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막노동을 하고 싶다는 후배에게 - 유용주

석전碩田,제임스 2019. 7. 3. 06:39

막노동을 하고 싶다는 후배에게  

 

                                           - 유용주

 

일을 한다는 것은   

쉽게 이야기하면 품을 판다는 것인데   

우스운 것은 품보다   

포옴을 파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야   

정당하게 품을 팔아야   

바른 삶을 일구어나갈 것인데   

폼부터 먼저 팔려고 드니 한심한 일 아닌가   

먼저 정직하게 품을 팔 것   

품파는 데 자신없는 사람이  

포옴을 먼저 팔려고 든다는 것을 명심하세   

땀냄새가 얼마나 구수한 줄 아나   

그 냄새를 진짜 맡을 때까지   

치열하게 자신을 밀어붙일 것  

건투를 비네

 

- 시집 <가장 가벼운 짐> (창작과비평사, 2002)  

 

* 감상 : 유용주 시인. 1960년 전라북도 장수에서 태어나 1979년 정동제일교회 배움의 집에서 공부했고(3기 수료)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은 노동자 출신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네 살에 중국집에 '속아서 팔려 간' 이래 가난과 노동의 삶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나와 그는 식당 종업원, 생선가게, 보석가게, 신문팔이, 술집 지배인, 목수에 이르기까지 오롯이 몸으로 세상을 살아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읽으며 철저하게 망가져 본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들을, '새벽 찬물 같은 죽비 세례'와 같은 '전율'을 느끼고 꾸준히 독서를 한 뒤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1990년 첫 시집 <오늘의 운세>(문학마을, 1990)를 펴내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고, 1991<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목수외 두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본격적으로 등단했습니다. 199715<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고, 2000<실천문학> 가을호에 단편소설고주망태와 푸대 자루>를 발표하면서 소설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고향인 전북 장수로 귀향, 2014년 시 문집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을 펴냈습니다  

 

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선뜻 막노동을 해야겠다고 그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일단 시작한 막노동으로 소위 도가 트일 때까지하는 것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시에서 밝히고 있듯, 노동의 땀 냄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끝을 경험하면서 삶의 진정한 맛을 아는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막노동을 시작하려고 하는 후배에게 던지는 말에 공감이 가고 진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 막노동을 시작하려는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합니다. ‘정직하게 품을 팔라는 것이고 또 땀 냄새를 알 때까지 치열하게 스스로를 밀어붙이라는 것입니다. 이 쯤 되면 시인이 이야기 하는 '막노동'은 우리가 이해하는 그런 막노동의 개념을 넘어, 땀 흘려 일하는 모든 근로 현장, 모든 일터 이야기를 하는 것인 줄 금방 눈치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품을 파는 일과 폼을 잡는 일이 글자의 형태로 봐서는 한 끝차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재미있는 시적 은유로 표현해 낸 것입니다.  

 

변을 돌아보면 시인의 말대로 품을 파는 일보다 포옴을 파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노동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소위 갑질을 일삼는 재벌 2세 경영자들이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지 않나 싶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땀 냄새 맡으며 동고동락 해 본 경험이 없으니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외형적인 직책인 만 잡게 되는 셈이지요.  

 

렇다고 꼭 재벌 2,3세 젊은 경영자들만 그런 건 아닙니다. 흔히 주변에서 만나는 나를 포함한 모든 평범한 사람들도 사실 예외는 아닙니다. 취업 면접장에서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느냐는 질문에, ‘작은 구멍가게 하나 운영하고 있다는 말이 창피해서 상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든지, 백화점이나 쇼핑 센터에서 점원이 사장님또는 사모님이라고 불러줘야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이런 폼 잡는 심리가 작동되는 우리네 삶의 한 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금은 팔 순을 바라보시는 4촌 형님이 형수님과 결혼하기 위해서 경북 문경 시골의 사돈 집을 방문해서 사돈 댁 식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일화가 우리 집안에서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결혼 상대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온통 관심을 갖고 찾아온 친척들이 눈과 귀를 곤두세우고 신경을 쏟고 있는 상황을 상상하셔야 이 이야기가 실감나게 다가올 것입니다  

 

돈 어른이 묻습니다  

그래, 춘부장께서는 뭘 하시는가?’   

, 아버지는 미쟁입니다’   

 

설업에 종사하고 계십니다라는 폼 잡는 말 대신에 솔직하고 꾸밈없는 말 한마디에, 결혼 승낙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품을 파는 아버지의 직업이 미장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저런 청년은 다른 거 볼 것도 없다 생각하고 딸을 선뜻 주기로 결정을 한 것입니다.  

 

을 파는 것보다 폼을 팔려고 하는 세상에서 진솔하게, 치열하게 자신이 갖고 있는 품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서 자랑스럽게 바른 삶을 일구어 나갈 때, 바로 그런 사회가 살 맛나는 세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렵게 취직이 되어 새 직장에 출근한 지 일 주일이 되어 가고 있는 작은 아들 홍찬이가 모쪼록 포옴 잡는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된 품을 파는 사람으로 성장해가길, 아비로서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