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 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시집 『우리들의 양식』 (민음사, 1974)
* 감상 : 봄은 계절의 순환의 섭리에 따라 추운 겨울이 끝난 후 찾아 오는 계절이기에, 봄이 주는 이미지는 '생명의 소생' '부활' '희망''화려한 꽃' 등 과 같은 것들입니다.
아무리 매서운 추위라 할찌라도 결국은 봄이 오고야 마는 자연의 섭리는 위대합니다. 시인은 바로 이 점을 놓치지 않고 겨울이 지난 후 어김없이 오는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으로 의인화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반드시 제목을 먼저 읽고 난 후에 읽어야 합니다.
이성부(李盛夫, 1942~2012), 광주에서 태어 난 그는 중학교(광주사범병설 중학)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 당시 학생 잡지로 유명한 [학원]에 여러 차례 작품을 발표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광주고로 진학하면서 선배인 윤삼하 시인 등을 만나 문학하는 자세를 배웠고, 역량을 키워 나간 그는 경희대학교에 진학하는 1960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서 <바람>이라는 시로 당선되었습니다. 1961년에는 [현대문학]으로 추천 완료, 등단한 후에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한 중견 시인으로 산을 주제로 한 민중시를 많이 써 왔습니다. 그의 선배 故 윤삼하 교수는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했기 때문에 저와도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정년을 맞지 못하고 작고하셨지요. 시인도 2012년 아까운 나이인 예순 아홉에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남녘으로부터 봄 꽃 소식이 들려오지만 내 주위에는 꽃 망울 조차도 볼 수 없는 이즈음이면 늘 봄꽃 향수병에 시달리곤 합니다. 금방이라도 남녘으로 달려가서 진동하는 봄 꽃의 향기를 맡고 싶은 마음 때문에 병이 도지는 것이지요.
시인이 노래하는 '봄'은 4 계절 중의 첫째 계절인 봄을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오히려 혹독하고 매서운 한 겨울 추위와 같은, 얼어 붙은 시대를 지나, 힘겹게 찾아 올 민주화의 봄을 열망하고 있는 노래일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시를 감상하시면서 우리 각자의 삶에 찾아 올 봄, 긴 겨울 추위와 같은 삶의 질곡 후에 반드시 찾아 오고야 마는 '따뜻한 희망의 새 봄'을, 맘껏 두 팔 벌려 껴안아 맞이하는 복 누리시길 응원합니다.-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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