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6 - 김용락

석전碩田,제임스 2019. 5. 16. 09:29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6

 

 - 김용락  

 

가만히 생각해보니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반달]의 윤석중 옹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새싹문학상을 주시겠다고

안동 조탑리 권정생 선생 댁을 방문했다

수녀님 몇 분과 함께,

두 평 좁은 방 안에서 상패와 상금을 권 선생께 전달하셨다

상패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권 선생님 왈

 

"아이고 선생님요, 뭐 하려고 이 먼 데까지 오셨니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

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

어른들끼리 주고 받니껴?

 

내사 이 상 안 받을라니더......"

 

윤석중 선생과 수녀님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서울로 되돌아갔다

 

다음날 이른 오전

안동시 일직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소포로

상패와 상금을 원래 주인에게 부쳤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봉화서 농사짓는 정호경 신부님

"영감쟁이, 성질도 빌나다 상패는 돌려주더라도

상금은 우리끼리 나눠 쓰면 될 낀데......"

 

- 시집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문예미학사, 2008)

 

* 감상 : 오늘 시를 감상하기 전에 시와 관련된 몇 분의 사람들을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시에 등장하는 권정생이라는 분은 누구이며, 시를 쓴 시인 김용락은 또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시 속에 등장하는 정호경 신부님은 누구인지 정도는 알아야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듯 하기 때문입니다.

 

2007517일에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은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일본 동경의 빈민가에서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귀국했으나 빈곤과 6.25 전쟁 등으로 곧 가족들과 헤어졌고 대구, 김천, 상주 등 경상도 지역을 떠돌며 나무장수, 담배장수, 가게 점원 등 온갖 일을 하다가 폐결핵, 늑막염 등의 병을 얻어 1957년 경북 안동시 일직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병도 깊어지고 집안 형편도 어려워 다시 고향을 떠났다가 1966년에 돌아와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습니다. 떠돌이 생활 중에도 닥치는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쓴 그는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교육>에서 주는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동화작가로서의 삶이 시작이된 것입니다. 그 후,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분에서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습니다. 장편 <몽실언니>(1984) 등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그는 교회 뒤 언덕에 지은 작은 흙집에서 검소하게 살면서 작품활동을 한, 어느 작가에 의하면 한국의 살아있는 노자로 불려졌습니다.

 

'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씨리즈는 바로 이 권정생 선생이 사셨던 안동 시골 마을 조탑동에서, 제목이 말해 주듯 그에게서 주워들은 그대로를 시인 김용락이 옮겨 놓은 르포 시입니다.

 

용락 시인은 1959년 경북 의성군 단촌에서 태어나 안동 경안중, 대구 능인고를 거쳐 계명대에서 학,,박사를 받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1984년부터 안동공고 영어교사로 교직에서 근무했으며 19841, 창작과 비평사 신작 시집, <마침내 시인이여>가 출간되어 공식적으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1990년부터는 경북일보, 영남투데이, 대구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고 대구 CBS 시사프로인 <라디오 세상읽기> 등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91년 계간 문예지 <사람의 문학>을 창간하였으며 현재는 그 발행인을 맡고 있습니다. 언론인, 평론가, 대구 북구() 야권단일 후보, 경북외국어대 교수, 희망 숲 대구교육연구소 소장 등 그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가 너무도 다양합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다양한 직함보다, 다음과 같은 시집을 낸 시인으로 그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송사리떼를 몰고 하늘로>(흐름사, 1982), <푸른별>(창작과 비평사, 1987),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창작과 비평사, 1996), <시간의 흰 길>(사람, 2000),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문예미학사, 2008)

 

음으로는, 시 속에 나오는 정호경 신부. 이 분은 권정생 선생이 작고하기 전 남긴 유언장에 자신이 쓴 책의 인세 등 남겨 진 재산을 관리하는 세 명을 언급했는데 그 세 명 중의 한 분입니다.

 

가 쓴 유언장 전문을 소개해 봅니다.

 

[유언장]

 

1. 최완택 목사, 민들레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200551일 쓴 사람 권정생]

 

유언장을 읽으면 시에서와 같이 비록 병들고 가난했지만 삶을 달관하며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의 의연한 모습이 전해집니다. 생전에 사람을 띄운답시고 카메라를 들고 우르르 몰려 조탑동을 방문하는 일 따위가 선생에게는 속물적인 노릇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새싹문학상이니 하면서 어떤 운동단체에서 주겠다는 상들도 그는 달가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거룩하고 순수하며 의미있다 여기는 일도 청빈한 성자의 삶을 살아가는 선생의 눈에는 다 씨잘데기 없는 짓일 뿐이었습니다. 마치 외국어처럼 들리는 시 속의 경상도 사투리가,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꾸밈없는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더욱 정겹습니다.

 

용락 시인의 첫 시집,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 발문에 그가 성실하고 따뜻한 시인이라는 제목으로 시인에 대해 직접 쓴 표현이 이러합니다.

 

김용락 군의 시에는 우리들의 농촌 어머니와 아버지들의 따뜻한 눈물이 진솔하게 나타나 있다. <손국수> <송실이 누님> <문선대>와 같은 초기 작품은 냉이국 향기처럼 소박한 서정성이 가미된 가작이다.’

 

생께서 돌아가신 뒤 조탑동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골골거리며 사는 불쌍한 독거노인인줄만 알았는데 전국에서 수많은 조문객이 몰려와 펑펑 눈물을 쏟으며 울질 않나, 매달 수천만 원의 인세수입이 들어온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으니 말입니다.

 

<서방>이라는 이름의 개가 늘 옆에서 권정생 선생의 벗 역할을 했다는데 지금은 누가 보살피고 있는지 그가 먼 별나라로 떠난 날을 맞아,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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