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 박지웅

석전碩田,제임스 2019. 7. 24. 06:39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 박지웅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붙어서 읽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읽는 것이다  

칠 년 만에 받은 목숨  

매미는 그 목을 걸고 읽는 것이다   

 

누가 이보다 더 뜨겁게 읽을 수 있으랴  

매미가 울면 그 나무는 절판된다  

말리지 마라  

불씨 하나 나무에 떨어졌다   

 

- 시집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문학동네, 2012)  

 

* 감상 : 박지웅 시인. 1969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즐거운 제사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2004<시와 사상>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2016년 지리산 문학상, 2017년 천상병 시문학상과 <시와 시학>에서 주최한 젊은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시집으로는 <너의 반은 꽃이다>(문학동네, 2007),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문학동네, 2012) 등이 있고, 대표 저자는 강은교 시인이지만 한국의 대표 시인 49명이 엄마라는 주제로 쓴 시를 모은 시집, <흐느끼는 밤을 기억하네>(나무옆 의자, 2016)가 있습니다.  

 

7월 말부터 조용하던 세상이 갑자기 시끄러워지기 시작하는 날이 있습니다. 어느 날부터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웬만한 나무마다 매미가 되기 위해 껍질을 깨고 나온 흔적들이 이곳 저곳에서 눈에 띄기 시작하고 본격적인 여름임을 알리는 전령사 매미가 출현하는 그 날입니다.  

 

늘 감상하는 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시인이 시적 은유로 삼은 것이 매미가 우는 것책을 읽는 것임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합니다. 첫 소절에서 시인은 매미가 운다고 했다가 이내 매미가 읽는다고 했습니다. ‘나무의 멱살을 잡고’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들키고야 말겠다는 듯 우는 모습이 처절합니다. 이 것을 시인은 아예, 울음으로 온 동네를 통째로 걸어 잠근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시인이 매미의 이런 배짱 두둑하게 우는 모습을, 책 읽는 행위와 비유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아마도 시인으로서, 목숨을 걸고 글을 써 내기 위해서 책을 읽고 삶을 읽고 또 읽는 자신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인은 매미가 우는 것을 목숨을 걸고 읽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매미가 우는 것을 책 읽는 것, 또 삶을 읽어내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누가 이보다 더 뜨겁게 읽을 수 있으랴누가 이토록 겁나게 치열하게 바락바락 생을 읽겠는가 말입니다. 이렇게 울어대는데 나무가 절판되지 않고 어찌 배길 수 있겠습니까. 시인으로서, 시집 한 권 내 놓고 절판은 커녕 그저 몇 권만 팔리고 잊혀지고 마는 것은, 아마도 매미처럼 처절하게 목을 걸고 삶을 읽어내지 못한 탓이라는 듯 한번 제대로 목놓아 울어보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매미처럼 절판될 시집을 내 놓을 터이니, 처절하게 삶을 읽어내는 글쓰기를 해서 그 불씨가 커다란 산불이 되더라도 말리지 말라고 주변에 공개적으로 공표하는 듯도 합니다.  

 

미는 7년을 땅 속에서 살다가 성충으로 태어나면 고작 4 주만 살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미가 우는 것은, 암컷을 유혹하는 수단이며, 그들에겐 일생일대의 가장 화려하고 장렬한 대물림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주어진 짧은 시간에 짝을 찾아 대를 이어야 하는 일생일대의 사명을 완수해야 하니, 그들의 울음은 절규에 가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매미의 울음은 짝을 찾기 위한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세레나데임과 동시에, 생을 허투루 살지 않겠다는 불씨같은 절규입니다. 온 몸을 불사르는 불씨가 일단 나무에 붙었다 하면 기어이 다 읽고 다 태우고 맙니다. 이 더운 여름에 이만한 흥행이 어디 있을까요. 이 더운 여름에 저 생명을 능가할 게 또 어디 있을까요. 그러니 절판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시를 이렇게 읽고 나니, 문득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는 시가 문득 생각납니다. 삶을 살아오면서 연탄처럼 누군가에게 뜨거운 존재로 살아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는 시 말입니다. 매미처럼 단단한 나무의 멱살을 잡고 목을 걸고 울어대는 처절한 절규한번 해 보지 않고 내 삶은 왜 이리도 재미없느냐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온 동네 아예 통째로 걸어 잠글 듯이 뜨겁게 삶을 달려오지도 않았다면 함부로 매미의 울음이 시끄럽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제부터 들리기 시작한 올해의 매미 소리가, 그래서 내가 하는 일에 있는 힘을 다해야겠다는 강한 자기 주문의 소리처럼 들려옵니다  

 

그래, 나도 너처럼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다짐 말입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