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욕타임 -손 세실리아

석전碩田,제임스 2019. 5. 22. 06:44

제주도에서 맞는 아침에 읽는 한 편의 시  

 

욕타임  

 

                                         - 손 세실리아   

 

오천 평 농장일도 척척   

중증 치매환자인 시아버지 병수발도 척척   

종갓집 외며느리 역할도 척척인 여자가 있다  

곱상한 외모와 왜소한 체구만 보면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것 같은데  

일일 노동량이 상머슴 저리 가라다   

그 정도면 신세한탄으로 땅이 꺼질 법도 한데   

볼 때마다 환하다 생색내는 법 없다   

한술 더 떠 범사에 감사해한다  

슬쩍 비결을 물었다  

 

궁금하나? 하모 내만의 비법이 있재 내도 인간인데 와 안 힘들겠노 참다참다 꼭지 돌면 똥차로 냅다 뛰는 기라 거기서 싸잡아 딥다 욕을 퍼붓는 기지 나가 느그 집 종년이가 뭐가 떠받들어도 살지 말찐데 주둥이만 열믄 뭔노무 불만이 그리 많노? 그리 잘하믄 늬 누이들이랑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하지 와 내한테 미루는데? 욕만하는 줄 아나? 쏙이 후련해질 때까정 고함치고 삿대질도 한다카이 그라고나믄 뭍으로 유람 댕겨 와 해가 중천인 줄도 모리고 디비 자빠져 잠든 띠동갑 황소고집 서방도 불쌍코 공주행세하는 시엄씨도 불쌍코 정신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문서란 문서 거머쥐고 호령하는 시아배도 불쌍코…… 뭣보다도 쉰 넘은 나이에 체신머리 읎게 욕이나 씨부려쌌는 내 드러븐 팔자도 불쌍코   

 

감귤밭 터줏대감 늙은 개도 꼬리 내리고 납작 엎드려 잠자코 들어준다는  

 

- <꿈결에 시를 베다>(실천문학사, 2017)   

 

세실리아. 1963213,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문예지 <사람의 문학>,<창작과 비평> 등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 각종 매체에 산문과 시를 발표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소통을 누구보다도 중시하는 그녀는 몇 년 전 제주도 조천읍에 <시인의 집>이라는 공간을 마련하고 정착했습니다. 다 쓰러져 가는 폐가를 살려 소통의 공간으로, 바다로 넓은 창문이 열린 책방을 연 후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데, 그 덕분에 저도 시인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을 통해 그녀를 만났고 작년 이맘 때, 일부러 시인의 집을 찾아 왔지요.  

 

집으로 <꿈결에 시를 베다>(실천문학사, 2017), <기차를 놓치다>(애지, 2015)가 있으며, 자서전적인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삶이 보이는 창, 2011)이 있습니다.  

 

려한 등단을 한 적은 없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되는 대표시가 많은 시인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녀의 시가 중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탓일 것입니다. 네이버 블로그, <시인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시인은 시가 죽었다!”라는 평설에 과연 그럴까?”문제 제기를 하며 소박하고 나직나직하지만 깊이 있는 진정성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문인들의 홈페이지나 블로그가 대부분 본인의 작품과 글을 중심으로 꾸며지는 데 반해 손 시인은 고봉밥이 되는시와 소설을 꾸준히 찾아 읽고 소개하면서 문학으로의 폭넓은 관심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시인의 집 책방에는 시와 소설집이 가득한데, 모두 저자의 친필 싸인이 담긴 책들입니다. 저자의 싸인이 있으니, 안 팔리면 다시 출판사로 반품도 할 수 없습니다. 그녀에 의하면 이 일은 가난해도 곁길로 새지 않고 시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시인들을 아끼는 지극한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늘 읽은 시는, 제주에 정착하면서 그녀가 만난 제주 사람의 풋풋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로 담아낸 것입니다. , 그것도 경상도 어느 지방에서 시집와서 척박한 제주도 인심과 맞서 살아 온 종갓집 외며느리의 삶의 비결을 풀어 놓은 시를 읽다보면 서당 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늙은 개도 다소곳이 들어 줄 만한 삶의 온기가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풀어내지도록 차분하게 들어주는 시인의 모습이 상상되는, 그래서 치유자로서 또는 상담자로서 잘 경청하는 시인이 그려지는 시입니다. 그녀의 모든 시가 바로 이런 삶의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시들입니다.  

 

주의 바람에 귤꽃 향기가 묻어 있어 너무도 맛있는 바람이 부는 아침입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습니다. - 석전(碩田) 


 

 

 

 

* 아래 사진은 토요일 오후, 서울로 돌아오기 전 잠시 들렀을 때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