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박꽃 - 신대철

석전碩田,제임스 2019. 6. 21. 06:31

박꽃  

 

- 신대철 

 

박꽃이 햐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 <무인도를 위하여)(문학과 지성, 1977)  

 

* 감상 : 신대철 시인. 그는 194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 공주사대부고와 연세대 국문과,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고 국민대 교수로 30년을 재직하다 지난 2010년 정년퇴직하였습니다. 1968강설의 아침에서 해빙의 저녁까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는 이후 왕성한 시작 활동을 벌이면서 자연 속에서 현대인의 내면 정황을 포착하는 유니크한 시 세계를 보여주었지만, 1977년 첫 시집을 출간한 이후 23년 동안 절필하였습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첫 시집인 <무인도를 위하여>1977년에 출간한 뒤 두 번째 시집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문학과지성)2000년에 발간되으니 실로 긴 세월 침묵을 지켰습니다.  

 

2005년 세 번째 시집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창작과 비평), 그리고 2007<바이칼 키스>(문학과 지성), 2018<극지의 새>(빗방울화석)를 연이어 펴내며 정년 후에도 시작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난 월요일 아침, 우연히 신대철 시인과 직접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업무 차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지인 한 분이 마침 제가 한 주에 한 편 씩 주변 지인들에게 시를 소개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신대철 시인을 잘 안다면서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선생님, 여기 선생님 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호들갑스럽게 앞서나가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늘 감상하는 그의 시 박꽃은 그의 첫 시집에 실린 시로, 꽃이 피는 모습을 섬세하게 들여다 보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시적 은유로 포착하는 시입니다. 

 

해 전, 산행을 하는 중 한 동료가 민들레 하얀 씨앗이 되기 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본 적이 있는지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노랗게 피었던 민들레 꽃이 어느 날 갑자기 하얗게 변해 있는 것만 보았지, 그 변화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어느 누구도 봤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하얀 씨앗으로 변하는 민들레 꽃의 변신처럼, 세상의 모든 꽃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핍니다. 그 순간을 목격하려면 시인과 같은 섬세한 마음의 눈이 필요하겠지요. 그 중에서도 달밤에만 핀다는 하얀 박꽃이야말로 세 걸음 이상 떨어지는 먼 관심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순간이겠지요. 

 

시에서 시인은 사람을 벌떼 같은 사람이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침을 감춘 채 윙윙 거리며 뭔가를 찾아서 이리 저리 날고 있는 벌들의 모습이 이 세상, 아니 시인의 주변에 있는 뜬소문 만들어 내면서 마음의 상처를 주는 사람들의 모습과 영낙없이 닮아 있다고 시인은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분주하고 이리 저리 몰려 다니며 입으로 침 같은 독설을 내뱉는 세상 사람을 윙윙거리는 벌떼에 비유했으니, 그 벌떼들도 잠든 고요한 시간에 드디어 박꽃이 피고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리는 세계, 시인이 늘 동경하는 세상입니다.  

 

을 좋아해서 백두대간은 물론 재직 중 안식년을 이용하여 몽골의 바이칼 호수에서 1, 알래스카에서 반년을 홀로 살면서 자발적으로 극적인 고통의 시간을 체험,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오랜 침묵을 깨고 낸 시집들을 절규와 같은 시어들로 오롯이 채웠습니다. 이런 그의 시들은 어쩌면 시인이 평생 간직해 온 삶의 업을 풀어내는 치유의 시어들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의 세 번째 시집, <그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에 실린 그의 시 한 편을 더 소개해 봅니다. 첫 시집 이후 23년이 지나서 발간된 시집이지만, 여전히 그가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그의 이해가 변하지 않은 걸 보면 그의 상처가 참 깊었던 것 같습니다

 

글거리는 태양이 작열하는 뙤약볕 여름같은 시끌벅적한 하루를 또 살아내야 하지만, 박꽃이 피는 순간을 들여다 보는 시인의 마음으로, 또 반딧불 하나를 맞이하는 여유로움으로 생명의 물소리를 듣는 오늘이길 소원해 봅니다.  - 석전(碩田)

 

[반딧불 하나 내려 보낼까요?] 

      

 - 신대철  

 

상처 깊숙이 노을을 받는 그대, 훌쩍 바람이나 쐬러 올라오시죠. 때 없이 가물거나 가물가물 사람이 죽어가도 세상은 땅에서 자기들 눈높이까지, 한 걸음 윗 세상은 빈터 천집니다. 여기서는 누구나 무정부주의잡니다. 여기서 미리 집 없이 사는 자가 되어보고, 저 아래 이글거리는 땅 사람 그대를 둘러보고 여름이 다 끝날 때 내려가시죠  

 

풀벌레가 울기 시작합니다. 다시 길을 낼까요? 초저녁 한적한 물가나 무덤가로 나오시면 푸른 반딧불 하나 내려 보내겠습니다  

 

-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문학과지성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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