어쩌면 아무 희망 없는 당시의 삶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담배 한 대 피고 일어서서 어둠이 내린,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다시 돌아가는 시인의 모습이, 캄캄했던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 내야했던 일이었음을.  

 

 

남주 시인의 시를 감상하면서 어느 분이 "비루(鄙陋)는 비루한 자의 통행증이요, 고상은 고상한 자의 묘비명이다"라고 말했던 중국 문화혁명 당시 문인 베이다오(北島, Peitao)의 글을 인용했더군요. 비루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친구와 친지를 배신하면서 살아남았으니 '비루함'이 그들의 통행증인 셈이고, 고상한 사람들은 고상한 척 살면서 단지 그들의 묘비명에 '고상'이라는 평가나 받을 뿐이라는, 아주 자조적인 표현의 말입니다  

 

 

20194, 바로 지난 달에 출판된 따끈 따끈한 시집 제 1쇄에 실린 오늘 감상하는 정희성 시인의 시와 그의 첫 시집에 실린 그의 대표시, 그리고 김남주 시인의 '돌멩이 하나'를 연결하면, 우리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어렴풋이 그 정답이 보이는 듯 합니다.  

 

 

금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래서 적어도 비루하다는 말은 듣지 않는 삶을 살아내는 것 말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