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석전碩田,제임스 2018. 11. 28. 09:12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이십 대에는

서른이 두려웠다

서른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이윽고 서른이 되었고 싱겁게 난 살아 있었다

마흔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삼십대에는

마흔이 두려웠다

마흔이 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이윽고 마흔이 되었고 난 슬프게 멀쩡했다

쉰이 되니

그때가 그리 아름다운 나이였다

 

예순이 되면 쉰이 그러리라

일흔이 되면 예순이 그러리라

죽음 앞에서

모든 그때는 절정이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

다만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다

 

- 시집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작은숲,2014)

 

* 감상 : 한 해를 보내는 년말이 다가오는 이즈음부터 송년 모임에 오라는 연락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12월에는 날짜를 잡기 어렵다고 아예 11월로 모임을 앞당겨 갖는 곳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 주말, 초등학교 동창들이 송년 모임을 가졌는데, 저는 갑작스런 수술로 인해 병원 신세를 지면서 멀리서 전해오는 소식만 들으면서 아쉬워해야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옛 유년의 추억이 자꾸만 그리워지고 되새기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면서 내 나이가 어쩌다가 예순을 바라보게 되었나 한심하기도 합니다.

 

대구 출신 시인으로 원화여고 교사를 끝으로 지난 20172월에 퇴직한 박우현 시인이 이 시를 쓴 때가 2014년이니 바로 제 나이 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읽노라면 귀에 쏙쏙 들어오면서 옳거니 그렇지 하면서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이 노래했던 것처럼 다가 올 예순을 두려워하거나 징그러워하기 보다는, '이 때가 가장 찬란한 나이'라는 것을, '모든 나이는 아름다운 것'을 지난 다음에 아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알아가며 살아가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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