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 문인수

축구

 

                     - 문인수

 

파죽지세의 응원이 계속 끓어오르고 있다. 옆의 사람을 와락, 와락, 껴안고 폭발적으로 낳는 열광이 '붉은 악마'다.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지금∼ 오 천 년 만에 처음 그늘진 데가 없다.

 

가을날의 내장산이나 설악의 바람같이 번지는 춤, 우는 이도 많다. 저런 표정에도 곧 바로 마음이 건들리는, 불의 뿌리가 널리 동색이다. 다스리지 않았으나 눈물이 기름이어서 잘 타오르는 것이다.

 

그 힘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저 흰 출구.

 

전국의 인구가 모처럼 다 몰려나와 있다. 뜨겁게 펼쳐지는 씻김굿 한 판이, 해방이 참 광활한 대륙이다.

 

- 시선집<풀잎의 말은 따뜻하다> (한국시인협회, 2002)

 

* 감상 : 어젯밤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FIFA가 주관하는 U-20 월드컵 대회 결승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서 온 국민이 밤을 새 가며 '대~한민국'을 외치는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우리 생전에는 결승에 오른 우리 팀을 응원하는 이런 일은 또 있기 힘든 역사적인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온 한반도가 들썩이면서 밤새도록 '대~한민국'을 외쳤던 모습을보며 2002년 당시, 이런 열기와 환호, 온 국민을 들썩이게 만든 '축구'를 제목으로 시를 쓴 문인수 시인의 시를 한번 꺼내 봤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문 시인의 고향이 저와 같은 성주이니 더욱 감회가 새롭습니다.

 

문인수. 1945년 6월 2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에서 태어나고 초전초, 성주중, 성주농고 입학 대구고 전학 후 졸업을 한, 순종 성주 출신 시인입니다.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중퇴하고, 1985년 <심상>에 시 '능수버들'등 4 편이 당선되어 신인상을 수상함으로써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늪이 늪에 젖듯이>(심상, 1986),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1990), <뿔>(민음사, 1992), <홰치는 산>(만인사, 1999), <동강의 높은 새>(2000), <쉬!>(2006), <배꼽>(창작과비평, 2008), <적막소리>(창작과 비평, 2012), <그립다는 말의 긴 팔>(서정시학, 2012), <달북>(시인동네시인선, 2014),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창작과 비평, 2015), 동시집 <염소 똥은 똥 그랗다>(문학동네, 2012) 등이 있으며, 2000년 제11회 김달진 문학상 수상, 2003년 노작문학상, 2016년 동리목월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문인수 시인은 마흔이 넘어 등단한 늦깎이 시인입니다. 그가 스스로 고백했듯이, 30대 후반까지 자신의 삶은 ‘백수의 삶’이었다고 자책합니다. 그리고 그런 인고의 긴 시절이 그의 시에 녹아들다보니 대부분의 그의 시들이 외부의 사물을 내면으로 끌고 들어와 그것을 내 것으로 풀어내는 순도 높은 서정시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감상하는 시도 제목에서 말해 주듯, 축구에 관한 시이지만 다 읽고 나면 어느 새 마음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한(恨)과 만나 한편의 서정시로 바뀌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에서 온 나라 국민이 떼지어 모여 응원을 하는 모습을 그려 낸 시입니다. 온 국민이 열광하는 이런 모습을 보고, 시인은 그 현상 자체만을 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우리 국민 아니 시인 본인의 마음 속에 내재 되어 있는 한(恨)이라는 정서를 이야기합니다.

 

모르는 사람인데도 한 골이 터지는 순간, 옆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와락 껴 안고 울기까지 하는 장면이 시인에게는 마치 씻김굿 한 판을 보는 것 같았던 듯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곳 한 지점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을 날 내장산, 설악산을 거쳐 한반도 전체로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 색깔과 동색이 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시인은 내면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축구 만큼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스포츠는 없는 듯 합니다. 비록 한 밤 중에 축구를 해서 잠을 설치기는 했지만, 한 마음으로 하나되는 가슴 벅찬 기쁨과 환희를 만끽하는 보상을 얻었으니 역시 축구는 모든 걸 한 판으로 뒤집는 씻김굿임에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값진 준우승을 차지한 대한민국 선수단에게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