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서서 오줌 누고 싶다 - 이규리

석전碩田,제임스 2019. 7. 30. 23:42

서서 오줌 누고 싶다

 

                                     - 이규리

 

여섯 살 때 내 남자친구, 소꿉놀이 하다가

쭈르르 달려가 함석판 위로

기세 좋게 갈기던 오줌발에서

예쁜 타악기 소리가 났다

셈여림이 있고 박자가 있고 늘임표까지 있던,

 

그 소리가 좋아, 그 소릴 내고 싶어

그 아이 것 빤히 들여다보며 흉내 냈지만

어떤 방법, 어떤 자세로도 불가능했던 나의

서서 오줌 누기는

목내의를 다섯 번 적시고 난 뒤

축축하고 허망하게 끝났다

 

도구나 장애를 한번 거쳐야 가능한

앉아서 오줌 누기는 몸에 난 길이

서로 다른 때문이라 해도

젖은 사타구니처럼 녹녹한 열등 스며있었을까

 

그 아득한 날의 타악기 소리는 지금도 간혹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로 듣지만

비는 오줌보다 따습지 않다

서서 오줌 누는 사람들 뒷모습 구부정하고 텅 비어있지만,

서서 오줌 누고 싶다

선득한 한 방울까지 탈탈 털고 싶다

 

- 시집 <뒷모습> (랜덤하우스, 2006)

 

* 감상 : 이규리 시인. 1955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습니다. 1994년 시 전문지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지금껏 <앤디 워홀의 생각>(2004), <뒷모습>(2006),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2014), <이규리 아포리즘 1,2>(공시사, 2019), <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공시사, 2019) 등의 시집을 펴낸 시인입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던 해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늦깎이 학생으로 입학, 2005년에 졸업할 정도로, 주부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먼저 챙겼지만 시를 손에서 놓친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2015년에는 질마재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릴 적 남자 친구들은 당당하게 서서 오줌을 누는데, 여자 아이들은 한쪽 구석에 뒤돌아서 벽에 코를 박고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웅크리고 오줌을 누는 추억을 기억하는 시인. 앉아서 오줌을 누는 것이 무슨 큰 열등일까 싶지만, 사오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서 오줌을 누고 싶은 열망을 노래하는 시인의 시를 읽으며, 속에 있는 욕망과 열등감, 그리고 자격지심의 슬픈 감정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축축하게 젖으면서 허망하게 끝난 서서 오줌 누기 시도가 실패한 경험은 그 후 젖은 사타구니만 생각하면 녹녹한 열등으로 스며들었다고 표현합니다. 이제는 그렇게도 선망의 바람이었던 예쁜 타악기 소리는 아득한 날의 소리로 생각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지만, 또 서서 오줌 누는 사람들의 뒷 모습이 구부정하고 텅 비어 있는 것도 알지만 여전히 서서 오줌 누고 싶다고 노래합니다. 같은 바람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서서 오줌 누고 싶은 것은 그 옛날의 그 바람의 이유와는 다릅니다. 남과 여에 대한 인식의 차이, 즉 그 알량한 성적 불평등 마저도 이제는 선득한 한 방울까지도 탈탈 털고 싶은 것입니다.  

 

시를 꺼내 읽고 싶었던 것은, 3주 전에 미국 팀의 승리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2019 여자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미국 대표팀의 주장 메간 라피노 선수와 관련된 기사를 읽고 느끼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남녀가 불평등 가운데 있고 또 이런 갈등을 해야 한다는 슬픈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가장 최근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즈비언임을 공언해 온 라피노는 LGBT(성소수자,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를 통칭해서 일컫는 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을 자주 비판해 왔으며, 여자 월드컵이 열리기 전 인터뷰에서도 (우승을 해도) ‘똥같은 백악관에는 가지 않겠다는 발언을 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먼저 우승이나 하라는 반응을 불러 일으켜 관심을 고조시키기도 했습니다.  

 

계여성의 날인 지난 38일에는, 미국 여자 축구팀 선수 28명 전원이 미국 축구협회가 남녀 대표팀의 임금 불균형 등 조직적인 성차별을 자행하고 있다며 이들을 상대로 미 로스앤젤레스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대표팀은 협회가 성평등을 촉진해야 할 의무 달성에 실패한 채 시장 핑계만 대고 있다고 주장하며 소급분 임금을 포함한 손해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결승 전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FIFA는 여성 선수들을 남성 선수만큼 존중하지 않는다면서 우승 상금부터가 여성은 남성에 비해 너무 적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FIFA 회장인 지아니 인판티노는 “2023년 여자 월드컵 상금을 2배로 올리겠다고 밝혔으나 라피노는 전혀 공평하지 않은 처사라며 지금 당장 2배로 올리고 다음 번엔 2배 혹은 4배로 올려야 한다고 응수했습니다  

 

77일 열린 시상식에서도 두 사람의 신경전은 계속 이어졌지요. 인판티노 회장이 라피노에게 우승 트로피를 전달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들어서자 팬들의 야유가 쏟아진 것입니다. 라피노는 이에 대해 공개 야유는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나도 팬들의 야유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라피노는 이런 말로 이 모든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리는 더 나아져야 합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덜 증오해야 합니다. 더 많이 듣고 말은 덜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니까요‘.   

 

런 저런 남녀 불평등에 대한 문제가 거론되고 또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투박한 과정들을 보면서 어쩌면 이규리 시인처럼 이렇게 기발하게 표현하는 것에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 모쪼록, 탈탈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내고 싶다는 그녀의 깊은 열망의 목소리가, 라피노의 에너지 넘치는 힘찬 목소리와 함께 널리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