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시집 <광휘의 속삭임> (문학과지성사, 2008)
* 감상 : 정현종 시인,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대광고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는데, 대학 재학 중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당시 연세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어 1965년 <현대문학>에 시 '독무'와 ‘여름과 겨울의 노래’ 등으로 추천을 완료하고 등단했습니다. 1965년부터 1977년까지 서울신문과 중앙일보 기자로 일했으며 1977년 퇴직 후,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시 창작 강의를 했습니다. 1982년부터는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5년 정년 퇴임했습니다.
그의 시는 TV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가끔씩 소개되었기 때문에 이 시인의 시라는 건 몰랐지만 아마도 한번 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그런 시로, 딱 두 줄로 된 ‘섬’이라는 제목의 그의 시는 이러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또, 광화문 교보문고 빌딩에 계절마다 걸렸던 현수막 좋은 글귀에 이 시인의 <방문객> 싯글이 설문조사에서 사람들이 좋아 했던 역대 글 2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의 시집과 산문집, 그리고 등단 50년 동안 쓴 시들을 묶어놓은 시선집 등은 일일이 다 쓰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아 여기서 소개하는 건 생략하고 2008년에 출판된 그의 아홉번째 시집, <광휘의 속삭임>에 실린 시 '방문객'을 감상하는 걸로 대신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만 해도 결혼을 한다든지, 또 집을 옮겨 이사를 하게 되면 사람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집들이'라는 것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새는 집들이 문화가 점점 없어져서 다른 사람이 사는 공간에 '손님'으로 가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 때만해도 아주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면서 '좋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필경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가 조금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 시를 감상하면서 눈에 띄는 단어는, '사람이 온다는 것', '부서지기 쉬운 마음', '바람', '환대' 등 입니다. 이런 시어들을 연결시켜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시가 내게로 다가옵니다.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도시 현대인인 우리들은 이미 다른 사람을 '환대'하는 마음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삭막한 사막과 같은 곳을 이를 악물고 살아가다 보니, 다른 사람을 환대하는 일이란 결국 자기가 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런 환대를 잃어버린 마음에 '바람'이라는 시적 은유를 등장시켜 새롭게 길을 내고, 꽉 막힌 마음에 새 바람을 불어 넣길 원합니다.
부서지는, 혹은 부서지기도 했을 우리들의 '마음'속으로 바람이 밀려 들어옵니다. 나갈 길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바람은 서슴없이 길을 냅니다. 시인은 바람이 내는 이 숨길을 “환대”라는 시어로 표현했습니다. '환대'는 상대를 온몸으로 맞이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는 사람을 환대하려면 바람처럼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혹시 우리 마음이 부서질까봐 두려워서, 아예 우리 마음을 닫아 걸고 있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반성해 볼 일입니다. 나를 찾는 방문객에게, 아니 내가 다른 사람을 방문하는 손님이 될 수도 있을 오늘 하루를 살면서, 엄청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함께 오는 '그'를 온 마음으로 환대하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바람이 붑니다, 살아야겠습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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