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누군가를
- 김재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을 사랑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햇볕과 그 사람의 그늘을
분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두운 밤 나란히 걷는 발자국 소리 같아
멀어져도 도란도란
가지런한 숨결 따라 걸어가는 것이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픔 속에 가려 있는 기쁨을 찾아내는 것이다.
창문을 활짝 열고 새 바람 들여놓듯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시집『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 때』(꿈꾸는서재, 2015)
* 감상 : 어제는 세브란스 병원 안과에 가서 주치의로부터 기쁜 소식을 듣고 돌아왔습니다. 수술한 망막이 제자리에 잘 정착되었고 시력도 아직 개스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현재에도 괜찮은 편이라 더 이상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기쁜 소식이 아니라, 앞으로 운동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이 제게는 참으로 듣고 싶은 복음(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두 달 뒤, 외래 약속을 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어찌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아파 봐야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지난 한 달간이었습니다. 의외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던 기간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그 속에 포함됩니다.
오늘 소개하는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은 어딘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아파 본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도 건성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참 많이 들어봤던 것 같습니다.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이 아니라,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그가 지금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그는 노래합니다. 상대방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그 아픔에 가려 있는 기쁨을 찾아내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속삭이는 시인의 음성이, 천둥처럼 크게 들리는 시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종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다르고 또 국적에 따라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인종이나 빈부 귀천에 따라서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서로 사랑하다고 하면서 이 땅에는 전쟁이 그치지 않고 갈등과 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 모든 경계선을 넘어 한 가지 공통된 지점에서 통하는 '사랑'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김재진 시인. 조선일보와 영남일보 신춘문예, 작가 세계 신인상 등에 소설과 시, 중편 소설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온 중견 작가입니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시집은 한 달 만에 6만부가 팔릴 정도로 그를 아끼는 애독자들도 많은 시인입니다. KBS에서 PD로 일하면서 방송대상 작품상을 받는 등 직장 생활을 하던 중 갑자기 사표를 던졌던 그는 지금 방송을 통해서 마음을 치유하는 인터넷 방송인 유나방송(una.or.kr)을 만들어 세상에 평화를 심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을 사랑하는 것이다'로 시작하는 이 시편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 아침입니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 아픈 사랑 - 류근 (0) | 2019.01.08 |
---|---|
아내의 정부 - 문동만 (0) | 2018.12.28 |
무소유 - 백무산 (0) | 2018.12.11 |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 박우현 (0) | 2018.11.28 |
춘천이니까, 시월이니까 - 박제영 (0) | 2018.11.01 |