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커피 기도 - 이상국

석전碩田,제임스 2019. 2. 28. 13:23


커피 기도

 

- 이상국

 

커피점에 온 모녀가

커피가 나오자 기도를 한다

나는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기도는 길어지고

딸이 살그머니 눈을 떠 엄마를 살피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텐데……

 

-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창비, 2016)

 

* 감상 : 1946년 양양에서 태어난 이상국 시인은 1976심상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40년 동안 줄곧 시를 써 왔습니다. 그의 시는 간결하지만 웅숭깊은 맛이 있고, 꾸미지 않은 천연의 감동을 자아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1985년 첫 시집 <동해별곡>을 시작으로 <내일로 가는 소>,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국수가 먹고 싶다> , <뿔을 적시며>, <달은 아직 그 달이다> 등을 펴낸 중견 시인입니다.

 

오늘 읽은 시는, 조용히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사색을 즐기는 시인, 그리고 그 같은 공간 저 쪽에 크리스찬으로 생각되는 모녀가 앉아 커피를 시켰는데, 김이 모락 모락 올라가는 막 서빙 된 커피 잔 앞에서 기도하는 광경을 염려스런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풍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식사 때마다, 간식 때마다 무슨 음식이든지 반드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기독교 신앙인이면 누구나 자연스런 행동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습관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혹시 함께 식사하는 사람 중에 기독교인이 있으면 그 사람이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센스를 발휘해 주기도 할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이런 식사 감사 기도가 상식을 벗어나게 길어지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학창 시절 제가 다녔던 교회는 장로교 중에서도 '정통 보수'임을 무척 자랑하는 장로교 장자 교단 소속 교회라, 이런 현상이 더 심했던 기억입니다. 주일학교 고등부 시절로 생각됩니다. 당시, 부장이었던 어느 장로님이 식사 기도를 대표로 하는데, 얼마나 길었던지 제 기억에 웬만한 설교와 같았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갔다가 다시 해방 이후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와 세계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기도. 장로님의 식사 기도가 끝난 후, '자 이제 식사합시다'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각자 또 기도하고 난 후에 식사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모르긴해도, 사람들이 조금 전에 했던 기도는 설교였다고 착각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것이란 시인의 생각에 저는 100% 동감입니다. 아울러 가끔, 눈에 보이는 기도 없이 시작한 식사도 하나님은 충분히 이해하실 것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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