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아내의 브래지어 - 박영희

석전碩田,제임스 2019. 5. 8. 09:18

아내의 브래지어

 

                           - 박영희

 

누구나 한번쯤

브래지어 호크 풀어보았겠지

그래, 사랑을 해본 놈이라면

풀었던 호크 채워도 봤겠지

하지만 그녀의 브래지어 빨아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나 오늘 아침에

아내의 브래지어 빨면서 이런 생각 해보았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을 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하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남자도 때로는 눈물로 아내의 슬픔을 빠는 것이다

 

이처럼 아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웅크리고 산 것을

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 오늘 아침에

피존 두 방울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 향기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 시집 <팽이는 서고 싶다> (창비시선)

 

* 감상 : 박영희 시인. 1962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985년 문학 무크 '민의' 3집에 시 <남악리>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조카의 하늘>, <해 뜨는 검은 땅>, <팽이는 서고 싶다>, <즐거운 세탁> 등이 있습니다. 서간집 <영희가 서로에게>, 시론집 <오늘, 오래된 시집을 읽다>, 평전 <김경숙>, 르포집 <길에서 만난 세상>(공저),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사라져 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기행 산문집 <만주를 가다>, 장편 소설 <대통령이 죽었다>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습니다.

 

특히, 그는 민족운동을 위해 무단으로 북한에 다녀온 혐의로 7년을 감옥에서 보낸 별난 이력을 가진 시인입니다. 7년 동안 젖먹이였던 어린 딸아이가 초등학생으로 자랐고, 긴 세월 옥바라지 하느라 고생한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그런 아내에게 그윽한 사랑을 담아 보내는 연시(戀詩)인데, 사람들은 그의 이력을 보고 '민족 문제를 함께 깨달을 수 있는 의미심장한 시'라고 고매(?)하게 해석하기도 한다는데, 시인 본인은 정작 아내 사랑 말고는 다른 생각을 개입시켜 쓰지 않았다고 하는 시입니다.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지금은 58일을 '어버이 날'이라고 칭하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이 날은 '어머니 날'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특별한 날이 필요했던 것은, 평소에 그런 대우를 하지 못했으니 이 날 하루만이라도 보상을 받으라는 뜻이 내포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이 땅의 어머니들, 아내들, 딸들은 모두 힘든 삶을 살아왔다는 반증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시에서, 시인은 '한 남자를 위해 처지는 가슴을 세우고자 애썼'다라든지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웅크리고 산' 여자의 슬픈 삶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멋진 계절 오늘은, 그동안 남자로서는 전혀 해 보지 않은 일이지만, 아내(어머니)를 위해서는 기꺼이 해 보는, 그래서 그간 나 중심으로 살았던 삶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이든, '피죤 두 방울' 떨어뜨리는 여유를 한번 가져 보는 건 어떨런지요.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