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삼류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는 - 김인자

석전碩田,제임스 2019. 7. 10. 06:05

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는  

 

                                            - 김인자   

 

첫 결혼기념일이 이혼기념일이 된 후배의 변은  

걷잡을 수 없는 남편의 바람기가 원인이었단다  

30년을 한 남자와 살고 있는 나도  

실은 한 남자와 사는 게 아니다  

영화나 소설처럼 호시탐탐 친구의 애인을 넘보고  

선후배에게 추파를 던지고 이웃사내에게 침을 삼켰다  

단언하지만 이런 외식이 없었다면  

나야말로 일찍이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결혼제도란,  

한 여자가 한 남자만을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정지어진  

공소시효가 불분명한 합법을 가장한 희대의 불법 사기극  

나는 달콤한 미끼에 걸려든 망둥어, 위장취업자, 아니 불법체류자,  

결혼이라는 기업에 청춘의 이력서를 쓰고  

정규직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상근봉사자,  

가문의 대소사엔 대를 이은 비정규직 노동자,  

자식에겐 만료가 없는 무보수 근로자,  

이런 근로조건에서 이 정도 바람 없기를 바란다면  

인간이 아닌 건 내가 아니라 후배일 터,  

나는 삼류영화, 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봤고  

후배는 너무 오래 교과서만을 탐닉한 결과다   

 

- 계간<리토피아>(2009, 봄호)  

 

* 감상 : 김인자 시인. 1954년 강원도 삼척읍 호산(胡山)에서 선주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정식으로 문학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1989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첫 도전에서 겨울여행이 당선되었고, '현대시학' 신인상으로 정식으로 문단에 나왔습니다. ‘등단'이라는 통과 의례를 지나 시인이 됐다고 인정받았지만, 그녀는 늘 '자발적 아웃사이더였다'고 지난 시간을 회상하며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후 시집, 산문집 등을 내면서 여러 활동을 했지만, 늘 부족한 자신에게 회의가 들기 시작할 무렵, 슬럼프를 이겨내려고 여행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를 쓰다가 여자가 뭘?’하는 소리에 발끈, ‘여자는 왜 안 되는데?’하면서 금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20년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면서 17권의 책을 낸 여행 작가이기도 합니다. 오지를 좋아해 매번 멀고 험한 여정이었으나 이 모두 사람을 탐험하는 일이어서 결국 나를 찾는 모험을 즐겼던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학교나 문단은 자발적 중퇴를 거듭했으나 가족과 친구는 굳건히 지켰습니다. ()나 부() 명예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는 걸 그녀는 길 위에서 배웠고, 여자라서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도 길 위에서 온몸으로 학습했습니다.  

 

집으로 <겨울 판화>, <나는 열고 싶다>, <상어 떼와 놀던 어린 시절>, <슬픈 농담>, 산문집 으로 <그대, 마르지 않는 사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대관령에 오시려거든>. 그리고 여행서로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여행, 포구>, <걸어서 히말라야>, <풍경 속을 걷는 즐거움, 명상산책>, <아프리카 트럭여행>, <남해기행>, <사색기행>, <나는 캠퍼밴 타고 뉴질랜드 여행한다>, <뉴질랜드에서 온 러브레터> 등이 있습니다  

 

마 전 ..커플의 이혼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분계선에서 김정은을 만나는 외교 쇼맨십을 발휘하는 바람에 며칠 씩 매스컴을 달구고도 남았을 그들의 이혼 소식은 스르르 꼬리를 감추고 말았지만, 잊을만하면 터지는 유명 연예인의 이혼 소식이 아직도 뉴스거리가 되는 세상입니다. 연예인들의 이혼 소식을 접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일류로 사는 사람들은 이혼도 척척 잘 한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이제는 이혼도 결혼과 같이 선택사항이 되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을 한다고 하니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혼은 철저히 개인의 선택의 문제일뿐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통계인 듯 합니다.  

 

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유명 연예인의 이혼 소식이 들려오면 이혼을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마치 삼류 인생 같이 느껴지기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도 시인도 이런 똑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 1년 만에 이혼을 한 후배가 말한 이혼의 사유가 남편의 바람기였다는 말에, 시인은 30년을 살면서 본인 스스로 바람기가 발동했던 마음이 내심 들킨 듯 고백을 합니다. 한 남자와 길게 살아왔지만, 삼류 영화나 소설에서 처럼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두면서 바람기로 살아온 자신 속의 또 다른 마음 말입니다. 그래서 1년 만에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이혼한다는 후배는 교과서를 너무 많이 읽고 신봉한 탓이고, 30년이 넘도록 시인이 열거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 많은 역할을 하면서도 아직도 용케 이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은 삼류 소설에 너무 탐닉한 때문이라고 너스레를 떨고 있습니다.  

 

국의 결혼 제도 하에서 여자가 결혼을 하면 해 내야 하는 수많은 역할들이 시인이 열거한 것만도 무려 예닐곱 가지. 그리고 그 모든 역할도 애초부터 속아서 한 사기극이 시초가 되었다고 하니 이 땅에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모든 여성들은 참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늘 이 시를 감상하면 일류가 아니면 모두 실패라고 생각하는 이 시대 이 사회를 살면서 삼류로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은 듯도 합니다. 늘 혼자 헤쳐 나가는 아웃 사이더로 살아왔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문학의 깊이를 더 해 준 것이라고 고백하는 그녀의 오늘 이 시를 감상하면서, 그녀의 다른 시편 하나를 함께 읽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마치 자신의 자화상과 같은 고백시인 이 시를 읽고 나면 오늘 감상하는 시와 한 짝이 되어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혼이 흔한 시대이지만, 삼류 소설이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바람기를 상상으로라도 맘껏 즐기면서, 자발적 삼류로 살아가는 것이 삶을 풍성하게 살아가는 한 방법일수도 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정겹게 들려옵니다.  - 석전(碩田)


나는 삼류가 좋다  

 

                       - 김인자

 

이제,  

나는 삼류라는 걸 들켜도   

좋을 나이가 되었다.  

아니, 나는 자진해 손들고 나온 삼류다  

젊은 날 일류를 고집해 온건   

오직, 삼류가 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더러는 삼류하면  

인생의 변두리만을 떠올리지만,  

당치않는 말씀.  

일류를 거쳐 삼류에 이른 사람은        

뭔가 다르다.  

뽕짝이나 신파극이 심금을 울리는 건 그 때문일것이다.  

 

너무 편해 오래 입어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낡은 옷 같은 삼류  

누가 삼류를 실패라 하는가.  

인생을 경전(經典)에서 배우려 하지 말라.  

 

어느 교과서도 믿지 말라  

실전은 교과서와 무관한 것,  

삼류는 교과서가 가르쳐 준   

문제와 해답만으로는 어림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